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골 빼먹기도 이정도면 ‘흡혈귀급’
일본 총무성이 발표한 노동력조사에 따르면 35~44세의 완전실업자 수는 64만 명, 45~54세는 45만 명이었다. 이 중에는 물론 자발적인 취업거부자, 즉 일할 의욕이 없어 부모의 재력으로 무위도식하는 이들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990년대 이후 일본은 장기불황에 따른 취업난으로 인해 일찌감치 취업을 포기하는 미혼 젊은이들이 늘어났다. 취업 대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부모와 동거하면서 의식주 등 기초적인 생활을 의존하려했던 것. 이제 그 젊은이들은 나이가 들어 어느덧 중년이 됐고, 부모세대 역시 연금으로 생활하는 은퇴자들이 됐다. 그런데 세월만 흘렀을 뿐이다. 취업빙하기의 희생을 자식들이 아닌 부모세대가 여전히 치르고 있는 실정이다.
오사카에 사는 한 70대 남성은 일하려 하지 않는 장남을 부양하고 있다. 38세인 아들은 지금까지 한 번도 취직한 적이 없다. 많지 않은 연금을 아들과 나눠 쓰며 생활하고 있지만, 자신이 죽으면 연금도 나오지 않게 된다. 아들의 장래만 생각하면 절망적인 마음에 밤잠을 설치기 일쑤다. 보다 못한 어느 날 그는 통장의 잔액과 부동산, 보험 등 모든 재산을 낱낱이 아들에게 공개했다. 특별한 말을 따로 하지 않았지만 아들은 ‘부모가 죽으면 이 정도밖에 남지 않는구나’라고 꽤 진지하게 받아들였다고 한다. “‘아르바이트라도 찾아볼까요’라고 나직이 말하는 아들의 말에 조금은 안심이 됐다”고 그는 털어놓는다.
그러나 위의 사례처럼 자녀가 위기의식을 느끼고 스스로 일을 찾아나서는 경우는 많지가 않다고 한다. NPO법인 ‘뉴스타트’의 대표 후타가미 노우키(68)는 이렇게 말한다. “패러사이트 싱글족들에게 부모가 죽으면 어떻게 할 것인지 물으면 대부분 ‘정부로부터 생활보호를 받으면 되지 않나?’라고 되물어오는 것이 현실이다. 아마 ‘부모가 남긴 돈으로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안일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며 “생활보호 수급자만 늘어날 일본의 미래가 결코 밝지만은 않다”고 꼬집었다.
일본 드라마 <결혼 못하는 남자>의 한 장면.
상황이 이렇다보니 자식 대신 ‘대리 결혼활동’을 하는 부모까지 나타났다. 대리 결혼활동을 하는 부모들을 위한 교류회, 맞선모임도 전국 각지에서 열리고 있다. 특히 시마네현은 2012년 10월부터 ‘부모로부터 시작되는 결연 교류회’를 열고 있는데 지원자가 정원을 초과해 추첨을 실시하기도 했다고. 그만큼 자식의 결혼활동에 열심인 부모가 많다는 얘기다.
자식이 중년이 넘어서도 결혼을 꺼리면 부모는 무조건 결혼시키기 위해 필사적이 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것은 자녀와의 관계를 악화시킬 뿐이라고 조언한다. 사실 자녀들은 미혼이어도 크게 곤란하지 않다. 본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부모가 강행하면 자존심만 상한다. 자녀들이 자주적으로 움직이도록 유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전문가들은 또한 부모들의 대리 결혼활동을 성공시키는 비결에 대해, “자녀를 과대평가하지 않고 상식적인 범위에서 상대를 찾는 것이 관건”이라고 덧붙였다.
등골 빼는 뒷바라지도 모자라 중년이 넘어서도 부모와 동거하는 자식들. 키우는 방법이 잘못됐을까. 왜 우리 집 아들만 이럴까. 이제 와서 자책해 봐야 소용없다. 패러사이트 싱글, 곤카쓰(婚活·결혼활동) 등의 신조어를 만들어낸 일본의 대표적 사회학자 야마다 마사히로 교수(56)는 늘어만 가는 중년 패러사이트 싱글 문제에 대해 기본적으로 자식을 집에서 내보내든지, 부모가 집을 나가지 않는 한 해소되지 않는다고 잘라 말한다. 자녀들이 일하지 않고, 결혼하지 않는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선 부모와 함께 살고 있는 환경부터 개선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도 구체화하려면 먼저 부모와 자식 세대 간의 의식차를 좁혀야 한다.
가령 취업과 결혼, 그리고 집을 가지고 있는 성공적인 부모들은 일본 경제의 부흥을 이끌었던 단카이세대(団塊世代)다. 반면 자식들은 버블 붕괴 이후밖에 모르는 불황세대로 이는 결과적으로 부모에게 기대는 의존증을 낳았다. 재산을 축적하기 쉬웠던 부모들에 비해 자신들은 부를 쌓기 어려운 환경이기 때문에 직업도 결혼도 집도 구하지 않고 의존적 성향을 띠었던 것. 따라서 ‘일하지 않으면 낙오자’ ‘가정을 이뤄야만 정상인’ 등 부모세대의 가치관을 무리하게 강요해서는 안 된다. 전문가들은 이에 “패러사이트 싱글족 스스로가 문제를 자각하게 하고, 현실을 마주서도록 하는 과정이 먼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