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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3년 5월 국회에 출석한 권영해 국방장관. | ||
민주당 신기남 의원은 최근 이 후보 아들 병역비리 의혹이 재차 사회적 파문을 일으키자 지난달 28일 국회 법사위 정책질의에서 다시금 이 문제를 꺼내 들었다. 그 요지는 지난 93년 감사원장 시절 이 후보가 율곡비리 조사과정에서 정연씨 등 두 아들의 병역비리를 덮는 조건으로 당시 권영해 국방장관과 권 장관의 동생 비리혐의를 묵인해 줬다는 것. 물론 정연씨의 병역면제 과정에 관여한 관계자들과 마찬가지로 ‘빅딜설’ 관련자들도 ‘전혀 사실무근’임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 같은 의혹이 다시 제기된 까닭은 무엇일까. 딜설’이 등장한 배경은 93년 당시 상황과 무관치 않다. 그만한 개연성이 있기 때문이다. 93년 YS 문민정부 출범과 동시에 국방부와 감사원은 대대적인 비리 척결에 나섰다. 김영삼 대통령의 특명에 의한 것이었다. 그해 3월22일 국방부 특명검열단은 ‘성역없는 군 관련 비리 척결’을 내세워 병무부조리 전반에 대한 대대적인 감사에 착수했다. 군납비리는 물론 사회고위층 자제들의 병역비리도 감사 대상에 포함됐다.
하지만 병역면제 과정에서의 비리보다는 상급부대로 배치되는 과정과 방위판정자들에 대한 특혜의혹이 초기 중점 감사항목이었다. 당시 국방장관은 권영해 장관이었다. 한편 감사원은 비슷한 시기인 3월27일 두터운 베일에 가려졌던 한국군 전력증강사업(율곡사업) 비리의혹에 대한 특별감사에 착수했다. 그 때 감사원장은 이회창 원장. 감사 초기 국방부 관계자들은 내심 안심하고 있었다. 그동안 국방부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가 있었지만 그다지 큰 비리를 발견해낸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사원의 감사가 진행될수록 국방부는 잔뜩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감사원의 칼끝이 그 어느 때보다 매서웠고 율곡비리의 실체를 낱낱이 파헤쳐 들어왔던 것이다. 감사대상은 국방부뿐만 아니라 안기부와 청와대로까지 확대됐고 급기야 권 장관도 수사대상에 오르내렸다. 또 권 장관의 동생이 무기중개업체인 학산실업으로부터 거액의 돈을 받은 혐의를 감사원이 포착했다는 소문도 무성했다. 그해 5월 감사원과 국방부는 첨예한 대립양상을 보였다.
감사원의 자료제출 요구에 국방부는 군사기밀이라는 이유를 내세워 거부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미묘한 시기에 국방부 특명검열단은 그동안 감사했던 군내 병무부조리감사 중간결과를 발표했다. 5월27일 특명검열단 단장 장병용 중장이 발표한 내용의 골자다. “병역특혜 의혹이 일고 있는 수도권지역 병역면제자 24명(신체검사 5급), 방위병 1백63명(3∼4급), 공중보건의 94명(3∼4급) 등 2백81명에 대해 정밀 재신체검사를 실시한 결과 3∼5급 판정자 중 신장과 체중으로 방위판정이나 병역면제를 받은 사람이 상당수에 이르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앞으로 신체검사 항목 중 신장 및 체중부분을 폐지키로 방침을 정했다.” 국방부가 조사대상자로 삼은 것은 90년부터 92년까지의 면제 또는 방위판정자들이었다. 묘하게도 90년과 91년 각각 5급 면제판정을 받은 수연씨와 정연씨 등 이회창 감사원장 두 아들의 판정시기와 일치했다. 우연의 일치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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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3년 7월 당시 이회창 감사원장이 율곡비리와 관련해 감 사원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
그후 한 달 가까이 지난 6월25일 권 장관은 국방부 한 벙커에서 이 원장을 만났다. 그리고 7월9일, 감사원이 1백여 일에 걸친 율곡비리에 대한 감사결과를 발표하던 날 권 장관은 물론 권 장관의 동생도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그러나 감사원 감사결과가 검찰로 넘겨지고 1주일 뒤 권 장관의 동생이 학산실업으로부터 5천만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고 말았다. 이로 인해 감사원은 감사결과 축소 은폐의혹을 받기도 했다.
