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협공…문재인 막다른 골목으로…
김한길 대표는 지난 24일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NLL 포기 논란은 사실상 끝났다”며 NLL 정국과 거리두기에 나설 것임을 분명히 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그 중심에 문재인 의원이 있다. 애초 국정원 대선 개입 파문 상황 속에서 NLL 대화록 의혹을 제기하며 역공에 나섰던 것은 새누리당 정보위 소속 의원들이었고, 국정원이 보관하고 있었던 전문을 공개한 것은 남재준 국정원장이었다. 그렇지만 당시만 해도 국가기록원에 보관됐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던 대화록 원본 공개를 야권에서 제일 먼저 제안하고 NLL 정국을 주도했던 것은 다름 아닌 문재인 의원이었다.
그런데 전혀 예상 못했던 국가기록원의 ‘NLL 대화록 사초(史草) 증발’ 사태가 터진 것이다. 여권에서는 노무현 정권의 문건 이관 여부를 따져 물으며 민주당, 특히 문재인 의원을 비롯한 친노 진영을 압박했다. 세 결집과 당내 주도권 확장에 나섰던 문재인 의원으로서는 뜻밖의 자충수로 인해 고사위기에 처하게 된 것. 출구는커녕 완전히 코너에 몰린 꼴이 됐다.
여권의 공세도 공세지만, 무엇보다 민주당 내부가 심상찮다. 중립적 성향의 원로급 민주당 의원은 “남재준이고 문재인이고, 주변 생각 안하는 다 똑같은 놈들”이라며 “문재인도 결국 지 살길 찾으려고 하다가 이렇게 된통 당한 거 아니냐. 엄연히 당 지도부가 있는데, 너무 앞장섰고 결과도 시원찮다”고 격분하며 연신 혀를 차댔다. 그토록 염려했던 민주당 내 계파갈등과 내홍이 이번 일로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지난 7월 23일, 문재인 의원이 공개 성명을 통해 발언한 내용들은 지금 이러한 당내 내홍 상황 속에서 불에 기름을 붓는 형국이 됐다. 문 의원은 “이제 NLL 논쟁은 끝내야 한다”며 새누리당에게 “국민들의 바람대로 NLL 논란, 더 이상 질질 끌지 말고 끝내자. 대화록이 없다고 하는 상황의 규명은 여야가 별도로 논의하면 될 일”이라고 제안했다. 대화록 공개 열람을 제안한 지 한 달도 채 안 된 상황에서 도리어 ‘논란을 종식하자’며 대뜸 출구전략에 나선 것이다.
문재인 의원의 발언 직후 만난 비노 진영의 한 민주당 당직자는 “결자해지란 말이 있지 않느냐. 대화록 공개를 제안하며 정국을 주도했던 이는 다름 아닌 문재인 의원이었다”며 “그런데 이제 와서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재빨리 손을 떼려 하고 있다. 일은 본인이 다 저질러놓고 상황이 어려워지니 그냥 손 털겠다는 얘기 아니냐. 어이가 없어도 너무 없다”고 덧붙였다.
당내 비노·비주류 진영에서는 본격적으로 문재인 의원을 비롯한 친노 진영에 단죄의 칼날을 들이밀 기세다. 지난 7월 25일, 비주류 진영의 핵심인 김영환 의원이 PBC 라디오에 출연해 “지금 와서 ‘그냥 덮자’고 얘기하는 것은 국민들이 듣기에 ‘장난치는 거냐’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며 “이 일을 주도했던 분들은 자숙하고 말을 아껴야 한다”고 문재인 의원을 직접 겨냥했다.
최고위원이기도 한 조경태 의원 역시 25일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NLL 논쟁을 그만하자는 문재인 의원의 성명을 접하고 국민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이런 무책임이 어디 있느냐”며 “정쟁의 불을 지르고 지금에 와서 ‘아님 말고’ 식은, 무책임의 극치다.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 비겁하지 말아야 한다”고 문재인 의원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는 민주당 김한길 지도부를 향해서도 “더 이상 특정 계파에 끌려 다녀서는 안 된다. 계파의 들러리가 되어선 더더욱 안 된다”고 엄중 경고했다. ‘책임’까지 거론하며 사실상 문재인 의원의 사퇴를 종용하고 나선 것이다.
한동안 문재인 의원이 주도한 정국에 속절없이 끌려갔던 민주당 김한길 지도부의 향후 스탠스 역시 유심히 지켜볼 대목이다. 김한길 대표는 24일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당내에서 서로에게 돌을 던지는 일, 정파적 행동이나 주장은 새누리당이 원하는 자중지란을 초래할 뿐”이라며 다시금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는 계파 간 내홍조짐을 경계하면서도 “NLL 포기 논란은 사실상 끝나 있다”고 얻는 것도 없이 질질 끌려만 다녔던 NLL 형국과 이제는 거리두기에 나설 것임을 분명히 했다. 김한길 대표는 최근 자신이 내세웠던 핵심 사안인 ‘을지로위원회(을 지원 Law 위원회)’에 참석했다.
아직까지 문재인 의원 측에서는 이러한 당내 비주류 진영의 비판과 공세에 대해 별다른 입장 표명이나 반응을 내보이진 않고 있다. 지난 한 달간 NLL 정국을 주도해가며 반등의 기회를 노렸던 문재인 의원과 친노 진영의 앞날은 그리 밝지 않아 보인다. NLL 대화록 실종의 책임 소재를 두고 ‘내·외부의 적’의 협공에 몰린 그들에게 과연 묘수는 존재하는 것일까. 그리고 다시금 자중지란에 빠진 민주당과 당 지도부의 미래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주목된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