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계 ‘돌싱’…품어줄 둥지 없소?
▲ 지난 12일 금호그룹 사옥에서 열린 동국제강의 대우건설 인수 문제점을 밝히는 기자회견. 왼쪽부터 김성한 쌍용건설 노조위원장, 김욱동 대우건설 노조위원장, 김동욱 건설사무노조 위원장.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
대형 매물 인수전에서 포스코가 지속적으로 주목받는 이유는 현금 동원 능력 때문이다. 국내 대기업 중 5조 원 이상의 현금성 자산을 지닌 곳은 삼성과 포스코 단둘뿐이다. 삼성의 경우 이미 세종시 개발계획에 앞장선 상태로 2011년부터 5년간 세종시 투자에 2조 5000억 원을 쏟아 부을 예정이다.
이렇다 보니 제철보국(철강으로 나라에 이바지 한다)의 취지로 세워진 포스코가 국내 시공능력평가 1위 업체인 대우건설을 인수해 국가경제에 보은하며 국부유출을 막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도 무리는 아닌 셈. 산업은행이 포스코를 전략적 투자자로 유치할 경우 수년 안에 대우건설 경영권을 주요 주주인 포스코에 팔아넘길 가능성마저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포스코는 일단 대우인터내셔널 인수전에만 전력을 쏟는다는 입장이다. 포스코 측은 “사내에서 대우인터내셔널 외에 다른 매물 인수 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밝힌다. 포스코 측은 옛 대우 계열 매물 중 특히 대우건설 인수전에 자주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에 부담스러워 하는 눈치다.
대우인터내셔널의 경우 이 회사가 지닌 글로벌 자원개발 인프라와 종합상사로서의 역량이 철강재 생산을 위한 자원 확보와 해외 판매망 관리·확대를 필요로 하는 포스코에 부합한다. 대우건설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동시에 ‘포스코가 옛 대우 계열 중 하나는 인수해줘야 한다’는 논리 충족에도 맞춤형인 매물로 평가받는다.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포스코 CEO 포럼’에서 정준양 포스코 회장은 “(M&A 매물 중) 대우인터내셔널을 우선순위에 놓고 검토 중”이라며 “대우조선해양은 매물로 나오면 검토할 예정”이라 밝혔다. 포스코는 지난 2008년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려다 GS와의 인수 컨소시엄 결렬로 쓴맛을 봤다.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위해 지난 수년간 축적한 자료와 노하우가 있는 데다 이 회사를 통해 철강재 공급처를 확보하고 해양 플랜트 사업에 진출할 수 있다는 점이 시너지로 꼽힌다.
이날 정 회장은 “대우건설은 시너지효과가 크지 않아서 (M&A) 우선순위에 놓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대우건설이 시공능력 평가 1위를 달리는 업체지만 포스코에겐 이미 상장을 앞둔 포스코건설이 있다. 옛 대우 계열 매물들 중 포스코가 매겨놓은 호감도 순위에서 대우건설이 제일 낮은 위치에 있는 셈이다.
이에 앞선 지난 7일 정 회장은 서울 대치동 포스코센터에서 열린 ‘2010년 철강업계 신년 인사회’에서도 대우건설과 관련해 “포스코건설과 겹치는 부분이 많다”며 인수의사가 없음을 명확히 했다.
그런데 이 자리엔 최근 들어 대우건설 인수 후보로 급부상 중인 동국제강의 장세주 회장도 함께하고 있었다. 이날 장 회장은 정 회장과는 달리 대우건설을 우수한 인력과 해외수주 실적, 국내 건설업계에서의 위상을 갖춘 역량이 뛰어난 회사로 평가하며 호의적 반응을 보였다.
동국제강의 대우건설 인수 움직임이 재계의 눈길을 끄는 것은 대우건설 전 주인인 금호아시아나와의 관계 때문이기도 하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명예회장의 형인 고 박정구 회장의 차녀 박은경 씨는 고 장경호 동국제강 창업주 6남인 장상돈 한국철강 회장의 차남 장세홍 한국철강 대표와 부부다. 장세주 회장은 고 장경호 창업주의 3남 고 장상태 2대 회장의 아들. 동국제강의 대우건설 인수전 참여 전망이 퍼지면서 재계 일각에선 금호아시아나가 추후 사돈기업을 통해 대우건설 경영에 막후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거론되기도 한다.
대우건설 인수전에서 동국제강이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자금 동원 능력과 최근 실적에 있다. 대우건설은 지난 2008년 6조 5777억 원의 매출을 올렸으며 지난해 3분기까지 5조 909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반면 동국제강의 2008년 매출액은 5조 6499억 원이며 지난해 3분기까지 매출액은 3조 4225억 원이다.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에선 더 큰 차이를 보인다. 대우건설은 2008년 영업이익 3440억 원에 이어 지난해 3분기 현재 1580억 원 흑자를 기록 중이다. 당기순이익 면에서도 2008년 2470억 원, 지난해 3분기 현재 1888억 원을 기록했다. 동국제강은 2008년 8562억 원의 영업이익, 당기순이익 1179억 원을 기록했으나 지난해 들어 적자로 돌아선 상태다. 지난해 3분기까지 영업이익에선 54억 원, 당기순이익에선 1136억 원의 손실을 기록하고 있다.
금호아시아나가 대우건설을 인수한 지 3년여 만에 다시 매물로 내놓는 것으로도 모자라 주요 계열사 워크아웃까지 신청하게 된 주된 배경으로 무리한 M&A 후유증이 꼽혀왔다. 올해 적자를 기록 중인데다 금호아시아나와 사돈관계까지 맺고 있는 동국제강을 향한 재계의 시선에서 우려를 떨쳐내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게다가 동국제강은 지난 2008년 쌍용건설 인수전에도 참여한 바 있다. 그런데 쌍용건설 실사 후 인수의사를 철회하고 이 회사 최대주주인 자산관리공사(캠코)를 상대로 입찰보증금 231억 원 반환 청구소송을 낸 상태다. 때문에 대우건설노동조합(위원장 김욱동)은 지난 6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동국제강은 쌍용건설 사례에서 보듯 대우건설을 인수할 능력이 없다”며 각을 세웠다.
이 같은 반응에 대해 장 회장은 7일 신년 인사회에서 “동국제강의 55년 역사나 역량을 제외하고 덩치나 규모만으로 이야기하는 건 부당하다”며 반박한 바 있다. 관심이 없다는 데도 계속해서 하마평에 오르내리는 포스코, 관심을 보이는데도 자격 논란에 휩싸일 조짐을 보이는 동국제강 사이에서 최대 매물 대우건설의 미래가 어디로 향할지에 재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