국방부 특명검열단의 병무부조리 전반에 대한 감사결과는 그해 10월 국정감사 과정에서 밝혀졌다. 그 결과는 예상 밖. 특명검열단의 병역특혜 의혹자에 대한 정밀재신검 결과에 따르면 90년부터 92년까지 방위병 판정을 받은 26명 중 68%인 17명이 현역 대상자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의 절반 이상은 사회고위층 인사들의 자제였다. 그런데 정작 의문을 더했던 대목은 바로 병역면제자들에 대한 감사 결과였다. 이들의 대부분은 사회고위층 자제였는데 재심결과 아무런 문제도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시 말해 감사원은 권 장관 주변을 조사했지만 아무런 혐의를 잡지 못했고, 국방부는 당시 사회지도층 자제 면제자에 포함돼 있던 이 원장 두 아들의 병역면제 과정에 별 이상이 없었다는 결론을 내린 셈이다. 이른바 ‘빅딜설’이 제기되고 있는 배경이다. 민주당 신기남 의원도 이 같은 배경과 개연성을 근거로 “이회창 후보는 율곡비리와 관련한 권영해 전 장관의 혐의가 없다고 공인해 주고, 권 전 장관은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당연히 적발했어야 할 이 후보의 두 아들 병역비리 혐의를 눈감아줬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고 주장했다.
군 수사기관 한 관계자도 ‘빅딜설’의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당시 군 정보기관 관계자로부터 들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이회창 감사원장의 압박이 심해지자 국방부 수뇌부 일각에선 상당히 부담스러워 했다. 그런데 정보기관으로부터 이 원장 두 아들의 병역면제와 관련한 정보를 전해듣고 이들의 태도가 변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결국 국방부 수뇌부는 이 원장 두 아들의 병역면제 과정에 대해 실제로 조사하지 않았으면서도 마치 한 것처럼 발표해 이 원장에게 역공을 가했고 그 나름대로 충분한 성과를 봤다고 한다.
덕분에 권 장관이 혐의 자체를 깨끗이 벗을 수 있었다는 시각이다.” 물론 ‘빅딜설’에 대한 당사자들의 입장은 ‘허무맹랑한 시나리오’라는 것으로 집약된다. 이 후보측 관계자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말” “코웃음 칠 만한 이야기”라고 무시하기도 했다. YS정부 시절 국방위 고위직을 지냈던 한 인사는 “정권교체 직후 나라 기강을 바로잡으려 하던 때에 무슨 물밑거래가 있었겠느냐”고 반문하기까지 했다. 당시 군 병무부조리 감사를 총 지휘했던 장병용 전 특명검열단장도 이에 대해 “전혀 사실과 다른 소설 같은 이야기”라고 전면 부인했다. 장 전 단장은 “분명히 말하지만 국방장관과 감사원장간의 ‘빅딜’이라는 것은 전혀 없었다”면서 “방향을 잘못 잡아도 한참 잘못 잡은 것”이라고 충고했다.
장 전 단장은 이어 “군대를 빼려고 돈을 주고받는 사실을 밝히기는 무척 어렵고 힘든 것이다. 당시 감사대상에 병역 면제자는 포함하지 않았다”며 “사회 고위층 인사들의 아들들이 병무부정에 의해 국방부와 헌병대 등 재경부대에 배치되는 경우가 많다는 문제제기가 있어서 이에 대한 실태와 함께 어떤 경로를 통해 입대겧蝸〉풔쩝熾?대해 집중 조사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관계자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정가에서 일고 있는 빅딜설 논란. 과연 또 하나의 소모적인 ‘진실게임’에 불과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