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 꽂혔다면서 시선은 왜 딴데로...
▲ 외환은행 본점. 민유성 산은금융지주 회장(작은사진)이 외환은행보다 국외은행 인수에 관심이 있다고 밝혔지만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분위기는 아니다.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
지난 8일 민유성 회장은 “외환은행은 주가가 많이 올라 가격도 매우 비싼 편”이라며 “현재 아시아 시장에 관심을 두고 있는데 특히 동남아시아 등에서 두세 은행을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인도네시아 언론에서는 산은금융이 인도네시아 뱅크센추리 인수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민 회장은 국내 은행들과 소매금융 경쟁을 벌이기보다 해외에서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사업 등을 개척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러한 그의 발언으로 외환은행 인수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되던 산은금융은 국내 은행 M&A에서 한 발 물러선 모양새를 취하게 됐다. 금융권에서는 산은금융이 해외에서는 은행을 인수하고 국내에서는 보험사와 카드사 등을 인수, 상업투자은행(CIB) 체제를 구축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민 회장이 연막작전을 쓰고 있는 것 아니냐’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산은금융이 해외 은행 인수에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가 외환은행의 인수가격이 적정 수준으로 떨어지면 그때를 노릴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사실 민 회장의 말처럼 외환은행 주가는 세계 금융위기 직후인 지난해 11월 5000원대에서 최근 1만 4000원 내외로 세 배 가까이 올랐다. 산은금융이 외환은행을 단독으로 인수하기 위해서는 6조 원대의 ‘실탄’이 필요한 만큼 부담이 큰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KB금융지주가 공개적으로 외환은행 인수 의사를 밝히고 신용-경제 분리를 추진 중인 농협도 관심을 보이고 있어 경쟁으로 인해 외환은행 가격이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때 산은금융이 외환은행 인수의 가장 유력한 후보로 떠오르는 등 치열한 인수전이 예견되는 상황에서 외환은행의 대주주 론스타는 “1년 안에 외환은행을 매각하겠다”고 밝히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민 회장의 발언은 이러한 론스타의 기대감에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이처럼 여러 이유에서 민 회장이 해외를 가리키고 있지만, 민영화를 위한 첫걸음을 뗀 산은금융은 그동안 기업금융만 전문으로 해오면서 수신 기반이 취약해 국내 은행 인수가 필수적이다. 그동안 대규모 사회간접자본(SOC) 등 타 은행들과 경쟁이 없는 분야에서 손쉽게 자금을 지원해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랐기 때문에 국내 은행 인수가 산은금융에게는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인 것. 적잖은 금융 관계자들이 산은금융이 외환은행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고 보는 이유다.
산은금융 관계자는 “국외 은행을 중점적으로 살펴보고 있고 여전히 국내 은행도 고려하고 있다”며 “여러 가지 가능성을 폭 넓게 검토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글로벌 투자은행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신중하게 M&A를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금융당국 일각에서는 산은금융의 외환은행 인수를 달갑지 않게 여기는 분위기도 있다고 한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산은금융 내부에서도 아직 민영화 준비가 완벽히 되지 않은 상황에서 외환은행이라는 ‘대어’를 인수할 경우 부실화만 가중될 위험이 있다”며 “덩치만 키우려고 하다가는 세계 금융위기 때처럼 대규모 손실을 견디지 못하고 청산절차에 들어간 투자은행들과 같은 신세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거액을 들여 외환은행을 인수할 경우 ‘해외 투기자본의 먹튀’를 도왔다는 국민들의 비판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산은금융은 총 자산이 175조 원으로 5개 자회사와 19개 손자회사에 임직원만 5800명이 넘으며 영업점 수는 196개에 달한다. 지금도 덩치가 크지만 지분매각에 앞서 몸값을 높이려고 M&A를 통해 몸집 불리기를 하고 있다. 정부 입장에서는 정책금융을 위한 자금을 최대한 마련하기 위해서 덩치가 커진 산은금융을 비싸게 파는 것이 유리하다. 이러한 정부의 바람이 산은금융의 적극적 M&A 행보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덩치가 너무 커져 매각이 힘들어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수백조 원대의 산은금융을 시장에서 소화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상장 전후로 전체 매각이 아닌 지분을 덩어리째 파는 ‘블록 세일’을 추진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산은법 개정안에 따르면 최초 지분 매각은 2014년 5월까지 이뤄져야 한다. 민 회장은 내년 중에 M&A를 마무리 짓고 산은금융의 증시 상장도 진행해 2011년 국내 상장, 2012년 해외 상장을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한편 산은금융의 발 빠른 행보를 불안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곳이 있다. 기업은행이 바로 그곳. 지난해 3월 기획재정부는 산업은행 기업은행 우리금융을 묶어 금융지주회사로 만든 뒤 매각해 아시아 10대 은행을 만들겠다는 ‘메가뱅크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이에 금융위원회는 산은금융 단독 민영화 방안으로 맞섰고 결국 자산규모 500조 원이 넘는 메가뱅크는 매각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으로 금융위원회 안이 채택됐다.
산은금융 단독 민영화에 기업은행은 한숨을 돌렸지만 금융권에서는 산은금융의 기업은행 M&A설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중소기업 육성 등 산은금융과 기업은행의 중복 업무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 입장에서는 국책은행인 기업은행도 민영화할 계획을 가지고 있는 만큼 산은금융과의 합병을 바랄 수 있다는 것.
기업은행 내부 관계자는 “산은금융에 흡수·합병되면 중복되는 업무를 하던 인원들에 대한 구조조정이 있을 수 있는 만큼 내부에서는 걱정을 하고 있다”며 “우리도 산은금융처럼 독자적으로 생존해 민영화를 이룩하겠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따라서 산은금융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윤구 기자 trus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