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쥐어짜도 돈~줄만 타네
▲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 ||
요즘 기획재정부 직원들이라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토로하는 주제다. 이명박 정부 들어 과감한 세금감면을 하면서 세입이 크게 줄었다. 그런데 지난해 예상치 못한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경기부양용 ‘슈퍼추경’을 하느라 세출은 크게 늘었다. 한마디로 들어올 돈보다 나갈 돈이 많아지면서 국가 곳간이 비게 된 것이다. 문제는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세입을 늘릴 구멍이 마땅치 않다는 데 있다.
지난 6월 29일 기획재정부는 윤증현 장관의 발언과 이에 대한 해명자료를 내놓느라 어수선했다. 윤 장관은 이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내년으로 예정된 법인세와 소득세 인하를 연기하는 것이 어떠냐”는 김성식 한나라당 의원의 질의에 “상당히 긍정적으로 검토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윤 장관의 이러한 답변이 정부의 감세정책(세금을 줄여나가는 정책) 변화로 알려지자 재정부는 허겁지겁 ‘정부의 입장은 감세정책을 유지하는 것’이라는 내용의 해명자료를 냈다.
그저 해프닝으로 보이는 사건이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요즘 재정부 내부의 심각한 고민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사건이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때 작은 정부와 시장경제를 내세우고 감세정책을 추진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6억 원 이상 다주택자에게 많은 세금을 물리던 종합부동산세의 기준을 높인 것이다. 기준이 되는 부동산 가격을 9억 원으로 올렸고, 세금 액수도 대폭 낮췄다.
여기에 법인세와 소득세도 인하하고 있다. 소득세 과표(세금을 매기는 기준액) 1200만 원 이하는 올해부터 2%포인트 낮췄다. 최고 구간인 8800만 원 초과는 올해 35%의 세율을 유지하지만 내년에는 33%로, 2%포인트 내린다. 법인세는 과표 2억 원을 기준으로 2억 이하는 올해까지 11%를 유지한 뒤 내년에 10%로 낮아진다. 2억 원 초과는 지난해 25%였던 법인세를 올해 22%, 내년에 20%로 낮춘다(앞서 나온 김성식 의원의 말은 고소득층에 대한 소득세와 법인세 인하 시기를 늦추자는 것이다).
세금 인하, 특히 많은 세금을 내던 고소득층에 대한 세금 인하로 세입이 크게 줄어들었다. 올해에만 감세액이 12조 원에 달하고, 내년에는 22조 6000억 원으로 더욱 늘어난다. 여기에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인한 불경기까지 겹치면서 많은 사람들이 내야 할 세금 자체를 미루는 경우도 발생했다. 이미 1분기 세입도 계획보다 적게 걷혔다. 반면 정부는 경제 살리기용으로 29조 원에 달하는 슈퍼추경을 하느라 세출을 크게 늘렸다. 당연히 아무리 계산을 해봐도 ‘주판알’이 맞을 수가 없는 셈이다. 게다가 ‘부자감세’라는 야당의 공격까지 덤으로 얻었다.
실제 나라 곳간도 바닥을 드러냈다. 정부가 예상하는 올해 관리대상수지(나라의 재정 상황을 보여주는 지표)의 적자규모는 51조 원이다. 관리대상수지는 이미 3월 말까지 22조 원에 달하는 적자를 기록했다. 재정 적자로 인해 올해 우리나라의 국가채무 규모는 사상 최대치인 366조 원으로 추정된다. 국내총생산(GDP)에서 국가채무가 차지하는 비율도 작년 30.1%에서 올해는 35.6%까지 치솟을 것으로 보인다.
