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박’ 면하기냐 ‘짜고친 고스톱’ 이냐
금호가 대우건설 인수 당시 부족한 자금을 해결하기 위해 체결한 풋백옵션이 오는 15일이면 만기가 된다. 금호는 12월 14일 기준으로 대우건설 주가가 3만 2513원에 미달할 경우 재무적 투자자들의 지분 39.6%에 대해 차액을 보전해야 하며 그 비용은 4조 2000억 원 정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11월 27일 현재 기준 대우건설 주가는 1만 2400원.
따라서 금호는 대우건설 인수 후보에 대해 엄밀한 심사를 하기보다 매각 자체를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적정한 인수 가격에 신경을 쓴 이유다. 자베즈와 TR아메리카는 대우건설 인수 가격으로 주당 2만 원 이상을 제시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것으로 알려진다. 금호는 일단 풋백옵션 해결을 위한 실마리를 잡았다. 게다가 대우건설 매각을 통해 그룹이 유동성 위기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의지를 시장에 보여주면 잃었던 신뢰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우선협상대상자들의 정체가 베일에 싸여 있어 의혹만 증폭되고 있다. 가장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자베즈는 애초에 국내 자본과 아랍에미리트 국부펀드 중 하나인 아부다비투자공사(ADIC)가 손을 잡고 컨소시엄을 구성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올 6월 자본금 5005만 원으로 설립된 사모펀드 회사로 밝혀졌다.
자베즈는 제일은행 부행장 출신인 최원규 대표와 외국 투자은행 출신의 한국계 미국인 박신철 씨가 공동대표로 등록되어 있다. 주요한 투자자로 이름이 거론되던 ADIC가 최근 명확한 투자 의사를 밝히지 않음에 따라 자베즈는 새로운 투자자를 물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까지도 대우건설 인수자금이 마련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는 것.
이러한 자베즈가 시총 4조 원이 넘는 대우건설을 인수할 능력이 있는지에 대해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자베즈의 최 대표는 국내와 해외 투자자를 각각 51 대 49로 구성해 대우건설을 인수할 것이라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대우건설이 외국에 넘어가지 않도록 국내 투자금을 해외보다 많게 구성할 것이며 장기투자계획도 세우고 있다고 한다. 최 대표는 지난 11월 27일 언론을 통해 “국내 시중은행 등을 상대로 펀드를 구성할 투자자를 모집 중”이라며 “자금 모집이 완료되면 12월 24일까지 대우건설 인수를 위한 계약을 체결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베즈가 금호에 대우건설 인수 후 주가가 더 오르면 미리 정한 가격으로 주식을 추가로 살 수 있도록 콜 옵션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져 부실 매각 논란도 일고 있다. 금호가 대우건설 매각에만 급급해 인수협상대상자의 요구를 다 들어주며 매도조건을 너무 불리하게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또 다른 우선협상대상자인 TR아메리카는 미국계 건설회사가 주도하는 컨소시엄으로 미국의 티시맨 건설과 아메리카 뱅크노트 등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주요 투자자인 티시맨 건설은 미국 뉴욕의 건설업체로 이 회사가 컨소시엄에 얼마만큼의 자금을 투자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TR아메리카도 자베즈와 마찬가지로 실체가 정확히 드러나지 않자 곳곳에서 “대우건설이 먹튀의 희생양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금호 관계자는 “두 곳 모두 자금조달 능력이 충분히 검증된 투자자로 판단됐다”고 밝혔다.
대우건설 인수 후보의 불분명한 실체 못지않게 산업은행의 행보도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산업은행은 인수자 선정을 앞두고 매각주간사 역할을 포기하는 ‘돌출행동’을 보였다. 인수 후보의 금융을 지원한다는 목적으로 매각주체에서 인수주체로 위치를 바꾼 것. 이것은 산업은행이 투기자본에 대우건설을 부실 매각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부분이다. 산업은행의 이러한 이례적인 행보는 대우건설을 서둘러 매각해 금호의 발목을 잡고 있는 풋백옵션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한 제스처로 해석되고 있다.
김영진M&A연구소의 김영진 소장은 “대우건설 매각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며 “과거 금호의 행보를 보면 M&A가 다 된 것처럼 언론플레이를 하지만 성사된 것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실체가 모호한 사모펀드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한 것은 금호가 무리수를 둔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대우건설 매각의 인수후보부터 의혹투성이다 보니 ‘금호의 또 다른 꼼수가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어 눈길을 끈다. 금호가 사모펀드를 내세워 경영권을 다시 장악하려고 한다는 논리다. 과거 금호는 금호타이어를 매각하는 대신 군인공제회가 투자하고 금호에 경영권을 위임하는 계약을 체결함으로써 금호타이어를 재인수한 전례가 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대우건설도 투기자본과 이면계약을 맺고 대우건설을 위탁경영하는 방식으로 고수익을 내 경영권을 다시 장악하려는 의도가 보인다는 것이다.
산업은행의 금융지원도 재인수를 노리는 금호를 위한 지원사격일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특히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시 주당 2만 4000원대로 가장 높은 금액을 써낸 러시아 컨소시엄을 탈락시켜 금호가 돈보다는 경영권 유지를 노린다는 분석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와 관련해 금호 관계자는 “대우건설 재인수 시나리오는 사실무근”이라며 선을 그었다.
김욱동 대우건설노동조합 위원장은 “만약 대우건설을 지금 선정된 우선인수협상대상자에게 매각한다면 총파업을 불사하겠다”며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김 위원장은 “금호가 대우건설 인수 실패의 과오를 인정하기 싫어하는 만큼 사모펀드와 이면계약을 맺어 경영권을 다시 가져오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며 “자신들이 경영하면서 대우건설 가격을 뻥튀기해 재매각하는 방법으로 손해 본 만큼을 메우려고 할 것”라고 말했다.
이윤구 기자 trus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