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임자는 홍’ 물밑작업 치밀했다
축구대표팀 새 수장에 오른 홍명보 감독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일사천리로 진행된 선임 작업을 보면서 축구계 일각에서는 “깜짝” “전격”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이미 대한축구협회 차원의 극비 프로젝트는 오래전부터 가동되고 있었다. 전임자였던 최 감독이 대표팀을 이끌고 아시아 최종예선을 치르고 있는 마당에 공식화할 수 없었을 뿐, 3월 최종예선 5차전 카타르와 홈경기(2-1 한국 승)를 기점으로 축구협회는 새 감독을 찾는 작업에 돌입했다고 한다. 좀 더 정확한 표현을 하자면 알고도 외부에 발설 못하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심정이었다. 만약 “(새 감독을) 찾고 있다”고 해도, “찾지 않고 있다”고 해도 비난이 쏟아질 것은 뻔했다.
축구계에서 수많은 풍문이 나오고 있을 때, 또 외국인 사령탑의 이름이 하마평에 오르내릴 때조차 축구협회 정몽규 회장은 최근 공식 행사에서 “아시아 최종예선이 끝나는 대로 공식적인 자리를 마련해 최 감독과 대화를 나눠봐야 한다”고 했고, 허정무 부회장도 “최 감독이 계속 이끌 수도 있는 게 아니냐”는 뜻을 전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내막을 잘 모르던 일부 매체들이 “최 감독이 안 한다는데 왜 정 회장과 축구협회는 고집스럽게 연임을 운운하느냐”고 했지만 이는 완전히 잘못 짚은 셈이었다.
# 치밀, 또 치밀
새 감독 선임 작업은 비밀스럽고도 아주 치밀했다. 이와 관련한 소문들이 외부로 흘러나갈 것을 우려해 창구도 최소화했다. 축구협회 실무진 가운데 감독 선임 작업 사실을 알고 있는 인물들은 극히 적었다고 한다. 대부분 “아무래도 홍 감독이 (대표팀 지휘봉을) 맡지 않겠느냐”는 분위기가 감지됐을 뿐, 축구협회 정몽규 회장을 비롯해 3~4명만이 극비리에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절차와 일련의 과정은 지켜야 했다. 원리와 원칙을 중시하는 정 회장은 프로축구연맹 총재직을 맡고 있던 시기, 축구협회 전임 수장이었던 조중연 회장과 당시 수뇌부가 범했던 실책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축구협회는 조광래 전 감독을 경질한 뒤 최 감독을 불러들이는 과정에서 적법한 규정에 따른 기술위원회 절차를 거치지 않아 여론의 따가운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축구협회 현 집행부가 가장 걱정했던 부분이기도 했다.
2012 런던올림픽 남자축구 8강전 영국과의 경기에서 승리 후 홍명보 감독과 선수들이 기뻐하는 모습. 연합뉴스
축구협회는 사실 외국인 감독을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정 회장이 직접 접촉한 인물도 있었다. 국제축구연맹(FIFA) 관련 각종 행사를 위해 해외 출장길을 오가면서 2010남아공월드컵에서 모국 네덜란드를 준우승으로 이끈 판 마르바이크 감독과도 접촉했다. 그러나 마르바이크 감독은 오랜 고민 끝에 거절 의사를 전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2002년 월드컵에서 거스 히딩크 감독(러시아 프리미어리그 안지 마하치칼라)의 발자취 탓이었다. “같은 네덜란드 감독인데, 더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하면 내 입장에서도 아쉽다”며 거절했다고 알려진다. 이밖에 터키 출신으로 2002년 월드컵에서 터키를 3위로 이끌었고, K리그 클래식 FC서울을 지도하기도 했던 세뇰 귀네슈 감독도 후보 리스트에 올랐지만 어디까지나 판 마르바이크 감독의 후순위였다. 한때 포항에서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정상을 밟는 등 화려하게 꽃을 피웠던 세르히오 파리아스 감독은 차기 월드컵 개최국인 브라질 출신이라는 점이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했지만 포항을 떠날 때의 비정상적인 행적과 최근 중국 슈퍼리그에서의 성과가 좋지 못해 일찌감치 후보에서 아웃됐다.
