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쩍이는 ‘쇼핑창’ 이걸 열어? 닫어?
▲ 임영무 기자 namoo@ilyo.co.kr | ||
업무 중 즐기는 잠깐의 외도는 중독성이 있다. 주요뉴스만 검색하던 마우스가 연예뉴스를 훑고 있고 안부를 전하던 메신저 창은 가십 토론장으로 변해있다. 그만큼 직장인들에게 있어 딴짓은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다. 특히 친구나 직장동료와 사적인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메신저는 필수 아이템이다.
교육컨설팅 업체에 근무하는 K 씨(여·28)는 출근하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메신저 로그인을 한다. 그러면 메신저 창을 통해 연달아 로그인하는 친구들과 동료들을 볼 수 있다.
“출근시간은 거의 다 비슷하잖아요. 그래서 메신저 로그인도 거의 동시에 이뤄지죠. 출근하고 30분 이내면 수십 명이 온라인 상태예요. 상사나 업무 때문에 ‘짜증지수’가 폭발할 것 같은 순간엔 동료와의 메신저 수다로 풀어요. 그런 것마저 없으면 스트레스를 견디기 힘들죠.”
K 씨가 비교적 맘 놓고 딴짓으로 메신저를 애용할 수 있는 것은 ‘투명창’ 기능 덕이 크다. 외국계 메신저가 독식하던 시절 토종 메신저가 대화창이 투명해지는 기능을 개발하면서 판세를 뒤엎었다. K 씨는 “업무파일 위에 띄워놓으면 절대 들킬 염려가 없다”며 “지나치지 않는 이상 메신저는 소통 창구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딴짓으로 쇼핑도 빼놓을 수 없다. 무궁무진한 온라인 쇼핑몰의 세계로 빠져들면 수시로 몰아의 경지를 넘나들게 된다. 정유업체에 근무하는 P 씨(여·27)는 옷에 관심이 많다. 자주 들어가는 쇼핑몰을 즐겨찾기 해놓고 틈나는 대로 ‘눈팅’을 한다.
“한 번 보면 계속 마우스를 클릭하게 되죠. 좀만 여유가 생기면 저도 모르게 쇼핑몰 창을 열고 있어요. 옷뿐 아니라 구두 가방 지갑 IT 상품 등 볼 것들이 너무 많아요. 옷을 보다보면 구두가 보이고 구두를 보다보면 머플러가 보여서 계속 연결되는 거죠. 이젠 노하우가 생겨서 굳이 직접 쇼핑하러 가지 않아도 온라인 쇼핑으로 충분하기 때문에 더 열중하게 되더라고요.”
쇼핑만큼 인기를 끄는 딴짓은 미니홈피와 블로그 ‘업로드’다. 퇴근 후에는 약속을 잡거나 들어가 쓰러져 자기 바쁜 직장인들에게 업무 중 홈피관리는 일반화돼 있다. 휴학과 해외봉사활동으로 졸업이 늦어 아직 학교를 다니고 있는 H 씨(여·27)는 한창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친구들의 미니홈피 관리가 자신보다 잘되는 것이 놀랍다.
“사진이나 글이 올라오는 시간을 보면 분명 업무 중인 때가 많아요. 심지어 ‘방금 찍은 따끈한 셀카’라는 제목의 사진도 근무 중에 찍은 거죠. 어떤 친구는 대기업에 다니는데도 유명한 포털 사이트에 다니는 다른 친구를 보면서 업로드할 시간 많겠다며 부러워한다니까요. 정말 숨 돌릴 틈 없이 일하는 친구들도 있는데 이렇게 근무 중에 홈피 관리를 해도 되나 싶어요.”
H 씨는 친구들을 보면 미니홈피나 블로그 관리도 업무 중 하나가 된 것 같다고 느낀다. 사진이나 글 업데이트가 거의 매일, 그것도 수시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는 “업로드할 시간이 많아 부럽다는 친구에게 회사에 다니지 말고 자영업을 하라고 쓴소리를 했다”며 “가볍게 한눈을 팔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직장인이 대부분이지만 간혹 지나친 경우도 보게 된다”고 전했다.
직장을 ‘제2 사업장’으로 여기는 경우도 있다. 공기업에 다니는 J 씨(33)는 많은 직장인들처럼 주식투자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한다.
“시시각각 상황이 변하는 것이 주식이기 때문에 보지 않을 수가 없어요. 업무를 하면서 주식 차트나 주가 추이를 몰래 보는 게 쉽지는 않죠. 컴퓨터는 HTS(Home Trading System) 접속을 막아놔서 휴대폰을 이용해서 매매하거나 화장실 갔을 때 몰래 보죠. 이렇게 하다가 전업 투자자가 되신 분도 봤어요. 사실 직장에서는 전화 한 통화도 눈치 보이니까요. 외근 나갔다 들어오는 길에 그냥 투자 회사를 살짝 둘러보고 오는 정도죠.”
J 씨는 많은 직장인들이 주식 투자에 공을 들이고 있지만 사실 쉽지는 않다고 말한다. 회사에서 접속 자체를 막아놓은 경우가 많기 때문. 그는 “HTS를 몰래 연결하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 큰 회사의 경우 IP 추적으로 바로 전산팀에서 연락이 올 것”이라며 “하지만 사람 심리가 돈을 투자한 이상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어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 한눈을 팔게 된다”고 고백했다. 외국계 기업에 다니는 C 씨(36)도 직장을 다니면서 틈틈이 딴짓을 해서 수익을 올리고 있다. 직장동료와 함께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기농 초콜릿을 수입해서 판매하는 온라인 쇼핑몰을 하고 있어요. 직장동료와 제가 갖고 있는 업무의 전문성이 다르기 때문에 각자의 장점을 합치니까 효율적이더라고요. 배송 등의 문제는 집에서 아내나 다른 가족들이 하고 물품 수입이나 게시판 답변 등의 업무는 회사에서 제가 처리합니다. 영업파트인 동업자는 외근이 많아 밖에서 쇼핑몰 영업을 하고 올 때도 많고요.”
C 씨는 여러 사람이 같이 하기 때문에 직장에서 틈틈이 딴짓을 하는 것만으로도 운영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그는 쇼핑몰이 어느 정도 안정된 궤도에 오를 때까지는 직장을 그만둘 생각이 없다. 직업 특성상 대범한 딴짓이 가능한 경우도 있다. 중견기업 영업부서에 근무하는 L 씨(31)는 거래처를 돌면서 틈틈이 악기학원에 들린다.
“예전부터 기타에 관심이 많아서 레슨을 받고 있어요. 평일에는 퇴근시간이 일정치 않아서 정규 수업을 주말로 잡았는데 레슨 이외의 시간에도 학원에 가서 연습할 필요성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영업 나가는 길에 짬짬이 들러서 한두 시간씩 연습을 해요.”
직장인들이 하루 종일 업무에만 올인하기는 힘들다. 업무만 하다보면 집중력도 떨어지고 몰입할 수 없는 것이 현실. 게다가 요즘 젊은 직장인의 경우 인터넷을 기반으로 ‘거미줄’을 쳐 놓고 이를 통해 성과를 내기도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주객이 전도되어 딴짓이 업무시간을 압도하는 것은 곤란하다. 대기업 인사팀의 한 관리자는 “업무에 지장이 없다고 해도 고용자나 상사 입장에서 용납되기는 쉽지 않다”며 “스트레스 해소용 이상의 딴짓은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다영 프리랜서 dylee2@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