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일본 전철 밟을라…
![](https://storage3.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13/0619/1371601213577350.jpg)
제18회 LG배에서 8강에 진출한 천야오예, 이야마 유타, 퉈자시, 다카오 신지, 리저, 샤천쿤, 리친청, 저우루이양(왼쪽부터). 한국 선수는 한 명도 올라가지 못했다. 이세돌 9단(왼쪽)과 퉈자시 3단의 대국 모습.
1988년 대만의 갑부 잉창치(작고) 옹이 사상 최초로 바둑 세계대회를 개최한다고 발표하자, 당시만 해도 세계 바둑계의 리더로 자부하던 일본은 깜짝 놀랐고, 변방의 대만에게 최초의 세계대회를 빼앗길 수 없다는 생각에 부랴부랴 선수를 쳐 만든 것이 후지쓰배였다. 1988년은 세계대회 원년인데, 그 첫 번째 대회인 제1회 후지쓰배에서 우리는 8강에 한 사람도 올리지 못했다. 그래도 요즘 일본이 3등인 것처럼, 당시는 우리가 일본 중국 다음의 3등이었으니까 그걸 충격으로 받아들인 사람은 별로 없었다.
1997년 제10회 후지쓰배. 그때는 이미 확고부동한 세계 1등이었던 한국은 조훈현 서봉수 양재호 유창혁 이창호 최명훈, 톱클래스 6명이 타이틀 사냥에 나섰는데, 넷이 1회전(24강전)에서 떨어지고 서봉수와 유창혁만 본선2회전(16강)에 올라갔으나 8강을 밟지 못했다. 그렇게 두 번뿐이었다. 그러니 ‘사이버오로’가 지난 수요일의 결과를 ‘경악의 일대 참사’라면서 슬퍼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이번 LG배 32강전에 한국은 시드를 받은 이세돌 김지석 박정환 박영훈 조한승 이영구와 통합예선 통과자 이창호 최철한 강동윤 목진석 안조영 홍성지 안형준 김성진 등 모두 14명이 이름을 올렸다. 지난 기 준우승자 원성진은 시드 대상자였으나 군 복무로 일정이 맞지 않아 이영구가 대신 출전한 것.
글자 그대로 최정예군이었고, 신예 두 사람이 눈에 띄었다. 1989년생 동갑인 안형준 3단과 김성진 2단이다. 2008년에 입단한 안 3단은 이미 입지를 굳힌 강타자이고, 2011년에 데뷔한 김 2단은 그야말로 다크호스.
바둑팬들은 “여기까지 올라온 것만도 대단하지만, 두 사람 모두 상승세를 타고 있어 큰 거 하나 터뜨릴지 모른다”고 기대를 걸었고, 두 청년은 기대에 부응했다. 32강전에서 안형준은 현 중국 랭킹 1위 스웨 9단을 잡았고, 김성진은 간판스타 구리 9단을 꺾어 기염을 토했다.
그것 말고는 32강전은 전체적으로는 저조한 성적이었다. 이창호 김지석 박정환 최철한 강동윤 박영훈 조한승 홍성지 등 믿었던 선수들이 대거 탈락한 것. 남은 사람은 이세돌 이영구 목진석 안조영 안형준 김성진의 6명. 물론 이세돌이 살아남았고, 스웨와 구리를 무리친 안형준과 김성진은 더욱 사기충천해 있을 것이니 희망은 있다고 믿은 것인데. 결과는 전패였던 것.
이세돌은 중국 퉈자시 3단과 전면전을 벌이다가 카운터를 맞아 패했고 목진석은 리친청 2단에게 불계패를 당했다. 안조영, 이영구, 김성진은 각각 중국 저우루이양 9단, 일본 이야마 유타 9단, 중국 샤천쿤 2단에게 잘 나가다가 종반에서 조금 밀려 2집반, 1집반, 2집반을 졌다. 안형준은 중국 리저 6단을 상대로 용전분투했는데 마지막에 수읽기 착각으로 대마가 잡혔다.
중국은 위의 5명에 일본의 고노 린 9단을 꺾은 천야오예 9단을 합해 6명. 일본은 이영구에게 이긴 이야마 9단과 중국 궈위정 3단을 제친 다카오 신지 9단, 2명이 ‘대망의 8강 고지(?)’에 올라섰다. 일본이 8강에 2명씩이나 올라간 것은 실로 얼마만의 일인지. 일본기원 사이트는 자못 흥분한 분위기로 시간 단위로 진행을 속보하다가 8강이 확정되자 잔칫집 분위기. 잘된 일이다. 일본도 얼마 전에 “우리도 뭔가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면서 ‘국가대표’ 팀을 구성했는데, 그게 벌써 효과를 나타내고 있는 것인지. 아무튼 세계 바둑계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일본 바둑이 좀 살아나야 한다는 것에는 이의가 없다.
