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공 거물 MB정부 실세 그림자 어른
“<뉴스타파>가 영국령 버진아일랜드(BVI)에 유령회사를 세운 원종호가 안랩 2대주주 원종호와 동일인물이라는 의혹에 답해 주시죠?”
최근 한 트위터 사용자가 <뉴스타파> 계정에 요청한 내용이다. 이 같은 요청은 지난 6월 15일 <뉴스타파> 측이 공개한 한국인 명단 180여 명 가운데 ‘Won Jong Ho(원종호)’라는 이름이 포함되면서 시작됐다. 원 씨는 지난 2003년 9월 버진아일랜드에 ‘SHINNING COAST INVESTMENT LIMITED(시닝 코스트 인베스트먼트 리미티드·시닝 코스트)’라는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해 운영했다.
안랩 2대 주주 원 씨는 지난 2010년 지방선거 전후 ‘안철수 열풍’으로 인해 안랩 주가가 폭등하자 주식을 팔아 500억 원에 가까운 시세차액을 얻어 화제를 모았다. 지금도 안랩 지분 2.69%를 소유한 주요주주다.
<일요신문>이 <뉴스파타>와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공개한 자료를 토대로 취재한 결과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원종호 씨는 1965년생으로 확인됐다. ‘평창동 거주 1972년생’으로 알려진 안랩 주주 원종호 씨와는 동명이인인 셈이다. 페이퍼컴퍼니를 세운 원 씨는 S 산업과 H 금속 임원으로 활동한 뒤 S 금속산업을 세웠다. 법인등기부상 S 금속산업의 현 대표는 ‘원종○’이었으나 인터넷상에 원종호 씨가 과거 대표 자격으로 구인 등의 활동을 한 흔적이 있는 것으로 미뤄 경영에 참여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데 <일요신문> 취재 중 S 금속산업 측이 돌연 폐업 신고를 내 의구심을 키웠다. 회사 대표번호를 통해 연락이 닿은 S 금속산업 측 관계자는 “며칠 전 폐업신고를 냈다”고 밝힌 이후 다음날 통화에서는 “3월 말쯤 폐업했다”고 정정했다. S 금속산업과 원종호 씨의 관계, 그리고 원 씨가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운 사실에 관해서는 별다른 대답을 듣지 못했다. 마지막 통화에서는 “지금 거신 전화는 없는 번호입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S 금속산업은 연매출이 6억~20억 원 사이를 오가는 비교적 작은 규모의 사업체로 나온다. 페이퍼컴퍼니를 세워 운영할 만한 규모는 아닌데 진짜 활용 용도에 대한 의구심이 있다”며 “이름이 같은 대리인을 내세워 주식 투자하는 경우가 흔하지는 않다. 본인 신분이 드러나면 곤란한 상황에서 주가가 반드시 올라갈 것이라는 것을 사전에 아는 상황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원 씨의 소재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의외의 인물이 그와 연관돼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시닝 코스트’ 설립 당시 중개인은 ‘Mr. Won Jong Ho(미스터 원종호)’로 돼 있었고, 이 ‘미스터 원’이 기재한 주소는 서울 마포구 소재 P 빌딩 1××5호였다. 그런데 이 사무실의 소유주가 전두환 정권 당시 ‘실세’로 통하던 K 전 의원이었던 것이다.
물론 ‘미스터 원’이 거주했거나 사무실로 쓰던 곳이 우연하게 K 전 의원 소유 사무실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 소식을 들은 한 정치권 인사는 “K 전 의원은 5공화국 당시 여당 운영을 책임졌던 사람이고 이명박 정권 당시에도 실력자였다. K 전 의원 사위도 이명박 정부에서 잘나갔던 핵심 실세였다”며 “뭔가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밝히며 의혹의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이에 대해 K 전 의원은 “그 사무실은 처음부터 부동산중개업자에게 임대 관리를 맡겨왔기에 누가 들어오고 나가는지 전혀 모른다”며 관련성을 부인했다.
원종호 씨 외에 또 다른 등기이사들 역시 베일에 싸여 있다. 이 회사에는 두 명의 원종호 외에도 일본인으로 보이는 이름과 한국인 임 아무개 씨가 주주로 등재돼 있다. 일본인은 소재가 불분명했으나 한국인 임 씨는 분당에서 철강무역회사 대표로, 별도 기업체를 운영하고 있었다. 이 회사 측 관계자는 대표의 페이퍼컴퍼니 설립과 운영에 관해 “설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 한다”며 입을 닫았다.
오랜 기간 안랩 주주 원종호 씨가 정치권과 연결돼 있다고 주장해 온 황장수 미래경영연구소장은 지난 4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지난해 10월경 자신이 안랩 2대 주주라며 원종호라는 사람이 만나고 싶다며 연락을 해 온 일이 있었다. 결국 만남이 불발됐지만 당시 휴대폰 번호와 ID(아이디) 등을 추적한 결과 논현동에서 벤처기업을 운영하는 또 다른 원종호라는 사람이었다. 논현동 원종호와 평창동 원종호는 생년월일이 달라 추적을 포기했는데 그때와 매우 비슷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