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 징검다리 혹은 삼촌 말뚝박기?
▲ 구본무 LG 회장(오른쪽)과 동생 구본준 LG상사 부회장. 구 부회장의 보직 변경설이 일자 그룹 내 세대교체설이 힘을 받고 있다. | ||
LG전자는 올 2분기 사상 최대 실적 달성에 이어 3분기에도 나무랄 데 없는 성적을 거뒀다. 최근 공시에 따르면 LG전자의 올 3분기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지난해 동기 대비 각각 14.2%, 78.6% 늘어났으며 당기순이익은 무려 30배 이상 증가했다. 올 3분기 창사 이래 최대 분기 실적을 기록한 LG화학과 더불어 그룹 내에서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한 셈이다.
그러나 이는 환율 상승에 따른 단기적 특수라는 지적도 있다. 향후 세계경기를 낙관할 수만은 없는 만큼 수치상으로 나타난 실적에 안주할 수 없는 터라 변화가 요구된다는 내부 의견도 들려온다. 이로 인해 일각에선 오너 경영인 구본준 부회장의 LG전자행을 통한 ‘책임경영’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만약 구 부회장이 LG전자로 자리를 옮길 경우 지난 2003년 구본무 회장의 당숙 구자홍 현 LS 회장 이후 6년 만에 오너 경영인이 LG전자를 맡게 된다.
그동안 LG그룹 안팎에선 “구 부회장이 LG전자행을 희망한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나돌았다. 구 부회장은 지난 1994년부터 1996년까지 LG전자에서 상무로 재직했으며 1998년부터 1999년까지 LG반도체 대표이사를 지냈다. 1999년 LG반도체가 현대전자(현 하이닉스반도체)에 합병된 이후 LG필립스LCD(현 LG디스플레이) 대표이사를 맡았다가 2007년 초 실적부진 논란 속에 LG상사 대표이사로 자리를 옮겼다.
LG상사로 오기 전까지 몸담았던 전자부문에 대한 애착이 남다른 구 부회장의 LG전자행 소문은 그룹 내 이른바 ‘구본준 사단’의 기대 또한 부풀리고 있다고 한다. 현재 LG전자의 수장이 대표적 가신 남용 부회장이란 점은 구 부회장 보직 변경설과 맞물려 여러 말을 낳게 한다. 만약 구 부회장이 LG전자 새 CEO로 전격 발탁될 경우 회장 비서실 출신의 남용 부회장을 비롯한 그룹 내 노신 세력의 입지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주목받는 것이다.
올해 50세인 조준호 ㈜LG 대표이사 부사장의 연말 사장 승진설이 눈길을 끄는 가운데 58세인 구 부회장의 LG전자행 소문은 그룹 내 세대교체 바람도 부채질할 태세다. 이상철 전 정보통신부 장관이 내년 초 출범할 LG ‘3콤’(텔레콤·데이콤·파워콤) 합병법인 수장으로 내정되면서 ㈜LG의 강유식, LG화학의 김반석, LG전자의 남용 등으로 짜인 기존 60대 부회장단 라인업의 변화 가능성 또한 주목받아왔다.
LG전자 같은 주력 계열사 CEO 교체엔 지난 1995년 총수직에서 물러난 구자경 명예회장(구본무 회장 부친)이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입김을 행사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지난 2006년 말 LG전자 CEO가 김쌍수 당시 대표이사 부회장(현 한국전력 사장)에서 남용 부회장으로 바뀌는 막후에도 구 명예회장의 의지가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고 재계 관계자들은 이를 정설로 받아들였다.
만약 구 명예회장의 의중이 구본준 부회장의 LG전자행으로 흐를 경우 이는 그룹 후계 구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지난 9월 웨딩마치를 울린 구광모 씨(구본무 회장의 아들)의 LG그룹 복귀가 임박한 것으로 관측되지만 후계작업은 아직 공식화되지 않고 있다. 그의 나이 올해 31세에 불과한 데다 구본무-본준 형제가 아직 한창 경영일선을 누빌 때란 점에서 본격 후계 논의는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후에 가능할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룹 지주사인 ㈜LG 지분율 변동 역시 구자경 명예회장 중심의 오너 일가 회의의 몫이다. 구광모 씨는 지난 2004년 말 구 회장의 양자가 된 이후로 ㈜LG 지분율을 빠르게 늘려왔지만 아직 작은아버지 구본준 부회장의 벽을 넘어서지 못한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현재 ㈜LG 최대주주는 10.68% 지분율의 구 회장이며 7.58%의 구 부회장이 2대주주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분율 4.67%의 구광모 씨는 친아버지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5.01%)에 이은 4대 주주에 올라 있다.
지난 10월 중순 LG가에선 수십만 주의 ㈜LG 지분 이동이 있었다. 고 구인회 창업주의 차녀이자 구 회장의 고모인 구자혜 씨가 보유해오던 64만 8295주가 아들 이선용 씨에게 상속됐는데 이 씨는 이 가운데 23만 4000주를 지난 10월 19일 장내매도한 것으로 공시됐다. 같은 날 구자혜 씨 남편 이재연 아시안스타 회장도 ㈜LG 지분 3만 8000주를 장내매도했다. 이날 구 회장 등 오너 일가 인사 네 명은 이재연 회장 일가가 매도한 지분과 같은 양의 ㈜LG 지분을 장내에서 사들였다.
구광모 씨는 그동안 방계 인사가 내놓은 지분을 장내에서 사들이는 방식으로 ㈜LG 지분율을 늘려왔다. 그런데 이번 지분 거래 목록에 구광모 씨 이름은 없었다. 구광모 씨는 지난 3월 구 회장의 여동생 구미정 씨가 내놓은 지분 29만 8000주 중 14만 8000주를 사들인 이후로 지분을 늘리지 못하고 있다.
재계에선 ‘장자승계 원칙’을 고수해온 LG가에서 구광모 씨를 구 회장 대를 이을 ‘황태자감’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LG 측에선 이와 관련된 공식 언급이 아직 없다. 구광모 씨 지분율이 정체된 상태에서 작은아버지인 구본준 부회장이 LG전자행을 통해 그룹 내 위상을 높일 경우 이것이 LG가의 4대째 장자승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도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일각에선 구본준 부회장의 입지 강화를 통한 세대교체 작업으로 구광모 씨 승계구도 안착을 도모할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그러나 오너 일가 일원이면서 경영능력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는 구 부회장이 품고 있을 포부에 주목하는 시선도 있다.
지난 11월 5일 고 박용오 전 두산그룹 회장 장례식장을 찾은 구 부회장은 LG전자행 가능성을 묻는 기자들에게 “할 말 없다”는 말만 남기고 자리를 빠져나갔다. LG그룹 정기인사는 전례에 따라 올 12월 중순께 발표될 전망이다. 과연 아니 땐 굴뚝에 연기만 나고 있는 것일까. 조만간 공개될 LG그룹 인사 리스트에 재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