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은 황급히 출국 한명은 거래 올스톱
검찰이 7월 18일 경기도 파주시 출판단지 시공사 사옥을 압수수색, 전두환 비자금이 유입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압수 미술품을 화물차로 옮기고 있다. 임준선 기자
<일요신문>은 이미 지난해 12월, 전 씨가 전두환 일가의 비자금 관리인일 가능성을 보도하기도 했다. 전두환의 장녀 효선 씨가 연희동 L 빌라에 살기 전 거주했던 서초동 신반포아파트의 직전 소유주가 전호범 씨로 나왔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전 씨는 해당 아파트를 사면서 빌린 채권채무액 2억 4000만 원을 시공사에 떠넘기기도 했다.
전호범 씨의 현재 거주지로 알려진 제주시 연동의 한 상가 오피스텔은 검찰 압수수색이 진행되기 한참 전에 다른 세입자가 살고 있었다. 전 씨는 운영하던 영어학원마저 1년 전에 정리했다. 이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나는 왜 되는 일이 없느냐”며 신세 한탄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때문에 2000년 중반 이후 전 씨가 전두환 일가와 불미스러운 일로 결별했고 이미 새로운 곳간지기로 교체됐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실제 검찰이 전 씨를 출국 금지하지 않았던 것도 더는 전두환 비자금에 연루된 인물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전호범 씨가 전두환 일가와 결별했든 아니든 그의 신병을 확보하는 일은 중요하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알려진 전 씨 일가 비자금 관리인인 이규동 씨와 이창석 씨는 혈연관계로 얽어있었기 때문에 검찰 수사가 어려웠던 측면이 있었다. 반면 전 씨는 혈연관계가 아니면서도 재산 형성에 깊숙이 관련됐다는 것 아닌가. 그의 신병을 확보하지 못한 것은 뼈아픈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전재국 씨가 직·간접적으로 거래해 온 MB정부 실세 부인이 운영하는 L 갤러리. 최준필 기자
당시 작가들 사이에서는 <아르비방> 시리즈에 속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유명세를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전두환 일가 역시 <아르비방>에 속한 작가들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구입했고 해당 작가의 작품과 화집을 맞교환하는 식으로 그림을 매입하기도 했다. <아르비방>이 1996년 완간됐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 사이 참여 작가들의 작품 값이 많이 올랐을 것을 유추할 수 있다.
한편 최근까지 재국 씨 미술품 구매를 조력한 이는 전호범 씨와 같은 홍익대 미대 출신의 한 여성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여성은 최근까지도 해외에서 국내 작가의 그림을 구매를 시도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 여성을 중심으로 한 몇몇 갤러리에서 지난 3월 미국 크리스티 경매에서 고가에 낙찰돼 화제를 모았던 박수근·김환기 화백의 작품, 그리고 지난해 12월 보스턴에서 거래된 박수근 화백의 또 다른 작품 등 총 세 점을 한꺼번에 매입하려 했다는 것이다.
재미교포 언론인 안치용 씨와 민주당 한 의원실의 말을 종합해 보면 이들은 한국 작가 그림 세 점을 낙찰 받은 원소유자에게 15% 웃돈을 주고 사들이려고 했다. 그러던 중 6월 초 갑자기 “지금은 사정이 생겨 거래할 수 없다”며 거래 중단을 통보했다. 공교롭게도 6월은 재국 씨가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시기와 겹친다.
미술계에서는 돈 되는 작품이 많지 않아 비자금 유입이 증명돼도 실제 추징 금액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L 갤러리 측은 “재국 씨와 직접 그림 거래를 한 적이 없다”고 보도 내용은 부인하면서도 “설사 그분과 연관된 분과 거래를 했다고 하더라도 음성적으로 한 것도 아니고 정상적으로 한 것인데 비자금과 엮어 왜곡하면 어떡하느냐”고 반발했다. 이명박 정부 동안 환수된 추징금은 304만 7000원, 전두환 씨가 자진해 낸 강의료 300만 원을 제외하면 4만 7000원이 전부다.
미술계에서는 몇몇 작품을 제외하면 값어치가 뛰어난 작품들이 많지는 않아 실제 추징 금액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꺼번에 200점이 넘는 그림을 확보하면서 최종 환수까지도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진위를 파악하는 데만도 상당한 시일이 걸리고 진품으로 확인되더라도 해당 미술품 구입경로와 자금 출처를 파악하고 최종적으로 전두환 씨의 비자금이 흘러들어갔는지를 검찰에서 밝혀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전두환 일가가 반발해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법조계 관계자는 “대법원 민사 판례에 따르면 ‘채무자로부터 재산을 넘겨받은 수익자나 전득자(남이 취득한 물건이나 권리를 다시 넘겨받은 사람)는 선의의 입증책임이 수익자 또는 전득자에게 있다.’ 민사 판례이긴 하나 사건 구조가 비슷하고 사회 분위기상 완화된 입증이라도 추징될 여지가 충분하다”고 전했다. 특별집행팀은 전두환 일가의 미술품이 주요한 관심을 받고 있는 만큼 불법 취득한 정황이 포착되면 추징금 환수 차원이 아닌 특별 수사로 전환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