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월1일 국민참여통합신당 현판식.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어느 날 자고 일어났더니 야당이 되어 있더라”(김영환 의원)는 투의 푸념이 민주당 여기저기에서 터져나오는가 하면, ‘정신적 여당’을 자임하고 있는 통합신당 쪽도 ‘어제의 동지’인 민주당 의원들이 주요 현안에서 자신들과 맞서는 위치에 놓이게 된 현실에 안타까움을 토로하고 있는 형편. 양측은 특히 최근 권력구조 개편의 문제와 이라크 파병 등 정국 현안을 놓고 당내외에서 복합다단한 갈등을 표출하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달 20일 통합신당의 국회 원내교섭단체 구성 이후 드러난 양측간 ‘결별 후유증’의 장면들을 들춰 봤다.
윤성식 감사원장 내정자 임명동의안 표결이 있기 직전인 9월26일 오전 8시30분, 민주당 의원총회장인 국회 예결위 회의장에는 의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표결 전망 등을 놓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회의장 맨 뒷
좌석에 앉은 수도권 중도파 J의원과 H의원의 대화에는 분당 이후 ‘공중에 붕 떠 있는’ 이들의 현실적인 고민이 그대로 녹아 있었다.
J의원은 “어제 본회의장에 들어오는데 국회 사무처 여직원이 나를 보더니 ‘신당쪽이시죠’라고 하더라. 통합신당이 원내교섭단체로 등록하면서 회의장 의석 배치가 바뀐 탓에 의원들을 안내하고 있는 모양이었는데 나를 신당 사람으로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순간 내 스스로 정체성이 뭔가 혼란이 오는 느낌이었다”고 달갑지 않은 경험담을 소개했다.
H의원도 비슷한 처지. 그는 “며칠 전부터 신당에 간 J의원이 계속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이냐’고 전화를 걸어와 곤혹스럽다. 어제는 ‘당신은 곧 우리와 함께 당을 할 텐데 왜 당직을 맡고 그러느냐’고 따지더라”고 말했다.
동의안 부결 후 본회의장을 나란히 나서는 두 의원에게 ‘오늘 표결 결과로 통합신당과는 완전히 선을 긋게 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H의원은 어두운 얼굴로 “그렇게야 되겠느냐. 그런데 민주당에서 반대표가 많이 나와서 입장이 참 난처하게 됐다”고 말했고, J의원도 “정통모임 사람들이 작정하고 반대한 것 같은데…”라며 향후 파장을 우려하는 기색을 보였다.
분당이 되긴 했지만 정책과 노선을 놓고 보면 오히려 상대 당 의원들과 ‘코드’가 맞아 고민하는 경우도 눈에 띈다. 특히 민주당의 경우 대선 당시 ‘친노 그룹’이었던 중도파 통합모임 출신 의원들과 ‘반노 그룹’이었던 후단협·정통모임 출신 구주류 의원들 간의 반목이 구체화되고 있는 상황. ‘책임 총리제-분권형 대통령제’ 도입 주장을 매개로 한 권력구조 개편론과 이라크전 파병을 둘러싼 이견이 대표적이다.
중도파들은 구주류 핵심인 박상천 대표, 정균환 원내총무 등이 ‘개헌 조기공론화’로 비칠 발언을 연이어 내놓고 있는 데 대해 못마땅해 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김영환 정책위 의장은 “우리가 갑자기 여당에서 야당으로 떨어졌지만 한나라당과는 다르다. 이제 우리의 길은 개혁야당이며 개혁, 남북화해 등 우리가 지향하는 정책에는 정부와 보조를 맞출 것이지만 반개혁적, 냉전적 정책에는 단호히 반대할 것”이란 말로 구주류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한나라당과의 공조설’에 분명히 선을 그었다.
김 의장은 아울러 통합신당측에도 섭섭한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 눈길을 끌었다. 그는 “감사원장 임명동의안에 일부 민주당 의원들이 반대했다고 해서 (통합신당측이) 우리를 한나라당과 한 묶음으로 규정지으려 해서 되겠느냐. 어쩔 수 없이 갈라섰지만 서로 열심히 해서 우리가 노 대통령을 지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정도 아니냐”고 말했다.
졸지에 야당으로 전락한 데 대해 허탈해 하는 기류로 감지된다. 노 대통령의 후보·당선자 시절 대변인을 맡았던 이낙연 의원은 ‘주군’의 민주당 탈당 후 대선 때와 백팔십도 달라진 현 상황을 개탄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열정적 지지와 성원으로 노 대통령을 탄생시킨 민주당 지지자들은 일부 국회의원들의 명분 없는 탈당에 동조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갑자기 야당 신세가 됐다”고 탄식했다. 그는 이어 “반면 대선 때 노무현 후보의 낙선을 위해 뛰었던 일부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은 신당에 동참했다는 이유만으로 갑자기 여당 행세를 하고 있다”며 아이러니한 현실을 비아냥대기도.
양측 의원들 간의 관계가 냉랭하다 못해 적대시된 경우도 눈에 자주 띈다. 국회 교육위 소속 두 여성 의원인 K, L의원 간에 벌어진 국정감사 오찬장 ‘설전’은 정치권에서 화제가 됐다. 둘 다 민주당 소속이지만 전국구인 L의원이 통합신당에 참여하고 있는 반면 호남 출신인 K의원은 ‘민주당 사수파’. K의원은 오찬 중 L의원을 겨냥해 “일부 전국구 의원들이 신당에 가려면 확실하게 당적을 정리하고 갈 것이지 의원직 유지하려고 구차하게 행동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비아냥댔고 이에 L의원이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느냐”고 발끈하고 나섰다. 두 사람은 다시 “내가 무슨 틀린 얘기 했느냐”(K의원), “국감 때문에 피치 못하게 당적을 계속 가지게 됐다. 곧 정리할 테니 걱정마라”(L의원)며 핏대를 올렸고 결국 한나라당 의원들이 만류해 사태가 진정됐다는 후문이다.
이준원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