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갯짓만 해도 ‘출렁’ ‘타이밍’이 문제야
▲ 지난 9월 소액서민금융재단에서 열린 제31차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 왼쪽부터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이 대통령, 김성조 한나라당 정책위의장, 강만수 경제특보. 청와대사진기자단 | ||
요즘 경제부처들이 모여 있는 과천 관가에서는 며칠을 사이에 두고 벌어졌던 이 두 가지 일이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 두바이월드 지불유예선언은 아랍에미레이트(UAE) 중앙은행의 유동성 공급과 두바이월드의 채무구조조정으로 이미 금융시장에서 파괴력을 상실했다. 또 이 대통령이 한 국민과의 대화는 세종시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파장 없이 잠잠하다. 이처럼 별다른 일 없이 끝난 일들이 아직도 이야깃거리로 남아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수쿠크 발행해, 말어?
이슬람 사회는 이슬람이라는 종교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와 미묘한 차이를 가지고 있다. 그중에 가장 큰 것이 이자 금지다.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는 돈을 빌려주고 대가로 이자를 받는 것은 부당한 행위라며 금지하고 있다. 한 발 더 나아가 채권자나 채무자가 이익과 손실을 공유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율법 때문에 자본이 있어도 투자가 불가능하다. 이를 피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이슬람을 겨냥한 채권, 즉 수쿠크다.
수쿠크는 일반 채권과는 달리 채권 발행자가 부동산 등에 투자한 뒤 여기서 나온 수익을 배당금 형식으로 투자자들에게 주도록 구성되어 있다. 어찌 보면 명목상일 뿐이지만 이자를 리스료나 배당금 형태로 지급하는 것이다. 이후 원금은 부동산 등 실물자산을 매각하는 방식으로 회수해 투자자들에게 돌려준다.
이처럼 복잡한 구조를 띠고 있어서 국내에서는 그동안 수쿠크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10년 전만해도 3억 달러 수준이던 수쿠크 시장이 오일 머니가 넘쳐나면서 1000억 달러까지 커졌다. 여기에 지난해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선진국 자본 유출로 국내 금융시장이 출렁이자 한국 정부도 수쿠크 시장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문제는 세제였다. 수쿠크의 흐름이 복잡하다 보니 이자소득세 외에도 양도세 인지세 취득세 등록세 등 투자에 따른 세금도 여러 개가 뒤섞여 있어 발행의 걸림돌이 됐다. 때문에 정부는 오일 머니를 끌어들이기 위해 수쿠크 발행을 위한 세제개편안을 마련하고, 현재 관련법 개정을 국회에 요청한 상태다.
금융감독원도 이슬람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한국 투자설명회를 개최했고, 이슬람 금융연차총회에도 참석해 투자유치에 힘써왔다. 한국거래소도 이슬람 금융컨퍼런스를 개최한 데 이어 동남아 국가들을 대상으로 이슬람 상품 거래시스템 구축을 대행해왔다.
이처럼 수쿠크 발행을 위한 준비가 거의 끝난 상황에서 두바이월드 사태가 터진 것이다. 두바이월드는 전체 수쿠크시장의 대형물량 10개 중 4개를 차지할 정도로 최대 거래업체였다.
중동이 오일 머니로 대표되지만 최근 급격한 발전을 이루면서 두바이 등 7개 토후국을 거느린 UAE뿐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등의 외화차입금액이 지나치게 높아진 것이 결국 문제를 일으킨 셈이다. 중동지역 국가들을 중심으로 국가신용위험도를 나타내는 신용부도스왑(CDS)프리미엄이 급격히 상승한 것도 이 때문이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두바이 쇼크로 수쿠크 명성이 타격을 입고 있다고 지적했고, 실제 수쿠크 발행을 계획했던 기업들도 발행의사를 철회하거나 연기하고 있다.
이렇게 되자 정부는 수쿠크 발행을 위한 세제개편을 국회에 밀어붙이기 어렵게 됐다. 일부 언론에서 두바이 사태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예정대로 수쿠크 발행을 추진한다고 보도하자 ‘수쿠크 형태 외평채 발행과 관련하여 아무것도 결정된 바 없다’는 해명자료를 발 빠르게 낸 것도 정부의 당혹감을 엿볼 수 있게 한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두바이월드 사태 이후 중동국가들의 자금안정성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가 높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수쿠크를 발행한다고 해도 큰 성공을 거둔다는 보장이 없다”면서 “한국으로 들어오는 투자자금을 다변화하겠다는 전략이 당분간 차질을 빚게 되자 그동안 수쿠크 발행을 강력히 추진해온 정부가 당황하는 것 같다. 아마 수쿠크 발행을 장기적인 측면에서 검토한다는 식의 발언이 슬슬 나올 것”이라고 평가했다.
#기준 금리 올려, 말어?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과의 대화에서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을 “5% 내외”라고 밝혔다. 이보다 앞서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내년 경제성장률을 5.5%로 잡았다. 정부가 돈을 풀고, 한국은행이 금리를 낮게 잡으면서 시장에 돈이 돌자 경제가 빠르게 회복되고 있는 것을 감안한 것이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나 세계적인 투자은행(IB)들도 4∼5%대의 성장률을 전망하고 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5%면 상당히 높은 성장률인데 사실상 제로금리나 다름없는 기준금리 2%를 유지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KDI가 5%대를 불렀을 때도 정부 일각에서는 성장률을 아무리 높아도 4%대로 잡으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이는 기준금리를 붙잡아두기 위한 카드였다. 그런데 대통령이 5% 내외라고 적시하면서 선택의 여지가 없어졌다.
한 정부 당국자는 “대통령이 5% 내외라고 한 이상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느냐”라고 반문하면서 “아직 위기가 끝나지 않았다며 기준금리를 동결하도록 한국은행을 압박할 수 있는 카드가 없어진 셈이다. 5% 성장을 한다면서 기준금리를 그대로 두라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러한 하소연에는 경제학적인 이유가 있다. 기준금리를 낮게 유지하면 은행의 이자도 낮게 유지된다. 그럴 경우 시중에 많이 풀려 있는 돈이 은행으로 회수되지 않으면서 인플레이션이 일어날 가능성이 커진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나타나면 인플레이션 회피가 가능한 실물시장이 출렁이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특유의 부동산 열풍으로 이미 올해 초반 경기회복 조짐이 보이자 강남을 중심으로 아파트 가격이 들썩여 정부의 골머리를 앓게 한 것이 좋은 예이다.
이 때문에 KDI는 경제성장률 5.5%를 제시하면서 출구전략을 내년 상반기 중에 실시해야 한다는 입장을 제시했다. 하지만 모든 국민들의 눈이 정부의 출구전략이 언제쯤 시작될 것인가에 쏠려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칼을 뽑기는 쉽지 않다.
한 정부 관계자는 “출구전략이라는 단어 때문에 기준금리를 올리자는 의견을 내놓지 못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군사용어인 출구전략이 이번 금융위기를 통해 경제용어가 됐는데 단어가 주는 파괴력이 상당하다”면서 “솔직히 지금도 기준금리가 지나치게 낮은 상황이다. 내년 성장률을 감안하면 0.5%포인트 올려도 될 것 같은데 이러면 ‘정부가 출구전략에 나섰다’ ‘정부 한국 경제 위기 종료 선언’ 등등 너무 앞서가는 말이 나올까봐 걱정스럽다. 차분하게 금리인상하고 조금씩 경제 안정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하면 되는데 출구전략이라는 용어가 주는 부담감 때문에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고 토로했다.
이준석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