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붙은 경제 윗불 땔까 밑불 땔까
▲ 재정부는 1월 중 공공근로사업 시행이 가능하도록 내부적인 집행조치를 마무리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은 금융위기 이후 마이너스(-)가 됐다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빠른 회복세로 돌아섰다. 올해는 4∼5%의 성장을 이룰 것이라는 전망이 OECD뿐 아니라 세계적 투자은행(IB)들에서도 나오고 있다. 우리 정부도 5% 내외의 성장을 이룰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문제는 1년 중 최악의 비수기에 들어가는 1월을 제대로 넘기지 못할 경우 회복세의 탄력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데 있다. 2008년 10월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금융위기가 발생한 초기, 정부의 대응은 그리 늦지 않았지만 추경예산 통과 등에 시간이 걸리면서 실질적인 재정정책 효과는 6월부터야 나타났다. 이 때문에 고용시장은 지난해 1월 들어 한파를 맞기 시작했다. 금융위기 충격에 취업자 수는 2008년 12월 전년동월대비 -0.1%를 기록하며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04년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게다가 희망근로와 청년인턴제 같은 정부의 공공근로 사업이 봄이 된 후에야 시작된 탓에 2009년 1월 취업자 수는 전년동월대비 -0.4%로 하락폭이 더 커졌다. 이후 2월에는 취업자 수가 전년동월대비 -0.6%, 3월 -0.8%, 4월 -0.8%, 5월 -0.9% 등 하락폭이 달이 갈수록 커졌다. 공공근로 사업이 제자리를 잡기 시작한 6월 이후에야 감소세가 멈추면서 회복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은 고스란히 경제성장률에 반영됐다. 지난해 1분기 경제성장률을 전년동기대비 -4.2%로 급격하게 떨어졌고, 2분기에는 -2.2%를 기록했다. 3분기가 돼서야 0.9%를 보이며 회복세를 나타낸 것이다.
지난해 1월 인력감소기라며 방심하다 취업자 감소와 이에 따른 경제성장률 급락에 속앓이를 했던 정부로서는 이번 1월을 똑같이 맞을 수는 없는 셈이다. 이 때문에 당초 4월부터 다시 시작할 예정이었던 희망근로를 1월부터 시작이 가능하도록 앞당겼다. 또 국회 예산 통과 지연으로 2월이 돼서야 시작될 것으로 예상됐던 청년인턴 사업도 공고기간을 최대한 앞당겨 1월부터 개시되도록 독려하고 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1월 고용이 힘들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우리 예산실이 일을 너무 잘한다. 예산이 연말에 통과돼도 다음해 연초부터 예산이 집행될 수 있도록 준비를 완벽하게 해 놓으니까 국회에서 늦게 통과시켜주는 것 같다”는 농담으로 운을 뗀 뒤 “국무회의에서 1월에 고용이 이루질 수 있도록 조치를 다했다”고 답했다.
재정부 고위 관계자도 “1월에 공공근로사업 시행이 가능하도록 내부적인 집행조치를 마무리했다. 희망근로의 경우 지자체별로 1월부터 할 수 있는 곳은 집행할 수 있다. 청년인턴 사업도 1월에 가능하다. 다만 청년인턴 사업은 공고를 해야 하기 때문에 조금 늦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취업자 문제뿐 아니라 1월이 물가안정의 변수로 떠오르는 것에도 재정부 공무원들은 신경이 곤두서 있다. 지난해 생활필수품의 물가상승률은 전년대비 2.1%로 역대 최저수준이었다. 2008년 생활필수품의 물가지수는 전년대비 5.4%나 올랐지만 지난해에는 국제유가 하락 등의 영향으로 상승폭이 크게 줄었다. 반면 생선 채소 과실 등 신선식품은 7.5%나 올라 2004년 8.0% 이후 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재정부가 고심하는 것은 최근 국제유가가 급격히 상승하면서 물가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점이다. 1월 들어 국제유가는 급격히 상승하면서 배럴당 90달러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지난 1일 가정용과 차량용 LPG 가격이 6∼9% 오른 상황에서 이러한 국제 유가 상승세는 물가관리에 비상을 걸기에 충분하다. 올 1월엔 역대 최대 폭설과 최악의 한파까지 몰아닥치면서 가스와 전기 사용량이 늘어 유가 인상분은 고스란히 서민 가계에 부담이 되고 있다.
폭설과 한파는 가스와 전기 가격뿐 아니라 식료품 가격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갑작스런 한파에 피해를 입은 배추와 무 상추 등 채소류의 가격이 급격하게 뛰고 있는 것이다. 1월 들어 며칠 새 30% 가까이 가격이 뛴 채소류도 속출하고 있다. 물가 상승률이 심상치 않을 경우 한국은행이 경제회복을 위해 늦추고 있는 기준금리 인상이 예상보다 빨리 이뤄질 수 있다. 이 경우 경제 전체적으로 출구전략 추진에 따른 충격이 불가피하다.
지난 8일 법으로 보장된 ‘열석발언권’에 따라 허경욱 재정부 차관이 10년 7개월 만에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 참석한 것도 기준금리 조기 인상 우려 때문인 것으로 관측된다. 허 차관은 이날 회의에서 정부의 경기 인식과 정책 방향을 설명했고 기준금리는 연 2.0%로 동결됐다.
재정부 관계자는 “올 한 해 물가상승률을 3% 내외로 잡는다는 목표에는 변화가 없다. 하지만 지난해 1월 경기침체에 물가가 하락했던 점과 올해 1월 이상한파가 몰아닥친 것 때문에 1월 물가상승률이 상당히 오를 수 있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재정부와 경제계 일각에서는 이처럼 1월이 경제에서도 중요한 달이지만 정치에서도 중요한 달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정부가 1월부터 희망근로를 실시할 수 있도록 했지만 시행 여부는 각 지방자치단체에 달려 있다. 문제는 상당수 지자체들이 3월 이후에나 희망근로를 시작한다는 계획을 짜고 있다는 점이다. 1월에 폭설과 강추위가 몰아치는 것도 물가뿐 아니라 4월 지방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금융업계의 한 관계자는 “1월에 일자리 사업이 다른 지역에 비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눈 피해 해결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지방선거에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 “정치권도 겨울철 일자리와 물가 폭설 등에 대해 고심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준석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