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200%에 달하는 일본이나 미국, 영국 등의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을 보면 그나마 위안이 되지만 우리는 통일비용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하는 문제가 있다”면서 “그리고 이번 금융위기에서 드러났듯이 ‘스몰 오픈 이코노미’(작은 개방 경제)이기 때문에 국제적인 흐름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생각해야 한다. 이번 위기에서 우리가 가장 빠르게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은 재정을 과감하게 투입한 덕이다. 그것은 재정건전성을 유지해왔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정책이다. 그만큼 항상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재정건전성을 맞춰야 한다는 것은 우리나라 경제를 책임지고 있는 재정부 관료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미 앞서 이야기했듯이 세금감면으로 돈 나올 구멍이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감세정책을 거둬들이기도 쉽지 않다. 이명박 정부가 약속해온 감세정책을 포기하고 증세로 돌아설 경우 정책에 대한 신뢰성을 잃어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 때문에 재정부 관료들의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 가고 있다. 돈 나올 구멍을 찾느라 재정부 관료들의 눈과 머리가 바쁘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세입을 늘리기 가장 쉬운 방법은 부가가치세 인상이다. 물건을 살 때마다 내야 하는 부가가치세를 올릴 경우 복잡한 절차 없이 세금을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재정학회가 재정부 의뢰로 만든 보고서에서 부가가치세 등 소비세율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밝힌 것도 이러한 배경을 깔고 있다. 문제는 부가가치세는 소득에 상관없이 누구나 물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야당에서 “부자 감세로 줄어든 세금을 서민에게 떠넘긴다”는 비난이 강하게 일었다. 재정부가 보고서 내용이 알려진 뒤 곧바로 “부가가치세 인상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해명했지만 부가가치세 인상만큼 손쉬운 방법이 없다는 것이 고민이다.
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선진국에서는 이미 직접세(소득세처럼 본인이 직접 내는 세금)와 간접세(부가가치세처럼 다른 사람을 통해 내는 세금) 비율에 대한 논쟁이 끝난 것은 오래 전”이라며 “부가가치세는 언젠가는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함께 자리했던 또 다른 재정부 관료는 “부가가치세를 올리기가 말처럼 쉽겠나. 부가가치세를 올리려면 그 전부터 증세 움직임을 보여 왔어야 하는데 지금까지 해온 것은 감세였다”면서 “또 사실 여부를 떠나서 부자감세라는 공세를 받는 상황에서 부가가치세를 올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누구든 정권을 10~15년 정도 내놓기로 마음먹고 부가가치세를 올리면 몰라도…”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렇게 고민해서 나온 방안이 비과세, 감면 제도(세금을 물리지 않거나 줄여주는 제도) 정비와 할당관세(관세를 일부 낮추는 것) 품목 축소다. 이미 정부는 상반기 75개이던 할당관세를 48개로 대폭 줄였다. 윤 장관이 증세와 감세라는 모순된 단어를 함께 사용한 것과 담배, 술 등 외부불경제(개인이나 기업의 행동이 다른 개인이나 기업에 해를 끼치는 것) 품목에 대한 과세 확대까지 언급한 것도 시커멓게 타들어가고 있는 재정부 관료들의 고민을 보여준 예다.
윤 장관은 지난 6월 25일 하반기 경제운용방향 브리핑에서 재정건전성 관리에 대한 질문에 “감세기조는 유지하되 필요하면 비과세, 감면을 정비해 증세가 있을 수 있다. 외부불경제 항목에 대한 증세도 검토대상이 될 것”이라고 답했다.
나라 곳간이 텅텅 비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서민들에게 돌아간다. 정부는 지난 6월 30일 서민과 취약계층 생활여건 개선을 위해 하반기 6대 분야 15개 과제에 2조 946억 원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오히려 ‘4대 강에는 22조 원이나 쏟아 부으면서 서민대책은 기존 대책이나 지원규모 그대로’라는 비난만 받았다. 돈이 없어서 말로만 생색을 낸 결과라는 분석이다. 게다가 올해 추경예산 중 6조 8706억 원에 달하는 저소득층 지원 관련 사업 중 한시생계구호 등은 11월 말이면 종료되고, 실직가정 생활안정자금대부 등은 12월 말에 끝난다.
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현재는 세입을 늘릴 곳을 찾기도, 재정건전성을 맞추기도 어려운 상태”라면서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경기를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 경기가 살아나야 세입이 늘어나고 재정건전성이 확보될 수 있다. 경기 활성화만이 지금의 상황을 빠져나갈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라고 말했다.
이준석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