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가지 쳐내려고 일년간 칼 갈았나
1977년 신동아그룹 계열사로 설립된 신동아건설은 2001년까지만 해도 시공능력 평가액 3000억여 원으로 당시 업계 40위권의 탄탄한 건설사였다. 하지만 1999년 당시 최순영 회장이 구속되고 그룹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신동아건설은 2001년 일반인에게는 다소 생소한 일해토건에 매각됐다.
일해토건은 채무 870억 원을 그대로 승계하는 조건이긴 했지만 불과 1억 7700만여 원에 신동아건설을 매입하면서 각종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DJ 정권에서 주로 관급공사들을 수주하며 급성장한 토목·건설업체였던 탓에 신동아건설 인수 과정에 당시 정권 실세들이 개입돼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샀다.
2002년 국정감사 때는 일해토건의 신동아건설 헐값 매입에 DJ 정권 실세가 개입돼 있다는 구체적 의혹들이 제기됐다. 이후 최순영 전 회장이 언론 등을 통해 공공연하게 DJ 정권 인사의 개입으로 기업을 뺏긴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의심의 눈초리는 더욱 강해졌다.
지난 10월 검찰은 마침내 신동아건설 비자금 의혹 등에 대한 수사 착수를 알렸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가 2009년 초부터 신동아건설 관계 자료를 분석하고 계좌추적을 벌이는 등 내사를 통해 비자금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확실한 단서를 확보했다고 밝히면서 본격적인 수사를 시작한 것이다. 11월에는 협력업체와 일해토건에 대한 대대적인 압수수색도 실시했다.
이에 대해 신동아건설은 “비자금 의혹은 사실무근”이라면서 “검찰수사가 조속히 마무리되도록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밝혔지만 정·재계의 이목은 다시 과거 의혹들에 집중됐다. 과연 신동아건설 비자금 실체가 드러날지, 신동아건설 매각 과정에 연루된 것으로 거론된 정계 인사들에게 비자금이 흘러간 정황이 드러날지 큰 관심을 모았다.
그러나 최근 마무리된 신동아건설 비자금 의혹 수사는 일각의 기대와 달리 실망스러운 수준인 것으로 알려진다. 그간 비자금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확실한 증거를 잡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는 검찰 관계자들의 말과 달리, 검찰은 신동아건설 일부 직원과 일해토건 측 직원들의 횡령 및 부정 청탁 뇌물 혐의를 잡아내는 수준에서 이번 사건을 마무리했다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들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지난해 12월 30일 협력업체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신동아건설 현장소장이었던 김 아무개 씨와 G 사 대표로부터 경쟁사 입찰 정보를 알려달라는 청탁과 함께 7100만 원을 수수한 부장 임 아무개 씨를 불구속입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금품수수의 흐름은 그간 검찰이 신동아건설의 비자금으로 지목해왔던 자금 중 일부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검찰은 신동아건설의 숨겨진 비자금 창고로 지목해 수사를 벌였던 협력업체들에 대해서도 신동아건설 건과는 별개로 각자 운영 중인 업체의 회사자금을 횡령한 혐의를 잡아내는 데 그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B 사 대표 이 아무개 씨를 인건비 과다 계상 등의 방법으로 회사자금 13억여 원을 횡령한 혐의로, J 사 대표 박 아무개 씨를 같은 방법으로 회사자금 26억 원을 횡령하고 16억 원을 탈세한 혐의로 1월 중 불구속입건할 것이라고 한다.
일해토건 관련 수사 역시 검찰이 중점을 뒀던 DJ 정권 실세와 유착관계는 전혀 드러나지 않은 채 종결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관계자들에 따르면 일해토건 수사 과정에서 정계 인사에게 흘러갔다는 의심을 산 자금 흐름은 모두 회사 직원들의 횡령금 중 일부였다고 한다. 검찰은 이와 관련해 임원 신 아무개 씨와 중간간부 김 아무개 씨 등 일해토건 관계자 세 명을 회사자금 20억여 원을 횡령한 혐의로 각각 불구속입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검찰은 세간의 이목을 끌었던 신동아건설 비자금 수사 과정에서 비자금 의혹과 DJ 정권 실세 개입 의혹 중 어느 하나도 밝혀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회장과 일부 직원들에게 면죄부까지 쥐어주는 수사 결과를 내놓은 셈이다.
이에 대해선 검찰 내부에서도 불만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우리 내부에서도 이번 신동아건설 비자금 의혹 수사를 두고 실패한 수사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며 “각종 의혹만 더욱 커지고 밝혀진 것은 하나도 없는 수사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수사 결과로 인해 신동아건설 수사가 검찰의 전 정권 인사를 겨냥한 표적수사였다는 의혹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