김기덕 감독이 영화 <뫼비우스> 제한상영가 등급 판정을 두고 재분류 심사를 호소했다. 현재 <뫼비우스>는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로부터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았다. 제한상영가 판정은 제한상영관에서만 상영이 가능한 영화 등급인데, 국내에는 제한상영관 전용극장이 없는 터리 사실상 개봉 불가 판정이나 다를 바 없다.
지난 2일 영등위는 “영상의 내용 및 표현기법과 주제와 폭력성, 공포, 모방위험 부분에 있어 청소년에게는 유해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며 ”직계간 성관계를 묘사하는 등 비윤리적, 반사회적인 표현이 있다”며 제한상영가 판정 이유를 밝혔다.
지난해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영화 <피에타>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김기덕 감독이 2년 연속 베니스국제영화제 진출과 본상 수상을 노리고 있다. 비록 국내에선 제한상영가 판정으로 국내 관객과의 만남이 어려워졌지만 해외 수출 시장에선 호조를 보이고 있다.
그럼 김 감독의 메일을 살펴보며 그 의미를 짚어 보도록 한다.
“안녕하세요? 먼저 소중한 시간을 내어 '뫼비우스' 등급심사를 해 주셔서 먼저 깊이 감사드립니다. 제작자로서 또한 감독으로서 제한 상영가에 대한 의견을 드립니다.
영화 <뫼비우스>의 시나리오를 쓰고 제작하기로 결정하는데 창작자의 양심으로 저 자신과 긴 시간동안 싸웠습니다. 윤리와 도덕이 중요한 한국사회에서 <뫼비우스>를 꼭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었습니다.
애초 희망했던 배우들이 거절하는 상황에서 제 자신을 의심하며 몇 차례 제작 중단을 했었습니다. 최종 포기상황에서 시나리오를 본 한 유명 여배우와 존경하는 한 감독님이 <뫼비우스>가 꼭 만들어지기를 바란다며 지지와 용기를 주셔서 다시 만들기로 결심하고 스태프 배우들을 꾸려 촬영을 하게 되었습니다.
촬영 중에도 ‘내가 왜 이런 영화로 또 논란의 중심에 서야하나?' 라고 수없이 자문자답했습니다. 제한상영가의 결정적인 문제가 되는 장면을 찍을 때는 너무 힘들고 괴로웠습니다. '창작이 뭔데 이런 고통을 겪으며 영화를 찍어야 하나?'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성과 욕망 때문에 무수한 사건과 고통이 있습니다. 저는 <뫼비우스>로 그 정체를 질문하고 싶었습니다. 성은 무엇이고 성기는 무엇이기에 이 시대 우리들은 이렇게 욕망과 고통에서 허우적거릴까? 이것은 저 자신만의 문제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김 감독은 영화 <뫼비우스>를 만들기까지의 고민을 토로했다. 수없이 자문자답했으며 동료 영화인들과 상의한 부분도 언급했다. 성과 욕망 때문에 무수한 사건과 고통이 존재하는 이 시대에서 김 감독은 영화 <뫼비우스>를 통해 성과 욕망의 정체에 대한 질문을 하고 싶었다면 연출의 변을 밝혔다.
“<뫼비우스>의 줄거리는 관계에서 믿음을 잃은 부부의 질투와 증오가 아들에게 전이되고 결국 모두가 죄책감과 슬픔에 빠지고 결국 쾌락과 욕망을 포기하는 이야기입니다. 제 영화는 항상 제가 판단하는 결론이 아니라 늘 사회에 던지는 질문이었습니다. 이번 영등위에서 제한 상영가 결정의 핵심 이유는 엄마와 아들의 근친 성관계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영화의 줄거리를 자세히 보면 엄마와 아들의 성관계가 아니라 결국 엄마와 아버지의 성관계의 의미가 더 크다고 생각하고 연출을 했습니다. 이런 제 생각에도 불구하고 영등위원 분들 생각에는 물리적으로 아들의 몸을 빌리니 그렇게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영화의 전체 드라마를 자세히 보면 그 의미가 확실히 다르며 그것이 이 영화의 주제를 관통하는 중요한 장치이고 연출자로서는 불가피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대목에서 김 감독은 가장 문제가 된 엄마와 아들의 근친 성관계를 표현하게 된 까닭을 설명한다. 엄마와 아들의 성관계가 아니라 결국 엄마와 아버지의 성관계에 더 의미를 둔 장면이었다고 밝힌 김 감독은 물리적으로는 아들의 몸을 빌린 것으로 판단할 수도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렇지만 영화 전체의 주제를 관통하는 중요한 장치이며 불가피한 표현이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아직 공개되지 않은 영화라 자세한 내용을 다 말할 수는 없습니다만 심의 권리를 부여받은 영등위와 저의 생각이 다를 수 있으므로 이러한 차이와 생각도 일반 성인관객이 영화를 보고 판단 할 기회는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성년 학생들이 이 영화를 보면 주제나 내용을 잘 못 받아들일 위험이 있지만 19세가 넘은 대한민국 성인들이 <뫼비우스>의 주제와 의미를 위험하게 받아들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영화 등급을 두고 논란이 일 때마다 불거지는 사안이 바로 여기에 있다. 영화의 심의 권리는 분명 영등위에 있지만 진정한 평가 대상은 관객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김 감독 역시 이 부분을 언급했다. 19세가 넘지 않은 미성년자에겐 위험성이 있지만 성인들까지 이 영화가 위험하진 않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다시 말해 미성년자 관람불가 정도의 등급이 적당하다는 의미다.
