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째로 안되면 쪼개서라도…
▲ 고민이야... 리모델링이 한창인 옛 대우건설 사옥. 왼쪽은 민유성 산업은행장. | ||
지난 6월 1일 금호아시아나와 재무구조개선 약정(재무약정)을 체결할 때만 해도 산업은행은 대우건설 매각을 자신했다. 건설업계 1위에 우수한 기술과 인력까지 보유하고 있는 대우건설이 시장에 나오기만 하면 많은 곳에서 인수전에 뛰어들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당시 금융감독원의 한 관계자는 “산업은행이 금호아시아나에 대우건설 매각을 요청했던 것은 유동성 확보를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결론 내렸기 때문이다. 인수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돼 공개 매각을 결정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자 이는 오판이었음이 드러났다. 자천타천 인수 후보로 거론되는 대기업들과 산업은행이 접촉했던 곳들은 하나같이 거부 의사를 밝혔다. 시장에서 나오는 매각 전망도 어두웠다. 이는 현 경기 상황에서 수조 원에 달하는 인수 대금이 부담이 될 뿐 아니라 대우건설이 금호아시아나에 편입된 이후 보유자산 등이 부실해졌다는 평가가 나왔기 때문이다.
금호아시아나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을 것이란 우려도 한몫을 했다. 일각에서는 시간을 끌면 끌수록 대우건설 가격이 낮아질 것이라고 판단한 대기업들이 참여를 망설이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대우건설 매각이 지지부진하자 산업은행과 정부는 전략을 수정했다. 지난 1일 산업은행은 대우건설을 국내 기업에 우선적으로 팔 것이라는 방침을 바꿔 외국 투자자에게도 기회를 줄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대우건설 안팎에서 국부 유출 논란이 거세지자 산업은행은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단기차익을 노리고 들어오는 헤지펀드와 사모펀드는 경계해야 하겠지만 장기적인 경영비전을 제시하는 해외투자자라면 배척할 필요가 없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그 이후 산업은행은 일본 및 중동지역 투자자들과 잇달아 회동을 갖고 대우건설 문제를 논의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일본 국적의 사모펀드들이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았다고 한다. 산업은행의 한 관계자는 “해외의 투자자들이 요청을 해서 만난 것은 맞다. 아직 확실한 것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국내 기업보다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사실”이라고 귀띔했다. 홍콩에 기반을 둔 한 사모펀드 관계자도 “대우건설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인기 있는 것 같다. 우리도 관심이 있었지만 일본 쪽 움직임을 보고 포기했다”고 전했다.
한때 유력하게 검토됐다가 ‘마지막 카드’로 순위가 밀린 산업은행 주도의 사모펀드도 다시 거론되고 있다. 지금 이대로 갈 경우 결국은 산업은행이 대우건설을 사들여야 할 가능성이 높은데 괜히 시일을 끌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 금융권으로부터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방법은 대우건설이 가장 원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러나 매각 당사자인 금호아시아나가 반대하고 있고 산업은행 역시 공개매각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금호아시아나의 한 관계자는 “최후의 수단이긴 하지만 올해 11월까지 매각을 마무리해야 하는 것을 감안해 공개입찰과는 별도로 산업은행이 준비 중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해외투자자 혹은 산업은행 사모펀드에 의한 인수 이외에 대우건설 사업부문을 분리해 따로 파는 ‘분리매각설’도 힘을 얻고 있다. 산업은행은 대우건설 매각을 결정한 이후 인수 희망자가 나타나지 않자 가격을 낮추기 위해 이러한 방안을 금호아시아나 측에 제시했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금호아시아나 대우건설 등이 한목소리로 ‘결사반대’를 외치면서 논외로 밀려났지만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앞서의 산업은행 관계자는 “사업부문 분리매각을 추진할 경우 (매각은) 더욱 수월할 것으로 보인다. 대우건설의 플랜트부문만 따로 떼어낼 경우 사겠다는 곳이 몇 군데 있다. 토목부문도 마찬가지”라고 털어놨다.
이처럼 매각을 위한 다양한 전략들이 모색되고 있는 것은 산업은행이 처한 현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는 관측이다. 산업은행은 “올해 11월까지 대우건설 매각 작업을 마무리하겠다”고 밝힌 바 있는데 이는 “최대한 빨리 진행하라”는 정부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전해진다. 민유성 산업은행장도 지난 7월 초 꾸려진 대우건설 매각 전담팀에게 “속도를 빨리 내라”고 주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건의 인수·합병(M&A)이 보통 7~8개월 걸리는 데 반해 대우건설과 같은 ‘메가딜’을 5개월 내에 끝내야 하는 상황인지라 복수의 매각 방안들을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다.
산업은행으로서는 대우건설 매각이 구조조정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점도 부담으로 다가올 듯하다. 지난 5월 말 자금 사정이 좋지 않은 9개 대기업들은 채권은행들과 재무약정을 통해 유동성 확보를 약속했고 이 가운데 단연 금호아시아나의 대우건설 매각이 화제를 모았다. 산업은행 내부에서 “대우건설 매각을 매끄럽게 끝내지 못하면 향후 나머지 기업들의 계열사 정리도 힘들어질 것”이란 말이 나오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지난 14일 시작된 대우건설 실사를 위해 모인 자리에서도 산업은행은 이러한 고충을 털어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재계에서는 산업은행이 국내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공개 입찰을 속내에 두고 있으면서도 경쟁을 부추겨 대우건설의 몸값을 높이기 위해 ‘여론 플레이’를 하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분리매각설이나 산업은행이 주도하는 사모펀드에 의한 인수 역시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대우건설 매각이 향후 산업은행이 팔아야 할 하이닉스와 현대건설 등 대형 매물의 가격 책정 등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금융당국이 두 곳의 대기업 고위 관계자들과 서울 시내 모처에서 만나 대우건설과 관련한 얘기를 주고받았던 것으로 알려져 관심을 끌고 있다. 이 자리에서 금융당국 측은 한 대기업에게는 신규 사업권을 주고, 다른 곳에는 대규모 자금 지원을 약속하며 대우건설 인수를 요청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지난 10일 민유성 행장이 여러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공개적으로 “시장에서 매각이 잘 될 것”이라며 낙관론을 펼쳤던 것과 연관 짓는 시각도 있다. 이에 대해 산업은행 측은 “전혀 알지 못한다”며 일축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