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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히딩크 감독이 월드컵 기간 착용한 넥타이(왼쪽 •오른쪽 사진 우측)와 관광공사 라벨이 붙은 가 짜 히딩크 넥타이 | ||
버젓이 ‘한국관광공사’ 마크를 붙인 채 외국 귀빈에게 배포된 ‘가짜 히딩크 넥타이’ 소동의 전말을 따라가봤다. 이른바 ‘히딩크 넥타이’는 월드컵 기간중에 히딩크 감독이 경기장에 매고 나와 화제가 됐던 넥타이. 태극과 팔괘(八卦) 문양을 디자인에 응용한 이 넥타이의 제작자는 산업디자인 업체 N사의 사장 이아무개씨(44씨)다. 이씨는 경기 때마다 푸른 바탕에 흰 무늬 넥타이를 고수하던 히딩크 감독에게 이 넥타이를 선물했고 히딩크 감독은 6월14일 포르투갈전부터 이씨의 넥타이를 매고 경기에 출전, 연승가도를 달렸다.
그리고 히딩크 감독의 어퍼컷 세리머니가 카메라 플래쉬를 받을 때마다 그의 앞자락에서 출렁이는 넥타이에도 관심이 모아졌다. 히딩크 넥타이가 ‘빅히트’감으로 떠오르자 시중에는 이씨의 고유 디자인을 베낀 ‘가짜’ 히딩크 넥타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10만원을 호가하는 이들 가짜 넥타이의 판매실적은 히딩크 감독의 인기에 실려 급속히 올라갔다. 보다못한 이씨는 8월3일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고 같은 달 11일 이들 유사 상품을 제조겿퓔탭?업자 9명을 상대로 ‘저작권 등 침해금지 가처분신청’을 서울지방법원에 냈다.
서울지방경찰청 역시 지난 8월초부터 시중에 나도는 소문을 토대로 자체 수사를 시작한 상태. 이들 9명의 유사상품 업자들을 중심으로 수사를 벌여나가던 경찰은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문제는 판매업체 H사가 유통시킨 가짜 히딩크 넥타이의 제조업체로 지목됐던 S사에서 불거졌다. 이 회사 사무실을 뒤지던 형사들의 눈에 수상한 넥타이가 들어왔던 것. 바로 ‘한국관광공사’ 라벨이 붙은 히딩크 넥타이 몇 장이었다.
이 넥타이들은 S사가 한국관광공사에 납품했던 것들. 경찰과 검찰, 법원은 물론 저작권자인 이씨조차 몰랐던 사실이었다. 꼼짝없이 ‘물증’을 잡힌 S사 대표 정아무개씨(43)는 순순히 전말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관광공사가 지난 6월24일 ‘히딩크 넥타이를 만들어 달라’고 주문해 와 이를 제작해 납품했다는 것. 정씨에 따르면 관광공사 해외진흥처의 진흥기획팀 관계자는 이 같은 주문을 하면서 6월21일자 한 일간지에 난 기사를 오려가지고 왔다고 한다. ‘히딩크 넥타이의 비밀’이라는 제목의 이 기사에는 넥타이의 문양과 문양에 담긴 의미가 상세하게 담겨 있었다.
관광공사측이 ‘이걸 참고해서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다는 것. 정씨가 “히딩크 넥타이는 N사가 디자인해 판매하고 있어 만들 수 없다”고 말하자 관광공사 관계자 J씨는 “판매용이 아니니까 괜찮다. 변형해서 만들면 되지 않느냐”라고 말했다고 한다. 정씨는 원래의 히딩크 넥타이보다 태극 문양의 크기를 더 작게 그리고, 점 8개가 찍힌 팔괘(八卦)의 주변에 점 4개씩을 더 찍어 ‘변형’시킨 뒤 넥타이 자체 크기는 ‘진짜’보다 더 크게 만들었다.
하지만 누가 봐도 히딩크 넥타이를 본뜬 것임을 알 수 있었다. N사의 진짜 ‘히딩크 넥타이’의 시중 가격은 12만5천원 정도. 관광공사는 이 가짜 넥타이를 S사로부터 장당 1만2천원에 납품 받았다. 관광공사측은 이 같은 사실을 대부분 인정했다. 하지만 ‘저작권’ 문제에 대해서는 정씨가 주장한 ‘변형’이 아닌 ‘활용’이라는 말로 표현을 바꿨다. 해외진흥처의 유세준 진흥기획팀장은 “태극무늬와 팔괘 문양을 활용해달라는 것이었지 그대로 만들자는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유 팀장은 “업체가 실수를 한 것 같은데 결과적으로 부끄럽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제작업체가 저작권 문제를 지적했음에도 “조금 바꾸면 되지 않느냐”며 막무가내식의 업무 추진을 한 데 대한 유감의 언급은 어디에도 없다. 히딩크 넥타이 저작권자인 이씨는 “관광공사의 이런 모습은 저작권에 대한 정부 부처의 불감증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며 “정씨에 대해서는 더 이상 문제삼고 싶은 생각이 없지만 관광공사는 이번 계기에 따끔한 맛을 봐야 한다”며 단단히 벼르고 있는 모습이다.
관광공사가 S사로부터 납품 받은 가짜 히딩크 넥타이는 모두 5백30장. 공사는 지난 7월18일 4백30장을 19개 해외 지사에 배포했다. 앞으로 1년 동안 외국 관광업계 인사들에게 선물할 넥타이다. 현재 국내에 있는 1백장 중 2장의 넥타이는 외국인에게 선물했으며 나머지 전량은 경찰에 증거물로 압수돼있다.
관광공사측은 “경찰에서도 별다른 언급이 없는 상황에서 해외에 배포된 넥타이를 회수할 계획은 없다”고 말해 이번 가짜 넥타이 소동에 대한 안이한 인식을 드러냈다. 해외 지사에 있는 관광공사 직원들이 미사여구로 포장해 외국의 귀빈에게 건넬 가짜 히딩크 넥타이들. 자신이 선물 받은 넥타이가 모조품임을 알게 되면 과연 이들 귀빈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