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격의 맏딸들 ‘가문의 부활’ 꿈꾼다
대상 본사 건물. 전영기 기자 yk000@ilyo.co.kr
지난해 10월 임 상무의 여동생인 임상민 부장(34)이 (주)대상 전략기획본부 부본부장으로 발령 나면서 대상그룹이 ‘3세경영’의 닻을 올렸을 때 많은 이들의 시선은 임 상무에게 향했다. 과연 임 상무는 어떤 역할을 맡을지 궁금했던 탓이다. 대상그룹 측은 “사업보다 육아에 더 신경 쓰고 있다”며 임 상무의 경영 참여 가능성을 일축한 바 있다. 그러나 임 부장의 발령이 있은 후 불과 두 달 만에 임 상무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으면서 마침내 그룹 경영에 본격 참여하기 시작한 것.
임 상무가 새롭게 맡은 자리가 예사롭지 않다는 점도 주목을 받고 있다. 식품사업총괄 부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식품 부문 브랜드 매니지먼트와 기획, 마케팅, 디자인 등을 총괄하는 자리다. ‘청정원’으로 유명하고 식품사업이 주력인 대상그룹 내에서는 핵심적인 위치 중 하나다. 재계에서 올 하반기 임 상무가 ‘청정원’의 대대적인 CI(기업 이미지) 교체를 앞세워 경영 전면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대상 관계자는 “임 상무 자리가 그룹 내에서 핵심적인 것은 맞지만 아직까지는 실무를 파악하고 신제품 출시에 관여하는 정도”라며 “CI 교체를 검토는 하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확정되거나 윤곽이 잡힌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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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세령 대상 상무.
임 상무의 부각으로 자연스레 대상그룹 후계구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임창욱 명예회장이 경영에서 물러난 지 오래된 터라 후계가 급하겠지만 임 상무의 경우 앞으로도 최소한 1년 정도는 더 걸리지 않겠느냐”고 반문하며 “무엇이 됐든 임 상무의 작품이 나오는 것이 먼저일 것”이라고 말했다. 대상 관계자는 “아직은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든가 틈새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제품이 출시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임 상무가 아직은 ‘열공 중’임을 인정한 셈이다.
반면 후계를 정리하면서 혼선이 빚어질 것이라는 예상도 적지 않다. 여전히 임상민 부장의 대상홀딩스 지분이 임 상무보다 많기 때문이다. 지난 3월 31일 기준 대상홀딩스 최대주주는 임상민 부장으로 38.36%를 보유하고 있으며 임세령 상무는 20.41%를 보유하고 있다. 직급은 언니인 임 상무가 높지만 지분은 여전히 동생 임 부장이 더 많다.
재계 고위 인사는 “지분 구조와 비율을 빼놓고 경영권과 후계를 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면서 “후계를 논하면서 지분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부장 동생이 상무 언니보다 더 많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대상그룹은 언제든 문제가 폭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의미다. 대상 관계자는 “그룹 내에서 지분 문제는 크게 얘기되지 않는다”면서 “지분과 직급은 별개 문제이며 지분만으로 후계를 논하는 것은 시기상조인 듯하다”고 했다.
이런 임세령 상무와 동시에 주목받는 재벌가 장녀가 있으니 바로 동양가의 현정담 동양매직 상무다. 현재 동양매직 매각 작업이 진행되고 있어 곧 동양매직을 떠날 것으로 보이는 현 상무의 다음 몸담을 곳이 어디로 정해질지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양그룹 빌딩 입구. 일요신문 DB
동양 관계자는 “매각 작업 중에 오너 일가의 다음 거취를 정하는 건 예의가 아니다”라며 “조직과 시스템을 인수하는 쪽에 성실히 넘기고 다음 행선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원래 Bto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를 담당했으니 다음에도 그쪽이 유력하지 않겠느냐”며 사실상 동양생명과학 화장품사업부문 행을 인정했다.
동양은 삼척화력발전사업과 함께 화장품 사업에도 의욕을 보이고 있다. 동양 관계자는 “밖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좋다”며 화장품 사업 성공을 자신하고 있다. 삼척화력발전사업과 함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은 동양의 화장품 사업을 현정담 상무가 성공적으로 이끈다면 현 상무는 어려움에 빠진 가문을 일으킨 ‘능력 있는 오너 경영인’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숱한 재무구조개선 작업에도 불구하고 동양은 위기설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신용등급 A도 발행하기 어려운 최근 회사채 시장에서 더블비(BB)로 ‘투기등급’인 동양이 지난 5월부터 잇달아 수천억 원가량의 회사채를 발행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회사채 환매가 돌아오면 이를 감당할 수 있을지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전문가가 적지 않다. 동양 측은 “여러 방편과 대비를 마련한 상태에서 진행한 것”이라고 하지만 위험하다는 평가를 피할 수는 없다.
금방이라도 될 듯하던 계열사 매각 작업도 아직까지는 딱 부러지게 완료된 것이 없다. 제삼자에 매각하려던 파일사업부는 인수하려는 곳이 없어 결국 계열사인 동양파일에 급히 매각해 현금을 마련했다. 가장 큰 기대를 모았던 동양매직은 당초 교원그룹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으나 지난 7월 돌연 KTB컨소시엄으로 우선협상대상자가 교체됐다. IB업계에서는 동양과 교원의 협상 가격이 맞지 않은 탓으로 보고 있다. 동양은 3000억 원을 요구한 반면 교원은 2300억 원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동양은 KTB컨소시엄에 100억 원이 많은 2400억 원에 매각할 것을 결정했다. 고작 100억 원 비싸게 판 것에 불과하지만 대신 KTB컨소시엄이 펀드로 이루어져 있어 훗날 경영권을 되찾아 올 수 있는 여지를 남긴 셈이다.
상황이 이러니 동양매직 매각이 마무리되고 현 상무가 화장품사업 부문을 맡아 성공한다면 현 상무가 ‘스타덤’에 오르는 건 당연지사다. 게다가 후계구도에서도 유리한 자리를 차지할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금까지는 지난 6월 동양온라인 대표이사에도 선임된 남동생 현승담 동양네트웍스 대표(33)가 한 발 앞서 있다는 평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동양 관계자는 “현재현 회장님 연세가 많지 않은 데다 두 분 지분이 턱없이 낮은 상황에서 경영권이나 후계를 논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현정담 상무는 그룹 지주회사 격인 (주)동양의 지분 0.76%를, 현승담 대표는 0.25%를 보유하고 있다.
여러모로 비슷한 재벌가 장녀, 임세령 상무와 현정담 상무가 ‘가문의 영광’을 이끌 수 있을지 재계가 주목하고 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