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목장’서 이 말도 타고 저 말도 타고
▲ 지난 8일 제4회 도농 교류 농촌사랑 대상 시상식에서 최창원 SK케미칼 대표이사가 산업훈장을 받았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최창원 부회장은 고 최종건 SK 창업주의 차남으로 SK가 맏형 격인 최신원 SKC 회장의 친동생이다. 지난 1998년 최종건 창업주 동생인 최종현 SK그룹 2대 회장이 타계하고 그 아들인 최태원 회장이 총수직을 승계한 이후로 최신원-최창원 형제가 SK그룹으로부터 계열분리를 할 것이란 관측이 오랫동안 재계 관계자들 사이에 자리잡아왔다.
지난 2007년 SK그룹이 지주회사제 전환을 선언할 당시 최창원 부회장의 SK케미칼은 지주회사제에 포함되지 않았다. 최창원 부회장은 SK케미칼 지분 10.18%를 보유하고 있으며 SK케미칼 자사주는 13.82%에 이른다. 최태원 회장은 SK케미칼에서 의결권이 없는 우선주 3.11%만을 갖고 있다. 최창원 부회장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계열분리 선언을 할 수 있는 셈이다. 최신원 회장의 SKC 지분율이 3.32%에 불과해 계열분리 여건에 한참 못 미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지난해 최신원 회장이 최태원 회장에게 SK네트웍스와 워커힐 합병 법인의 경영권을 요구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계열분리를 향한 최신원 회장의 열망이 화제가 된 바 있다. 그런데 정작 독립 여건을 갖추고 있는 최창원 부회장은 지주회사제에서 제외된 지 3년이 다 돼가는데도 계열분리의 ‘계’자조차 꺼내들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8일 최 부회장 속마음을 짐작해볼 수 있을 법한 행사가 열렸다. 농협중앙회 대강당에서 열린 제4회 농촌사랑지도자대회에서 도·농 교류에 이바지한 인사들을 대상으로 농촌사랑대상 시상식이 있었는데 최창원 부회장이 SK케미칼 대표이사 자격으로 산업훈장(기업부문 대상)을 받은 것이다. 이날 주어진 13개의 상 중 유일한 훈장이었다.
최 부회장이 훈장을 받게 된 것은 SK그룹 계열사 SK D&D의 농촌활동 덕분이다. 이 회사는 사내에 웰빙사업본부를 만들어 충북 청원군 오창농협과 교류를 통해 ‘친환경 농산물 공급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이는 유통 거품을 빼고 생산자와 소비자 간 직거래를 통해 유기농 농산물을 싼 가격에 공급하는 시스템. 대기업의 물류 경험과 기술 및 지식을 농촌에 전수해 농업계가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한 1사1촌 운동의 대표적인 성공 모델로 인정받아 수상하게 된 것이다. 이를 통해 SK 계열사의 많은 직원들이 농산물 구매를 하면서 오창농협의 수익 증진에도 큰 도움을 줬다고 한다.
이날 행사에서 최 부회장은 SK케미칼 대표이사 부회장 자격으로 훈장을 받았다. 그런데 수상 기업 활동 동영상이 SK D&D의 타이틀로 나가면서 참석자들의 궁금증이 커지는 듯했다. 행사장에서 이를 묻는 기자들에게 김창근 SK케미칼 부회장은 “원래 이 농촌 사업은 최창원 부회장이 계획한 것인데 SK케미칼에서 진행하다 회사랑 성격이 안 맞아서 SK D&D에서 하게 된 것”이라 밝혔다.
그런데 사실 SK D&D는 현재 지분구조상 SK케미칼 소속으로 보기 어려운 회사다. SK D&D는 지난 2004년 4월 아페론이란 이름으로 실내건축공사 및 부동산개발 등을 주된 목적으로 설립됐다. 당시 이 회사의 최대주주는 지분 70%를 보유한 최창원 부회장이었다. 개인회사나 다름없었던 이 회사는 2007년 6월 SK D&D로 사명을 바꾸면서 SK건설의 자회사가 된다.
당시 운영자금 조달 목적의 유상증자를 단행하면서 25억 원어치(83만 4000주) 신주를 발행했는데 SK건설이 이중 60만 주를 신규 취득하면서 SK D&D 지분 44.98%를 지닌 최대주주로 올라서게 됐다. 이 유상증자에서 최창원 부회장도 16만 7000주를 신규 배정받았지만 발행주식 총수가 크게 불어난 관계로 지분율은 38.76%로 하락, 2대주주(개인 최대주주)에 머물게 됐다.
이 회사는 현재 지분법상 최태원 회장 계열인 SK그룹 지주사 SK㈜의 손자회사가 돼 있다. 지난해 6월 SK㈜는 SK케미칼이 보유해온 SK건설 지분 811만 8000주를 총 4140억 원(주당 5만 1000원)에 사들였다. 2009년 12월 31일 현재 SK㈜의 SK건설 지분율은 33.4%며 SK케미칼은 SK건설 지분 15.1%를 갖고 있다. 최창원 부회장의 SK건설 지분율은 8.0%에 불과하다. 최창원 부회장이 SK건설과 SK D&D의 개인 최대주주이긴 하지만 이 회사들은 엄연히 SK㈜의 자회사·손자회사다. 즉, 최태원 회장 계열인 셈이다.
최창원 부회장의 대표적인 공식 직함은 ‘SK케미칼 대표이사 부회장’이다. SK건설 부회장도 겸하고 있지만 SK D&D 임원 명부에 최 부회장은 포함돼 있지 않다. 그러나 SK D&D는 아직까지 설립 초기와 마찬가지로 최창원 부회장의 개인회사처럼 굴러가고 있다. SK D&D의 고위 관계자들도 대부분 최창원 부회장의 측근들로 알려진다. SK D&D의 농촌활동 공로가 최창원 부회장에 대한 훈장 수여로 이어진 연유도 이 같은 인적 구성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만약 최창원 부회장이 지금에 와서 계열분리를 선언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미 지분법상 SK㈜ 계열이 된 SK건설이나 SK D&D 회사들에 대해 최창원 부회장이 지금처럼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최창원 부회장이 계열분리를 통해 딴 살림을 차릴 경우 최태원 회장이 지분구조를 들어 SK건설이나 SK D&D에 대한 지배력 행사에 나설 수도 있다.
지난해 6월 SK그룹이 SK케미칼로부터 SK건설 지분을 사들였을 때 매각대금 4140억 원을 손에 쥔 SK케미칼이 최신원 회장을 대신해 SKC 지분을 사들여 최신원 회장의 분가를 도울 것이란 증권가의 관측도 있었다. 그러나 당시 SK케미칼 관계자는 “SK건설 지분 매각대금은 SK케미칼을 위해 쓰일 것”이라며 SKC 지분 매입설을 일축했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