결국 축구협회는 국내 지도자를 뽑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고 기왕이면 미래를 내다보는 차원에서 젊은 감독에게 기회를 주기로 결정했다. U-20 이집트 월드컵 8강, 광저우 아시안게임 동메달, 작년 런던올림픽 동메달 업적을 일군 홍 감독이 모든 조건에 부합되는 적임자로 꼽힌 것은 당연지사. 그렇다고 해서 축구협회가 대표팀의 특수성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었다. 홍 감독은 대표팀 코치로 2006독일월드컵을 경험했지만 성인 무대와 청소년 무대는 여러모로 달랐다. 더욱이 대표팀 감독이란 자리는 여론이 악화되면 계약기간과 상관없이 언제든 물러날 각오도 있어야 했다. 그래서 일각에서 나온 “축구협회가 홍 감독에게 브라질월드컵 이후 2018러시아월드컵까지 지위를 보장할 것”이라는 예상은 실제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정 회장의 성향을 잘 아는 한 지인도 “검증 작업이 필요하다는 걸 정 회장도 분명 인식하고 있었다. 최측근들의 의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계약 연장이 추후 이뤄지지 않는 한 홍 감독이 현 임기 내에서 가능한 월드컵은 브라질 대회가 마지막”이라고 했다.
홍 감독은 최근 옛 스승인 히딩크 감독(오른쪽)의 도움 속에 안지에서 지도자 단기 연수를 마쳤다. 맨 왼쪽은 홍명보호 합류가 유력한 김태영 코치. 일요신문DB
양측이 마지막 교감을 나누고 대표팀에 새 시대를 열기로 한 건 6월 초였다. 그때 홍 감독은 옛 스승인 히딩크 감독의 도움 속에 안지에서 5개월간의 지도자 단기 연수를 마치고 미국에 머물고 있던 시점이었다. 하지만 홍 감독 역시 워낙 민감한 사안인지라 가족에게조차 이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그렇게 홍 감독으로부터 긍정적인 답변을 받자마자 축구협회는 한국-이란 간의 아시아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18일, 울산문수경기장)가 끝난 다음 날인 19일 오전 최강희 전 감독과의 결별을 공식화했고, 곧바로 기술위원회(위원장 황보관)를 열어 세부 작업을 어느 정도 마쳤다. 모든 과정을 끝내자 이후부터는 속전속결이었다. 8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한 마당에 괜히 시간을 끌어 불필요한 오해를 살 필요도 없었다. ‘홍명보 시대’가 열린 순간이었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
그에게 바란다
‘홍명보 스타일’ 보여줘
“그 만한 인물을 어디서 찾겠어?”
한 원로 축구인의 코멘트였다. 홍명보 감독이 국가대표팀 사령탑에 선임되면서 축구계의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어차피 시기가 문제였을 뿐, 한국 축구가 낳은 최고의 스타 출신인 홍 감독의 선임은 이미 예정된 수순이었다고 보는 시선이 많다. 당연히 안팎에서 홍 감독에 거는 기대감은 엄청나다. 그런 만큼 홍 감독이 차차 풀어가야 할 숙제들이 산적해 있다.
무엇보다 최근 대표팀 내 분위기가 뒤숭숭했다는 루머가 흘러나오면서 불안감이 드리워졌다. 일단 진실은 당장 확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대표팀 소집 훈련 등 현장을 직접 취재해본 기자들은 뭔가 예전과 느낌이 확연하게 다르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지난 3월 최종예선 카타르 홈경기를 준비하며 이청용(볼턴)은 “내가 부상을 당하기 전에는 대표팀이 활기차고 밝은 분위기였다. 하지만 (돌아와 보니) 선수들 간의 대화가 부족했던 것 같다”는 모호한 말을 남겼다. 이청용이 언급한 ‘대화 부족’이 선수단 내 불화로 직접 해석할 수야 없겠지만 그만큼 선수들도 기자들과 비슷한 생각을 한다는 점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실제로 많은 축구 관계자들이 대표팀 내 파벌을 우려하고 있다. 해외파와 국내파로 나뉘어 있고, 해외파는 유럽과 중동, 일본 등으로 갈렸다는 얘기다. 여기에 국내파는 작년 올림픽 동메달에 기여했느냐 여부로 묘하게 나뉜다는 소문도 있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정말 최악의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과거 끈끈한 조직력과 팀워크를 최대 장점으로 삼았던 한국 축구다. 물론 내부인인 선수들은 이에 대해 “그런 사실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는 일이 없다’. 대표팀 내 물을 흐리는 일부 선수들도 있다고 한다.
