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 3세 경영 논란 막후

독립 경영 한다더니… 오너경영 회기?

[일요신문] 현대중공업 대주주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의 장남 정기선 씨가 현대중공업 경영기획팀 부장으로 재입사해 현대중공업 안팎에서 뒷말이 나오고 있다. 1982년 생으로 31세인 정 부장 발령이 너무 빠른 데다 10년 넘게 유지해오던 전문경영인 체제가 흔들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현대중공업 측은 부인하고 있지만 정 부장을 본사 경영기획팀에 배치한 데는 장남에게 경영수업을 시키고자 하는 대주주 정몽준 의원의 의중이 반영됐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전격적으로 꺼내든 이 카드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그 까닭을 짚어봤다.

정기선 부장

지난 6월 13일 현대중공업이 정기선 부장의 재입사를 알렸을 때 재계에서는 극심한 조선 경기 침체기를 겪고 있는 현대중공업이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오너십을 강조한 것이라는 해석이 적지 않았다. 정몽준 의원이 경영에 복귀하기 힘든 상황에서 장남을 투입,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겠다는 의도로 풀이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현대중공업의 ‘3세경영’이 시작된 것으로도 파악했다. 정 부장의 복귀는 올 초 정몽준 의원의 장녀 남이 씨(30)가 정 의원이 명예이사장으로 있는 아산나눔재단 기획팀장으로 발령 난 것과 맞물리면서 3세경영의 시작을 알리기에 충분했다. 현대중공업 측은 “아직 후계구도를 논하기 이르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재계에서는 기정사실화했다. 재계 관계자는 “소유와 경영 분리의 모범사례를 자랑해오던 현대중공업이 갑작스레 후계를 언급하기는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중공업 대주주인 정몽준 의원의 아들 정기선 씨가 현대중공업 부장으로 재입사해 전문경영인 체제가 흔들릴 것이란 얘기가 나오고 있다. 사진은 울산 현대중공업 전경. 연합뉴스

한편 재계 일각에서는 ‘벌써?’라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다른 기업과 달리 부장급이 대개 40대 중후반부터 시작하는 현대중공업에서 31세의 나이에 부장으로 발령 났으니 놀라워하는 반응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더욱이 2009년 재무팀 대리로 7개월가량 근무한 바 있는 정 부장이 과·차장을 거치지 않고 바로 부장으로 재입사한 것도 구설에 올랐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비록 회사 내 부장급보다 나이가 어리지만 경력만으로도 부장급 대우를 받기에 손색이 없다”고 설명했다. 미국 스탠퍼드대 MBA(경영학석사) 취득과 보스턴컨설팅그룹 근무 등 정 부장의 경력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재벌 중 오너 자제의 느닷없는 ‘낙하산’ 발령이나 초고속 승진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마찬가지 과정을 거쳤으며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역시 다를 바 없다. 그럼에도 유독 현대중공업에 남다른 시선이 쏠리는 까닭은 현대중공업이 그동안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강조해왔으며 스스로 이를 ‘모범사례’라고 치켜세웠기 때문이다.

정 의원은 회장 자리에 이어 2002년 현대중공업 고문직까지 내놓은 이후 현대중공업 경영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뜻을 내비쳤다. 정치권에서 종종 정 의원과 현대중공업의 관계에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정 의원 측은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강조해왔다. 그러나 장남을 경영기획팀 부장에 앉히면서 더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내세울 수 없게 됐다. 비록 정 부장이 현대중공업 지분을 갖고 있지 않지만 대주주 장남이 회사에 들어간 이상 소유와 경영이 분리될 수 없어 보인다.

경영에서 손을 뗀 정몽준 의원. 현대중공업은 그동안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모범사례로 스스로를 강조해왔다.

이와 관련, 정 의원의 두 자녀인 정기선 부장과 정남이 팀장이 현대중공업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정몽준 의원이 대주주로서 현대중공업 지분 10.15%를 보유하고 있고 현대중공업이 현대종합상사, 현대삼호중공업 등을 지배하는 구조다. 자녀들이 지분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은 그동안 현대중공업 내에 대주주 친족이 재직하고 있지 않다는 점과 함께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자랑할 수 있는 근거가 돼왔다.

일각에서는 벌써 현대중공업 내부에서조차 정 의원의 두 자녀에 대한 인사발령을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특히 정 부장에 대해서는 직원들 사이에서 뒷말이 무성하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다. 그러나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그런 분위기가 있다는 말도 처음 듣는 얘기며 경영기획팀이 핵심부서도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재계 고위 인사는 “현대중공업 내에서는 정주영 회장에 대한 향수가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면서 “아무리 10년 넘게 전문경영인 체제를 유지해왔다지만 기업에서 오너의 영향력은 그리 가볍지 않다”고 말했다. 정기선 부장의 재입사로 현대중공업이 여러 모로 주목받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11년 만에 조직에 오너십을 불어넣은 선택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지 벌써부터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임형도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