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기부’에선 이미 갈라섰다?
▲ 고 박성용 명예회장이 살았던 한남동 저택. | ||
금호아시아나 오너 일가의 거주지는 서울 하얏트호텔 인근 한남동 고급주택가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박삼구 그룹 회장은 한남동 1×-×00에 살고 있으며 여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7××-19엔 박찬구 화학부문 회장 자택이 있다. 고 박정구 회장 사후 그룹 경영을 이끌어온 박삼구-찬구 형제의 자택 등기부에는 오너 형제들이 공동채무를 졌던 내역이 남아 있다. 지난 2002년 이 두 집을 공동담보로 삼아 고 박정구-삼구-찬구 3형제가 채권최고액 총 64억 4000만 원으로 하는 근저당권 설정을 맺은 것. 자택 담보 대출을 통한 사업자금이나 지분 확보용 자금 조달은 재벌가에서 흔히 있는 일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두 집을 담보로 한 채무자 명의에 변화가 일어났다. 우선 박삼구 회장 자택 등기부상 채무설정 내역에서 박찬구 회장 이름이 사라졌다. 박정구 회장 사후 아들 박철완 아시아나항공 부장이 채무관계를 물려받으며 두 삼촌과 함께 공동 채무자 명의에 올랐다가 지난 2006년 채무자 명의가 박 부장으로 일원화됐다.
올 2월이 되면서 일부 채무가 변제돼 채권최고액은 21억 4500만 원으로 줄어든 상태. 여기에다 추가로 지난 2월 박삼구 회장 아들 박세창 그룹 전략기획팀 상무가 이 집을 담보로 채권최고액 32억 5000만 원의 근저당권 설정을 했다. 등기부에 아버지 세대가 사라지고 사촌지간인 박철완-세창 두 사람만 남은 셈.
박찬구 회장 자택 등기부에서도 박삼구 회장의 이름을 볼 수 없게 됐다. 이 집을 담보로 한 고 박정구(철완)-삼구-찬구 3형제의 공동 채무설정은 지난 2008년 해지됐다. 그리고 올 3월 박찬구 회장 아들 박준경 금호타이어 부장을 채무자로 하는 채권최고액 36억 원의 근저당권 설정이 새롭게 등기부에 올라왔다. 그룹 경영의 양 축인 박삼구-찬구 형제가 서로의 집을 담보로 한 공동채무 설정 관계를 끊어냈다는 점이 최근 불거진 형제간 불화설과 맞물려 눈길을 끌 수밖에 없을 듯하다.
사실 한남동 ‘금호타운’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곳은 고 박인천 창업주의 장남인 고 박성용 명예회장이 살았던 한남동 7××-5 소재 2층 저택이다. 2001년 경영일선 은퇴 이후 바로 아랫동생인 고 박정구 회장에게 총수직을 물려주면서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이사장 업무에만 주력했던 고 박 명예회장은 한남동 자택에 손님들을 불러 소규모 음악회를 종종 열었다고 한다. 2005년 5월 박 명예회장 타계 직후 선친의 추억이 깃든 이 집은 아들 박재영 씨에게 상속됐다.
이 집 등기부에도 ‘형제경영 전통’이 배어 있다. 이 집을 담보로 금호가 3세들인 박재영-철완-세창-준경 사촌형제들이 지난 2003년 1월 공동 채무자 명의로 근저당권 설정을 해놓은 것이다. 총 채권최고액은 48억 원으로 네 명의 3세들이 각각 12억 원씩의 채무를 나눴던 것이 2005년 5월 채권최고액 38억 원(각각 9억 5000만 원씩)으로 변경됐다. 그런데 재영 씨는 다른 3세들과 달리 그룹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고 박성용 명예회장 사후 재영 씨는 그룹 계열사 지분율을 늘리지도 못했다. 오히려 최근 수년간 재영 씨의 지분율은 점점 줄어들었으며 이는 오너 형제들 간 지분 공동분배 원칙이 무너지기 시작한 계기로 평가받았다.
지난 2006년 금호아시아나의 대우건설 인수 직후 박삼구-세창 부자와 박찬구-준경 부자를 비롯해 고 박정구 회장의 아들 박철완 부장이 모두 대우건설 지분을 균일하게 사들였다. 반면 재영 씨는 대우건설 주주명부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한남동 7××-5 주택을 담보로 한 대출금 용처가 정확히 확인되진 않지만 재영 씨는 현재 그룹 경영과 무관한 행보를 걷고 있는 만큼 집안을 위해 ‘장손답게’ 자신의 집을 담보로 내주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재영 씨는 현재 미국에서 예술분야 공부를 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재영 씨의 계열사 지분율이 줄어들면서 일각에선 경영에 관심이 없는 그가 선친의 유지가 담긴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을 물려받을 가능성이 거론되기도 했다. 재영 씨 지분율이 감소하는 사이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의 주요 계열사 지분율이 조금씩 늘어난 까닭에서다. 지난 1984년 타계한 고 박인천 창업주로부터 박성용-정구-삼구-찬구 형제가 상속받아 공동명의로 보유해온 광주 금남로 5가 212번지 건물 명의가 지난 2003년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에 넘어간 점 또한 관심을 끈다(박성용 명예회장 타계 이후 재단 이사장은 박삼구 회장이 맡아오고 있다).
한편 지난 13일 오전 경기도 화성시 팔탄면 기천리 선영에서 열린 고 박정구 회장 7주기 추모식은 경영권과 관련, 오너 형제간 관계가 민감한 시기란 점에서 어느 해보다 큰 관심을 불러 모았다. 이날 선영에 따로 도착한 박삼구 회장과 박찬구 회장은 거리를 두고 서서 별다른 대화 없이 추모행사를 마치고 돌아간 것으로 전해진다. 계열사 지분 관계는 물론 부동산 등기부에서조차 엇갈린 행보를 보이기 시작한 이들 형제를 둘러싼 갖가지 소문은 당분간 재계인사들 사이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질 전망이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