홍 감독도 이를 의식한 듯하다. 취임 기자회견에서 “내년 월드컵대표팀의 슬로건은 ‘원 팀’ ‘원 스피릿’ ‘원 골’이 될 것이며 여기서 벗어나는 선수는 결코 대표팀에 들어오기 쉽지 않다”고 선언했다. 하나의 팀, 하나의 정신, 하나의 목표로 똘똘 뭉치겠다는 의지다. 그러면서 한마디를 덧붙였다. “국내 무대에서 뛰다 외국에서 몇 년 생활하다보면 외국인 선수 의식으로 바뀔 수 있다. 이런 변화하는 선수들의 의식도 지도자들이 준비해야 한다.”
국내파와 유럽파가 좀처럼 융화되지 않는다는 소문을 이미 인지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 셈이다. 실제로 홍 감독은 국내 지도자들 중에서도 냉철한 편에 속한다. 언제 어디서든 자신이 키운 선수들이라고 해서 마냥 감싸지 않았다. 자신이 생각하는, 또 자신이 염두에 둔 기준에서 벗어나는 선수들은 과감하게 내쳤다. 이 중에는 소위 특급으로 불리는 선수들도 몇몇 있었다.
이영진 전 대구FC 감독은 “학연, 지연 등에 얽매이지 않아야 하는데, 한국에서 그렇게 되기는 솔직히 쉽지 않다”면서도 “홍 감독은 그래도 다르리라 믿는다. 이미 그런 모습을 꾸준히 보여줬다”고 말한다. 홍 감독과 2002한일월드컵 4강 신화를 함께 만들면서 절친으로 통하는 황선홍 포항 스틸러스 감독도 “연령별 대표팀을 이끌면서 많은 선수들을 체크해왔다. 장단점이며, 성격까지 두루 꿰고 있는 홍 감독이 아주 잘해 주리라 믿는다”고 했다.
더불어 홍 감독은 최강희호 체제에서 조금은(?) 아쉬웠던 ‘무색무취’ 플레이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이는 최 전 감독이 못했다는 의미보다는 K리그 클래식(1부 리그) 전북 현대를 맡았던 2011시즌까지, 화끈했던 ‘닥공(닥치고 공격) 축구’에서 다소 퇴색했다는 아쉬움이다. 하프라인 아래에 타이트하게 내려서는 아시아 상대국들의 특성 탓에, 미드필드를 생략한 채 후방에서 최전방으로 길게 내차는 형식의 단조로운 축구에 여론이 들끓었다. 차라리 조광래 전 감독 시절에는 ‘만화축구’로 표현될 정도로 재미있고 박진감 넘치는 경기력을 느꼈다는 팬들이 많았다. 물론 1년 만에 모든 걸 바꾸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홍명보호가 추구하는 축구 스타일이 뭔지는 드러나야 한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
‘홍명보 스타일’ 보여줘
한 원로 축구인의 코멘트였다. 홍명보 감독이 국가대표팀 사령탑에 선임되면서 축구계의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어차피 시기가 문제였을 뿐, 한국 축구가 낳은 최고의 스타 출신인 홍 감독의 선임은 이미 예정된 수순이었다고 보는 시선이 많다. 당연히 안팎에서 홍 감독에 거는 기대감은 엄청나다. 그런 만큼 홍 감독이 차차 풀어가야 할 숙제들이 산적해 있다.
