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은 NLL을 포기한 적 없다’가 정답”
하태경 의원은 지난 2일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표결 당시 불참하면서 반대의사를 밝힌 네 명의 새누리당 의원 중 한 명이다. 그중에서도 하 의원이 유일한 초선이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지난 2일,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표결에 불참했다. 초선 의원으로서 쉽지 않은 선택을 했다.
“뭐 늘 그렇게 살아왔는데(웃음). 내가 안팎에서 ‘변절자’라는 얘기를 듣는 이유가 뭔데. 내가 확신이 있으면, 외부에서 뭐라고 해도 내 길을 걸어왔기 때문에 그렇다. (운동권 시절) 내 주변 사람이 다 친북일 때, 그게 아니라고 깨닫는 순간 뛰쳐나왔다. 그 시대 동료들과 적이 될 것을 각오하고 나온 거였다. 그래도 그 당시에 비하면 새누리당은 리버럴하지.”
―사전에 당 지도부에 양해를 구했나.
“난 의총에서 처음부터 아예 상정조차 하지 말자고 했다. 투표하려면, 당론 투표를 하지 말고 자유롭게 투표하자고. 뭐 현실적으로 강제 투표 비슷하게 바뀌었지만. 처음엔 고민했다. 들어가서 반대표를 행사하느냐, 아예 불참하느냐를 두고. 결론적으로 난 아예 상정 자체를 반대했기 때문에 불참했다. 그렇게 반대의 뜻을 나타냈다.”
―왜 불참했나.
“애초에 국가정보원이 전문 공개하는 것부터 반대했다. 명색이 국가기밀이지 않나. 기밀을 누구의 요구가 있다고 해서 까기 시작하면 나라 기강이 흔들리지. 기밀로 선정한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나. 그런데 자꾸 기밀 유효기간 안에 다 공개해버리면 나라만 불필요한 일로 시끄러워진다. 정상 간 내밀한 이야기를 하려면, 공개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 공개회담을 하면 정작 필요한 속 깊은 이야기는 못한다.”
―여권과 보수진영에서는 대화록에 포함된 내용을 두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외교적 저자세에 대해 비판했다. 하 의원의 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시 그 상황 속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을 했다는 이야기로 들리는데.
“그렇다. 적장하고의 회담 아닌가. 다양한 전략을 구사할 수 있다. 적장과의 회담은 일종의 전쟁이다. 전쟁에서는 쓸 수 있는 모든 전략과 전술을 다 써야 한다. 때에 따라 상대방에게 고함을 지를 수도, 반어법과 아부성 발언도 할 수 있다. 거짓말은 물론 립서비스도 할 수 있는 거다. 고자세와 함께 저자세도 할 수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당시 발언들이 문제가 전혀 없다?
“현재 그 양반은 죽었다. 물론 지금으로서는 당시 어떤 맥락을 갖고 얘기를 했는지 종합적으론 알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기밀로 둔 거고. 지금 대화록이 국민에게 공개되면서 세간의 평가를 맡겨버리니까 오만가지 얘기들이 다 나오는 거다. 외교적 대화에는 진실이 없다. 오로지 당파적 진실만 있다. 무엇보다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은 우리나라 최고 헌법기관이 한 얘기다. 국민들이 위임한 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 얘기는 우리 국민이 한 얘기다. 이것을 그저 한 개인이 쓸 데 없이 한 얘기로 치부하면 우리 국민의 치부를 드러내는 거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현재 새누리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 아닌가.
“그런 점도 있다. 그것은 야당도 마찬가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전두환 대통령을 인정 안했다. 우리의 국가관이라는 게, 좌우 냉전이 심하고 상당히 약하다.”
하 의원은 국익을 위해 대화록 공개 합의를 철회하라고 주장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사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서해 북방한계선)을 포기했느냐, 안했느냐는 우문이다. 그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당시 발언을 두고 우리 국익 관점에서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이것이 더 우리에게 유의미한 질문이다. 그리고 사실 지금 이 논쟁은 해석논쟁도 아니다. 이미 결론은 정해져 있다. 국익의 관점으로 올바른 답변은 ‘노무현 전 대통령은 NLL을 포기한 적이 없다’가 답이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다. 개중에는 NLL을 포기하는 듯한 발언도 있고, 또 포기하지 않은 듯한 발언도 있다. 그럴 때 우리는 포기하지 않은 듯한 발언에 무게 중심을 두고 해석해야 한다는 거다.”
―어쨌든 여야 간 대화록 공개가 합의됐다.
“난 솔직히 공개 합의 자체를 철회했으면 좋겠다. 어차피 지금 여야가 시시비비 가리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 열람 전까지만 해도 이 논쟁은 치킨게임이었다. 우리 당에서 열람 찬성 안하면 꿀리는 거라고 생각한 거다. 이것 안하면 코너에 몰린다고 생각하니까. 진실이 무엇인지가 문제가 아닌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소모적 논쟁 그만하자’고 했을 때 여야 어느 누구도 비판 안했다. 이런 상황에서 뭘 쓸 데 없이 공개하느냐 말이다. 다 접자 이거다. 까봐야 새로운 분란만 생긴다. 국가를 위한다면 여야 모두 잠시 쪽팔리겠지만, 접어야지.”
―야권에서는 남재준 국정원장 사퇴를 국정원 개혁의 영순위로 요구하고 있다.
“나는 남재준 국정원장과 함께 문재인 의원도 동시 사퇴해야 한다고 본다. 이 문제의 발단은 남재준이지만 기폭제와 추동력은 문재인 의원이었다. 문서 공개의 결정적 계기는 문재인 의원이 공개에 찬성 의사를 나타내면서부터다. 국가기록원 열람을 주도한 것은 문재인 의원이다. 이번 사태를 종합해 볼 때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사람은 남재준 국정원장과 문재인 의원이다.”
―문재인 의원이 주군(노무현 전 대통령)의 입장보다는 자신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고 보는 건가.
“자기정치를 하기 위해서 하는 행동 아닌가. 다른 것도 아니고 나라를 위해서라면 끝까지 공개 반대했어야지. 이것 강조하고 싶다. 남재준, 문재인 동시사퇴와 여야 지도부 대국민사과를 요구한다. 그래서 이런 소모적 논쟁 끝내자.”
―이번 일도 그렇지만, ‘임을 위한 행진곡’ 논란과 ‘우리민족끼리’ 해킹 사건 때도 소신을 밝혔다. 초선으로서 범상치 않은 행보다. 당내 입지 불안에 대한 염려는 없나.
“그런 것 없다. 최소한 난 사람 뒤통수는 치지 않았다.”
―요즘 ‘일간베스트’에서 가장 욕을 많이 먹고 있는 여권 인사가 바로 하 의원이다.
“그런가. 인지도가 그만큼 올라갔다는 의미 아닌가(웃음).”
―그럼 앞으로도 이러한 스탠스를 유지할 것인가.
“우리나라는 낡은 보수와 낡은 진보가 여론을 주도하고 있다. 우리민족끼리 회원 명단 해킹사태 당시 ‘회원은 전부 빨갱이’라고 하는 보수도 있고, ‘애국가를 왜 부르느냐’고 하는 진보도 있다. 무엇보다 건강한 중심이 구축돼야 한다. 기존의 낡은 진보와 보수를 뛰어넘는 새로운 담론과 흐름을 실천적으로 보여주는 역할이 필요하다. 그게 새누리당 내에서 내 역할이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