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길남씨의 지난 93년 모습. | ||
특히 송씨의 친북 성향 활동이 조사 과정에서 갈수록 증폭되면서 그에 의해 입북을 권유당했다고 주장하는 오씨가 뉴스의 핵심 인물로 부상하고 있는 상태. 오씨는 최근 몇몇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송씨에 대해 ‘애증’이 교차하는 복잡한 심경을 표출하고 있다. 또한 파장이 갈수록 확대되자 오씨는 결국 연구소에 휴가를 내고 잠적하기에 이르렀다.
자신에 대한 구속·불구속 여부가 쟁점으로 부각되던 지난 10월2일 송두율씨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송씨는 “오씨의 입북을 권유한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의 탈북 후 재입북을 강요 또는 협박한 적도 전혀 없다”며 오씨의 주장을 반박했다. 이때부터 오씨가 근무하는 한 연구소의 전화는 불이 났다.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오씨 또한 강력하게 반발했다. “분명히 송씨의 입북 권유가 있었다”는 것이 그의 주장. 그러나 같은 날 거의 동시에 이뤄진 네 개 언론사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밝힌 오씨의 송씨에 대한 소회는 조금씩 미묘한 차이를 드러냈다.
오씨는 지난 2일과 3일 양일간에 걸쳐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연합뉴스> 등 4개사와 인터뷰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의 주장에 이은 송씨의 재반박이 제기되는 등 파문이 확산되면서 오씨는 아예 연구소에 휴가를 내고 잠적하기에 이르렀다. 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6일 “최근 잇따른 인터뷰 요청으로 곤혹스러운 입장이 된 오 위원이 부산으로 잠시 쉬러 간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고 전했다.
오씨의 입북 과정에서 송씨의 권유가 있었는지의 여부는 오씨가 한국에 자수했던 지난 92년 5월 한 차례 쟁점화된 적이 있다. 재독 음악가와 사회학자인 윤이상씨와 송씨가 자신의 입북을 권유하거나 협박 강요했다는 것이 당시 자수간첩 오씨의 주장이었다.
이에 대해 독일에 머물던 윤씨와 송씨는 현지에서 성명을 내고 “오씨의 주장은 전혀 사실무근이며 우리들은 오씨의 입북사실조차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반박했다. 송씨의 기자회견 내용을 전해들은 오씨는 “85년 8월께 독일 브레멘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고 난 후 송씨를 만나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더니 송씨가 국내의 혼란한 상황을 이야기하며 ‘버텨서 군사독재에 대항해야 하지 않겠느냐’‘독일의 윤아무개씨와 프랑스의 허아무개씨도 북으로 갔는데 우리가 기댈 곳이 어딘가’라며 입북을 권유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다른 인터뷰에서의 그의 발언 뉘앙스는 약간 다르다. 여기서 그는 “송 교수는 직접 화법으로 말하는 법이 좀처럼 없기 때문에 방향을 제시하고 조용히 권유하는 스타일인데, 그가 ‘우리가 등을 기댈 데가 없다’는 말을 했고 그 말을 내가 덜컥 받아들였다”며 “송 교수에겐 섭섭하지만 전적으로 내 책임이다”라고 밝혔다.
또다른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는 “송 교수는 원래 무슨 말이든 직접적으로 하는 편이 아니다. 다만 방향제시 정도는 있었다”며 말 끝을 흐렸다고 전하고 있다. 반면 오씨가 지난 92년 자수 당시 안기부 조사에서 입북 배경에 대해 밝힌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자본론 등 공산주의 경제이론에 심취돼 북한이 모든 분야에 균형을 유지하면서 경제발전을 이뤄나가는 곳으로 착각했다. 지난 85년 7월 브레멘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나 일정한 직업도 없이 아내마저 간염으로 앓아누워 생계가 어려웠다. 이때 재독 친북인사인 김아무개씨로부터 입북권유를 받고 북한 대남 공작원에게 인계돼 입북하게 됐다.”
오씨는 송씨의 노동당 입당에 대해서도 따끔한 비판을 가했다. 송씨는 “북한에 입국하기 위해 통과의례적인 의미로 평양 공항에서 노동당 입당원서를 썼다”라고 밝혔는데, 오씨는 “노동당 가입은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다”라면서 “나를 비롯해 당시 외국에서 입북한 학자들 중에서 노동당원이 될 수 있었던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반박했다.
그는 “나도 북한에 일년 정도 머무를 때 부총리급 월급을 받는 등 거물 대접을 받았지만 송 교수는 북한에 올 때마다 벤츠 승용차를 이용하는 등 더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그가 북한 정치에 관여하지는 않았겠지만 후보위원 등 정권 핵심인사에 준하는 대우를 받은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반면 송씨 개인에 대한 느낌에서는 여전히 연민의 정을 곳곳에서 표출하고 있다. 오씨는 “그는 정말 뛰어난 학자이고 막역한 친구였다”며 “내가 제일 존경하는 사람 중의 하나이다. 내가 죽은 뒤에 돌아왔다면 이런 괴로운 일도 없었을 텐데…”라는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오씨는 “뛰어난 학자인 송씨가 앞으로 정말 학문활동만 열심히 하기를 바란다”며 “당분간 한국에 있기는 어렵겠지만 북한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일정한 시간을 보내고 나면 국내에서 학자로서의 탁월한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섞인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인터뷰에서는 전혀 상반된 감정을 드러냈다. 그는 “대질신문에서 내가 송씨를 보고 ‘내가 죽은 다음에 들어오지 왜 지금 와서 나를 괴롭히느냐. 내가 모질지 못해 당신이 아니라고 하면 내가 따지지 못하지 않느냐’고 하니 그가 말을 못하더라”라고 밝혔다. 또 다른 인터뷰에서는 “이번 회견을 보니 반성이라곤 추호도 하질 않았고 가증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악마의 면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고 느꼈다”며 극도의 증오심을 드러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