“칸 마켓상영을 통해 이 영화를 보고 수입 상영하려는 여러 유럽 선진국의 성인들보다 대한민국 성인들이 의식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전 <올드보이>도 불가피한 아버지와 딸의 내용이 있지만 세계적으로 의미 있는 영화로 많은 마니아를 가지고 있습니다. 진정한 문화 선진국은 쉬쉬하는 인간의 문제를 고름이 가득차기 전에 자유로운 표현과 논쟁을 통해 시원하게 고름을 짜 내고 새로운 의식으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의 의미 있는 주제보다 물리적인 영상만을 못 보게 하는 것이 최선일까 생각합니다.
제가 지금 무엇이 부족해 단순히 말초신경만 자극하는 엄마와 아들의 금기인 섹스를 보여주기 위해 영화를 만들겠습니까? 전 그동안 제 18편의 영화 중 한편도 그런 마음으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근친 성관계를 다룬 대표적인 한국 영화는 분명 <올드보이>다. 서로 모녀 사이임을 모르지만 분명 이 영화에는 아빠와 딸의 베드신이 등장한다. 게다가 사건의 시작 역시 누나와 남동생의 성적 접촉이다. 결국 <올드보이>는 근친 성관계로 빚어진 상처를 다시 근친 성관계로 복수하는 내용의 영화다. 그렇지만 당시 영등위는 제한상영가 판정을 내리지 않았다. 참고로 <올드보이>는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해외 국가에서 개봉이 어려운 등급을 받았다.
“이 영화는 9월 배급사 '뉴(NEW)'에서 배급을 하기로 한 상태인데 제한상영가로 개봉을 못한다면 저를 믿고 참여한 배우, 스태프들이 크게 실망할 것입니다. 스태프, 배우들은 <뫼비우스> 공동제작자로 국내 극장수익 지분도 50프로가 있습니다.”
김 감독은 대표적인 저예산 독립영화 감독이다. 그만큼 적은 제작비로 영화를 만들기 때문에 스태프와 배우들 대부분이 무임금으로 일한다. 대신 영화가 흥행하면 수익금을 분배하는 구조다. 영화 <뫼비우스>의 수익 가운데 절반은 스태프와 배우들에게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는 열악한 독립영화계의 현실을 강조하는 것과 동시에 자극적인 말초신경 자극으로 흥행 수익을 위해 영화 <뫼비우스>를 만든 것이 아니라는 얘기이기도 하다.
“영등위원 여러분. 다시 한 번 영화의 진정한 의미와 주제를 헤아려 다시 조정해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뫼비우스>는 인간의 수많은 문제 중에 하나인 성과 성기에 대해 질문하는 한 번 쯤 생각해 볼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이러한 간곡한 의견에도 불구하고 <뫼비우스>를 선정성과 폭력성과 범죄적인 영화라고 만 판단해 결국 제한상영가로 개봉을 못한다면 제가 어쩔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제가 영화를 잘 못 만들었거나 영화를 다르게 이해 한 영등위원들의 의식 문제 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인들인 영등위원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말 할 수없는 정신적인 상처를 입었나요? 심의위원들만 특별한 강심장 들이 아니라면 19세 이상 대한민국 성인들도 영화를 보고 판단해야 되지 않을까요?
제 개인적으로 영등위원들의 입장을 여러 가지로 이해하면서도 표현의 가치 또한 우리가 극복해야 할 문제가 아닌 가 생각합니다. 마지막 꿈 장면은 본래 시나리오에서 현실로 보여주는 거였음에도 여러 가지 한국 사회의 도덕과 윤리로 볼 때 작가로서 깊은 고민 끝에 꿈으로 표현했음을 마지막으로 말씀드립니다.”
과거 김 감독은 영화계에서 상당히 강도 높은 발언을 자주 하곤 했다. 이로 인해 한국 영화계에서 상당히 멀어졌던 영화인이기도 하다. 해외 영화계에선 늘 각광받는 감독이지만 국내에선 오히려 터부시 되는 대상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최근 김 감독은 상당히 부드러워진 모습이다. 이번 메일에서도 김 감독은 최대한 부드러운 어조를 유지하고 있다. 그나마 가장 공격적인 표현은 바로 ‘제가 영화를 잘 못 만들었거나 영화를 다르게 이해 한 영등위원들의 의식 문제 일 것입니다’ 정도다. 그만큼 절박하게 영화의 재분류 심사를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제 간절한 의견에도 제한상영가 결정이 바뀔 수 없다면 배우 스태프 지분을 제가 지급하고 국내 상영을 포기하겠습니다. <뫼비우스>로 깊은 고민을 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부디 그동안 제 영화의 18편의 가치를 조금이라도 인정해 주신다면 성숙한 대한민국 성인들이 이 영화를 보고 판단할 수 기회를 주십시오.”
김 감독이 ‘제 영화의 18편의 가치를 조금이라도 인정해 주신다면’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했다. 이미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거장으로 이미 <뫼비우스>는 해외 시장에선 각광받고 있다. 이런 영화적 가치를 인정하고 재분류 심사를 해 달라는 절박한 표현이다.
과연 메일을 통한 김 감독의 절박한 재분류 심사 요청에 영등위가 어떤 반응을 보일 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