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기 이륙중에 착륙사고 날벼락
사고 여객기에 탔던 김윤주 씨(휠체어 앉은 사람) 등 객실 승무원들이 11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마중나온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을 보자마자 참았던 울음을 토해내고 있다. 연합뉴스
채권단 양해 아래 금호타이어의 실권 없는 명예회장 자리를 유지했던 박 회장은 경영에서 물러난 지 1년 3개월여 만인 지난 2010년 11월 1일 전격적으로 회장직에 복귀했다. 박 회장은 지난해 6월 지배구조상 그룹의 지주사 역할을 하는 금호산업 유상증자에도 참여, 잃어버렸던 최대주주 자리를 찾아오면서 박찬구 회장의 금호석유화학계열을 제외한 그룹 전체에 대한 오너십까지 되찾아 올 수 있었다.
또한 건설경기 침체로 여전히 어려운 금호산업과 달리 금호타이어는 실적이 호전되며 내년 워크아웃 졸업 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처럼 비상을 위해 활주로를 달리던 박 회장이 돌연 대형 사고라는 걸림돌에 맞닥뜨리면서 그의 재기에도 적신호가 켜지고 있는 것이다.
박 회장은 사고가 발생한 지난 7일 소식을 전해 듣고 윤영두 사장과 함께 중국에서 급히 귀국했다. 사고 수습을 위해 윤영두 사장을 미국으로 보낸 박 회장은 사고 발생 이후 공식 일정도 잡지 않은 채 사고 관련 구체적 내용을 수시로 보고 받으며 조속한 사고 수습에 골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중국인 3명이 사망한 것과 관련 중국 내 신인도 하락 등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1일에는 직접 인천공항 입국장을 찾아 사고기에 탑승했던 객실 승무원들을 포옹하며 위로하기도 했다.
지난 2005년부터 한중우호협회장을 맡아오고 있는 박 회장은 그동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등 주요 인사들과도 긴밀한 협력관계를 다져오며 민간 외교관 역할을 톡톡히 해 왔다. 또 그룹 차원에서도 중국 시장에 공을 들이고 있다. 지난 1990년대 초반 금호고속 중국 진출을 시작으로 금호타이어가 창춘 난징 톈진, 세 곳에 공장을 지으며 중국에서의 입지를 다졌다.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중국 21개 지역 31개 노선을 확보해 국내 항공사 중 가장 많은 노선을 운영 중이기도 하다.
우선 항공업계 최성수기에 터진 이번 사고로 아시아나항공은 실적 걱정부터 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됐다. 지난 1분기 연결 기준 영업손실 211억 원을 기록한 아시아나항공은 2분기에도 200억 원이 넘는 영업손실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7~8월 성수기에 실적 호전을 기대할 수 있었지만 갑작스레 터진 사고가 제동을 걸었다.
윤영두 아시아나항공 사장이 지난 8일 사고 대책에 대한 브리핑을 하는 모습.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아시아나항공의 실적 부진으로 파생되는 문제들은 금호그룹으로선 더욱 걱정스러운 대목이다. 재계 일각에서는 신용등급이 ‘BBB+’ 정도에 불과한 아시아나항공이 상반기 실적 부진을 털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스스로 놓침으로써 향후 회사채 발행 여건이 한층 악화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사고 발생으로 아시아나항공뿐만 아니라 금호산업 등 다른 계열사 주가까지 하락하며 시가총액이 증발되고 있는 상황에서 회사채 발행까지 더 어려워질 경우 자본 조달 능력이 악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올 하반기 채권단 자율협약 졸업을 목표로 삼았던 아시아나항공이 돌발 악재로 이마저도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 나오기도 한다. 채권단이 자율협약을 연장할지를 결정하는 데 있어 실적은 가장 중요한 잣대 중 하나다. 아시아나항공 지분 30.08%를 보유하며 이 회사 최대주주로 있는 금호산업에도 이번 사고가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금호아시아나그룹에서 ‘캐시카우(현금창출원)’로 통하는 핵심 계열사로 위기의 금호산업에 자금줄 역할을 해 왔기 때문이다.
올해 초 금호산업이 유동성 확보를 위해 베트남 금호아시아나플라자사이공을 처분했을 때 지분 50%를 721억 원에 인수한 계열사가 바로 아시아나항공이었다. 앞서의 재계 관계자는 “금호타이어는 실적도 호전되고 있고 아시아나항공과 지분관계도 없어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금호산업은 다르다”며 “사고로 인해 아시아나항공이 당장 실적에 차질을 빚을 경우 금호산업의 자금 동원력도 타격을 받게 될 것이며, 채권단에도 안 좋은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박 회장을 비롯한 금호그룹 구성원들의 심리적 압박감 심화가 장기적으로 더 큰 손실일 수 있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재계 또 다른 관계자는 “박 회장의 경우 동생인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과도 풀어야 할 문제가 있는 등 경영 외적으로도 다른 그룹 총수들에 비해 심리적 피로감이 더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번에 사고가 터지면서 그 피로감이 더욱 심화될 듯하다”며 “자칫 금호그룹 전체가 심리적 위축과 압박감이 심해질 경우 장기적으로 더 큰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 관계자는 “그룹이 어려운 가운데 이번 사고로 인해 더 어려워진 상황이 됐다”며 “민심이나 여론이 안 좋게 흘러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수습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이연호 기자 dew90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