무엇보다 최근 대표팀 내 분위기가 뒤숭숭했다는 루머가 흘러나오면서 불안감이 드리워졌다. 일단 진실은 당장 확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대표팀 소집 훈련 등 현장을 직접 취재해본 기자들은 뭔가 예전과 느낌이 확연하게 다르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지난 3월 최종예선 카타르 홈경기를 준비하며 이청용(볼턴)은 “내가 부상을 당하기 전에는 대표팀이 활기차고 밝은 분위기였다. 하지만 (돌아와 보니) 선수들 간의 대화가 부족했던 것 같다”는 모호한 말을 남겼다. 이청용이 언급한 ‘대화 부족’이 선수단 내 불화로 직접 해석할 수야 없겠지만 그만큼 선수들도 기자들과 비슷한 생각을 한다는 점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실제로 많은 축구 관계자들이 대표팀 내 파벌을 우려하고 있다. 해외파와 국내파로 나뉘어 있고, 해외파는 유럽과 중동, 일본 등으로 갈렸다는 얘기다. 여기에 국내파는 작년 올림픽 동메달에 기여했느냐 여부로 묘하게 나뉜다는 소문도 있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정말 최악의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과거 끈끈한 조직력과 팀워크를 최대 장점으로 삼았던 한국 축구다. 물론 내부인인 선수들은 이에 대해 “그런 사실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는 일이 없다’. 대표팀 내 물을 흐리는 일부 선수들도 있다고 한다.
홍 감독도 이를 의식한 듯하다. 취임 기자회견에서 “내년 월드컵대표팀의 슬로건은 ‘원 팀’ ‘원 스피릿’ ‘원 골’이 될 것이며 여기서 벗어나는 선수는 결코 대표팀에 들어오기 쉽지 않다”고 선언했다. 하나의 팀, 하나의 정신, 하나의 목표로 똘똘 뭉치겠다는 의지다. 그러면서 한마디를 덧붙였다. “국내 무대에서 뛰다 외국에서 몇 년 생활하다보면 외국인 선수 의식으로 바뀔 수 있다. 이런 변화하는 선수들의 의식도 지도자들이 준비해야 한다.”
국내파와 유럽파가 좀처럼 융화되지 않는다는 소문을 이미 인지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 셈이다. 실제로 홍 감독은 국내 지도자들 중에서도 냉철한 편에 속한다. 언제 어디서든 자신이 키운 선수들이라고 해서 마냥 감싸지 않았다. 자신이 생각하는, 또 자신이 염두에 둔 기준에서 벗어나는 선수들은 과감하게 내쳤다. 이 중에는 소위 특급으로 불리는 선수들도 몇몇 있었다.
이영진 전 대구FC 감독은 “학연, 지연 등에 얽매이지 않아야 하는데, 한국에서 그렇게 되기는 솔직히 쉽지 않다”면서도 “홍 감독은 그래도 다르리라 믿는다. 이미 그런 모습을 꾸준히 보여줬다”고 말한다. 홍 감독과 2002한일월드컵 4강 신화를 함께 만들면서 절친으로 통하는 황선홍 포항 스틸러스 감독도 “연령별 대표팀을 이끌면서 많은 선수들을 체크해왔다. 장단점이며, 성격까지 두루 꿰고 있는 홍 감독이 아주 잘해 주리라 믿는다”고 했다.
더불어 홍 감독은 최강희호 체제에서 조금은(?) 아쉬웠던 ‘무색무취’ 플레이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이는 최 전 감독이 못했다는 의미보다는 K리그 클래식(1부 리그) 전북 현대를 맡았던 2011시즌까지, 화끈했던 ‘닥공(닥치고 공격) 축구’에서 다소 퇴색했다는 아쉬움이다. 하프라인 아래에 타이트하게 내려서는 아시아 상대국들의 특성 탓에, 미드필드를 생략한 채 후방에서 최전방으로 길게 내차는 형식의 단조로운 축구에 여론이 들끓었다. 차라리 조광래 전 감독 시절에는 ‘만화축구’로 표현될 정도로 재미있고 박진감 넘치는 경기력을 느꼈다는 팬들이 많았다. 물론 1년 만에 모든 걸 바꾸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홍명보호가 추구하는 축구 스타일이 뭔지는 드러나야 한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