바둑이란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는 것. 전승할 수도 있고, 전패할 수도 있는 것. 다만, 5년 전쯤에 원로 프로기사 한 사람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앞으로 5년쯤 지나면 중국 천하가 될 것이다. 한국은 일본의 전철을 밟게 될지 모른다”는 예언 아닌 예언이었다. 설마 그런 날이 오지야 않을 것이라고 믿지만, 그런 중에도 이번 대패가 혹시 어떤 전조 같은 게 아닐까 하는 느낌도 들고, 예감이 좀 불길한 것도 사실이다.
이광구 객원기자
LG배 16강전 흑 퉈자시 3단 / 백 이세돌 9단
쎈돌, 코너 몰려 KO패
이세돌 9단과 퉈자시 3단의 바둑을 간단히 소개한다. 이세돌이 백이다. 중반까지는 이세돌 9단이 리드했다는 것이 검토실의 중론이었는데, 어느 한 순간 이 9단이 약간 느슨해지자 퉈자시 3단이 바로 추격해 <1도>의 장면에서는, 혼전이지만 흑이 약간이라도 좋아 보인다는 것.
백1은, 일종의 승부수. A의 곳이 변수다. 그러나 퉈자시는 유리한 중에도 강수를 연발하며 이 9단을 코너로 몰았고, 불계승을 거둔다.
<2도> 흑1로 건너붙이고 5로 끼운 것이 좋은 수순. 맥의 연타다. 흑은 선수로 백A를 방비한 후 상변으로 날아가 흑7, 9로 백의 엷음을 정확하게 찔렀다. 검토실에서도 우려하고 있는 바로 그 자리였다.
<3도>는 이어진 실전진행. 백은 1쪽을 막아 5까지 수습했으나 검토실은 “다섯 점을 잃은 것이 너무 컸다. 이래서는 졌다”면서 검토를 접은 것.
<2도> 백8 때 흑은 곧장 <4도> 1부터 움직이는 수도 있었다. 흑5까지 좌상귀를 접수하는 것. 백6이면? 흑7 정도로 대마의 사활은 염려할 게 없다는 것.
<3도> 백1로 <5도> 백1쪽으로 밀어 차단하는 것은 잘 안 된다. 백5 때 흑6으로 꼬부리는 수가 있다고 한다. 백은 7로 차단해야 하는데 흑8로 지키면서 A와 B를 맞본다는 것. 어쨌거나 이세돌 9단이 이런 식으로 지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인데… . 8강전은 2013년 11월 13일 예정, 이야마 유타-천야오예, 다카오 신지-퉈자시, 저우루이양-리친청, 리저-샤천쿤의 대결이다.
이광구 객원기자
쎈돌, 코너 몰려 KO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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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1은, 일종의 승부수. A의 곳이 변수다. 그러나 퉈자시는 유리한 중에도 강수를 연발하며 이 9단을 코너로 몰았고, 불계승을 거둔다.
<2도> 흑1로 건너붙이고 5로 끼운 것이 좋은 수순. 맥의 연타다. 흑은 선수로 백A를 방비한 후 상변으로 날아가 흑7, 9로 백의 엷음을 정확하게 찔렀다. 검토실에서도 우려하고 있는 바로 그 자리였다.
<3도>는 이어진 실전진행. 백은 1쪽을 막아 5까지 수습했으나 검토실은 “다섯 점을 잃은 것이 너무 컸다. 이래서는 졌다”면서 검토를 접은 것.
<2도> 백8 때 흑은 곧장 <4도> 1부터 움직이는 수도 있었다. 흑5까지 좌상귀를 접수하는 것. 백6이면? 흑7 정도로 대마의 사활은 염려할 게 없다는 것.
<3도> 백1로 <5도> 백1쪽으로 밀어 차단하는 것은 잘 안 된다. 백5 때 흑6으로 꼬부리는 수가 있다고 한다. 백은 7로 차단해야 하는데 흑8로 지키면서 A와 B를 맞본다는 것. 어쨌거나 이세돌 9단이 이런 식으로 지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인데… . 8강전은 2013년 11월 13일 예정, 이야마 유타-천야오예, 다카오 신지-퉈자시, 저우루이양-리친청, 리저-샤천쿤의 대결이다.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