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리버드 몸값하고 어리버리 꼴값한다
▲ MBC 드라마 <신입사원> 스틸컷. | ||
요즘 신입들은 소위 ‘스펙’이 훌륭하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학점관리부터 기본 업무능력, 어학실력까지 갖춘 인재들이 즐비하다. 그러나 간혹 넘치는 능력에 자만심 가득 찬 신입은 선배들에게 눈엣가시가 된다. 마케팅 회사에 근무하는 J 씨(여·30)는 얼마 전 들어온 신입이 얄밉기만 하다.
“신입사원이 들어왔는데 자기 말로는 피티(PT·프레젠테이션)의 제왕이래요. 남들이 그렇게 부른다나요? 대학생 PT대회에서 입상한 경력도 있다고 하니 허풍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런 사람이 좀 겸손하면 얼마나 예쁘겠어요. 그런데 꼭 티를 냅니다. 제가 선임이라 이것저것 업무 요령을 가르쳤더니 좀 친해졌다 싶었는지 자기자랑이 시도 때도 없어요. 주말에는 취업 준비하는 대학생들 대상으로 PT 스터디를 해주는데 꽤 받는다는 둥, 본인 정도면 대기업 갈 수도 있었는데 실무를 배우기 위해 왔다는 둥 선배로서 듣기 거북한 소리도 합니다. 속으로 날 무시하고 있는 건 아닌지 괜히 의심만 드네요. 휴대전화에도 ‘잘난 척 대마왕’으로 입력했다니까요.”
잘난 척 못지않게 미움 받는 신입사원이 바로 ‘나대는’ 스타일이다. 대체적으로 조직 내에서는 심하게 눈에 띄는 행동을 하면 찍히는 법이다. 보험회사에서 일하는 Y 씨(31)는 지나친 패기가 부르는 행동은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무조건 잘 보이고 눈에 띄고 싶은 심정이야 이해하죠. 하지만 학창시절에도 너무 까불면 눈총을 받잖아요. 직장생활도 마찬가지예요. 일은 제대로 안 하면서 말만 지나치게 많은 신입이 있었어요. 그것만으로도 마이너스인데 한번은 회식을 갔더니 팀장한테 눈에 띄게 아부를 하더라고요. 그날 신입들 다 보내고 팀장과 고참급들만 조촐하게 3차를 갔는데 그 신입이 팀장한테 아부성 문자를 보냈더군요. 팀장이야 허허 웃으면서 이것 좀 보라고 했지만 같이 있던 동료들은 미운털 하나씩 콕 박아줬습니다.”
업무시간에 바짝 긴장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이 일반적인 신입사원의 모습이다. 그러나 IT 회사에 다니는 K 씨(29)는 최근 어이없는 일을 겪었다.
“신입이 들어왔는데 나이차도 얼마 안 나고 해서 선임이지만 좀 편하게 해줬어요. 그런데 나중에는 저랑 같이 놀려고 하더군요. 슬슬 출근이 늦고 퇴근이 빨라지기 시작했는데 거기까진 참을 만했어요. 그런데 며칠 전에는 업무시간에 축구를 보더라고요. 우리 회사는 프로그램 개발 때문에 모니터를 2대 놓고 쓰는데 그 친구 자리가 또 팀장 위치에서는 안 보이고 바로 옆자리인 저한테만 노출돼 있거든요. 근데 대놓고 다른 모니터 하나로 축구를 보는 거예요. 저를 무시하는 행동 같아서 순간 화가 났는데 생각해보니 너무 편하게 해준 제 잘못도 있었죠. 그 이후로 사적인 얘기 절대 안 하고 업무적인 지시만 내립니다. 잘못된 게 있으면 바로바로 무안할 정도로 지적하고요. 처음에는 이 선배 왜 이러나 싶은 표정이더니 지금은 다시 군기가 바짝 들었어요.”
당연한 얘기지만 건설회사에 근무하는 N 씨(32)는 태도가 좋아도 일을 못하면 못난이 신입이 된다고 지적한다.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 붙잡아 놓고 일일이 가르쳐 줄 여유가 없다는 것.
“가끔 어려운 입사시험을 통과한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어리버리’한 신입들이 있어요. 똑같은 걸 계속 물어볼 때면 정말 한 대 때려주고 싶죠. 모르면 좀 적든가, 적지도 않아요. 어려운 일이 주어지면 일단 스스로 노력을 한 다음에 도움을 청해야 되는데 무조건 SOS를 칩니다. 모든 일을 100% 알아서 할 수는 없겠지만 어느 정도 센스만 있으면 처리할 수 있는 일까지 코치하자니 피곤해 죽겠어요.”
물론 ‘요즘 애들 같지 않은’ 신입들도 있다. 무역회사에 다니는 B 씨(33)는 될성부른 신입은 회식 때 하는 걸 보면 안다고 귀띔했다.
“사실 회식하기 싫은 거 다 알죠. 저도 신입 때 다 겪었던 일이고요. 인상 깊은 신입이 있었는데 여자 후배였어요. 보통 여자 신입들은 뒷자리에 덩그러니 앉아 있는데 이 친군 그러지 않고 신나게 호응하더군요. 업무할 때 나서는 신입이 아니어서 놀랐지만 놀 때는 또 화끈하게 참여하니까 좋았죠. 회식 끝날 때까지 함께하니까 다음날부터 뭐라도 하나 더 챙겨주고 싶더라고요.”
회식 때 분위기 살리는 역할을 하는 것처럼 선배의 심정을 헤아리는 작은 행동들이 신입의 ‘급’을 결정한다. 식품회사에 근무하는 L 씨(30)는 지난해 입사한 바로 아래 후배가 A급 신입이었단다.
“보통 근태가 좋으면 크게 눈치가 없지 않은 이상 대체로 미움 살 일이 없어요. 전 운이 좋았는지 정말 괜찮은 신입이 밑에 들어왔죠. 평소에도 일찍 나와서 주변 정리를 해놓거나 업무 파악을 하던 신입이었는데 회의가 있는 날이면 더 일찍 나와요. 제가 해야 하는 회의 준비를 돕는다고 일찍 나와서는 이것저것 잡일을 도맡아 했죠. 일이 밀릴 때는 항상 퇴근 시간 다 돼서도 뭐 도와줄 거 없느냐고 물어봐요. 사실 업무파악이 안 된 상태라 도와줄 게 없는데도 물어보는 것만으로도 고맙더라고요. 그렇게 하니까 아낄 수밖에 없어요.”
직장을 다니며 경영학을 공부 중인 M 씨(39). 조직관리에 관심이 많은 그는 신입들에게 이렇게 충고한다.
“신입 때는 이해 못했던 윗사람의 행동이 지금은 이해가 갑니다. 오너 마인드로 생각하니까 어떤 신입이 최고인지, 아닌지 보이더군요. 신입들도 불만이 많겠죠. 하지만 신입들에게 중요한 사실은 직장생활이 혼자 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모든 일이 다 인간관계죠. 최소한 좋은 이미지를 남기는 게 나쁠 건 없어요.”
이다영 프리랜서 dylee2@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