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찰떡궁합…핫한 작품 기대하시라”
그동안 전용 숙소와 체육관이 없어 고생을 했던 러시앤캐시 배구단이 최근 경기도 용인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이전 현대캐피탈이 사용했던 숙소로, 리모델링 끝에 선수단 모두 이사를 마쳤다. 새로운 터전에서 가열찬 도전과 꿈을 향해 내달리는 ‘초보’ 지도자들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본다.
# 감독과 코치로 맺은 인연
신생팀 러시앤캐시의 초보 지도자 콤비로 새출발을 하는 김세진 감독(오른쪽)과 석진욱 코치.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김세진(김): 난 해설위원으로 생활하면서 IT 기업도 운영을 했기 때문에 먹고 사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그동안 여러 차례 프로팀의 감독 제의를 받았지만, 하고 있는 일들이 많은 탓에 그 일들을 포기하고 감독직을 맡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러시앤캐시로부터 연락을 받았을 때는 ‘창단팀’이란 단어에 닫힌 마음이 스르륵 녹아들어갔다. 누가 이끌었던 팀이 아닌 신생팀에서 내 마음대로 그림을 그려볼 수 있다는 유혹이 어느 것보다 강하게 날 끌어들였다. 그때 가장 먼저 떠올렸던 이가 석 코치이다. 이 친구가 있다면 내가 도전할 자신이 생길 것 같았다. 그래서 계약서에 사인하기 전에 석 코치를 찾아가 같이 일해보자라고 제안했는데 처음엔 거절당했다(웃음).
석진욱(석): 지난 시즌 끝나고 몸 상태가 최악이었다. 도저히 더 이상 선수 생활을 유지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신치용 감독에게 은퇴를 하겠다고 말씀드렸더니 좀 쉰 다음에 얘기하자고 하시더라. 그렇게 집에서 쉬고 있을 때 김 감독으로부터 전화가 왔었다. 러시앤캐시에서 같이 일해보자고. 처음에는 고민이 많았다. 막상 은퇴를 하려니 가족들이 만류했다. 15년 동안 몸 담았던 삼성을 떠나는 데 대해 걱정이 많았던 것이다. 그런데 내 마음 속은 어느 순간부터 가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처음에는 거절했다가 일주일 후에 다시 전화를 드려서 해보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문제는 신치용 감독님께 어떻게 의사 전달을 하느냐였다. 은퇴도 만류하셨던 분인데, 신생팀 코치로 간다는 얘길 들으시면 어떤 반응을 보이실지 상상이 됐다. 많이 욕 먹고, 혼도 나고 했지만, 그래도 막판에는 ‘가서 열심히 해보라’고 격려를 해주셨다.
김: 석 코치보다 (신 감독한테) 내가 더 많이 혼났다. 1, 2년은 선수 생활을 더 할 수 있는 애를 불러냈다면서 화를 내셨지만, 뭐 어쩌겠나. 내가 더 간절했는데. 구단에서는 초보 감독이니 경험 많은 수석 코치를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날 가장 잘 알고, 나랑 가장 호흡을 잘 맞출 수 있는 사람을 뽑고 싶었다. 그 사람이 석 코치였다.
# 삼성 출신이란 무게감
김: 배구계에는 신 감독님이 배출하신 지도자들이 여럿 계신다. 그런데 아마 우리 둘이 가장 ‘핫’한 새내기 지도자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책임감을 많이 느낀다. 창단팀이라 성적을 내는 부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여유가 있지만, 나를 믿고 따르는 선수들을 위해 팀을 잘 만들어보고 싶은 욕심이 있다.
석: 삼성화재는 모든 걸 다 갖춘 팀이다. 선수단 환경도 국내 최고라고 손꼽을 만큼 클래스가 다른 팀이다. 지금 우리 팀은 선수가 5명밖에 안 된다. 12일 신인 드래프트를 거치고 외국인 선수를 뽑으면 정상적인 선수단 운영이 이뤄지겠지만, 지금은 여러 가지 면에서 삼성과 비교될 수 없을 정도이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내 선택을 후회한 적이 없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새로운 아이디어, 새로운 용기, 자신감 등이 샘솟는 것 같다. 난 지금 삼성 출신이라는 타이틀보다 러시앤캐시 수석코치로서 내 역할에 충실하고 싶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김: 내가 젊은 감독으로 꼽히지만, 선수들과는 꽤 나이 차이가 난다. 그들의 생각을 따라가기란 어렵다. 그러나 진심은 통한다고 믿는다. 어린 선수들이 대부분이지만, 그들의 인격을 존중하고, 내가 갖고 있는 색깔을 천천히 보여주고 싶다. 아마 선수들과의 가교 역할을 우리 석 코치가 잘해줄 것이다.
석: 그런데 내가 삼성에 있을 때도 후배들이 날 어려워했다. 워낙 나이 차이가 나니까 쉽게 ‘형’이란 호칭도 쓰지 못했다. (여)오현이가 열두 살 차이 나는 후배들한테는 ‘선배님’ 그 밑으로는 ‘형’이라 부르라고 정리해줬다. 러시앤캐시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아직은 나한테 쉽게 다가오지 못한다. 그런데 오히려 그런 관계가 긴장감을 형성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 같다. 신생팀이라고 해도 규율은 굉장히 엄격하다. 그런 부분이 잘 지켜져야 운동 안할 때 편하게 지낼 수 있지 않나 싶다.
# 삼성과의 맞대결
김: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한다. 삼성화재와 러시앤캐시와의 대결에 대해서. 그러나 솔직히 비교 자체가 안 되지 않나. 이제야 겨우 팀을 꾸린 신생팀과 명가의 제국을 이룬 팀과의 비교는…. 그리고 우린 삼성뿐만 아니라 다른 팀들도 다 상대하기 버거운 존재이다. 이제 겨우 첫 발을 뗐는데 기존 팀들과의 맞대결을 논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석: 현대로 간 (최)태웅이가 나보다 더 많이 내 걱정을 한다. 지도자 준비 전혀 없이 수석 코치를 맡아서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면서. 삼성 출신이라 기대가 클 텐데, 삼성을 만나 무참히 깨지면, 그 스트레스를 어떻게 감당할 거냐면서. 그래서 내가 네 걱정이나 하라고 받아쳤다(웃음). 어차피 코트에서 많은 분들을 만나야 한다. 최대한 그 맞대결들이 색이 바래지 않도록 우리 팀의 전력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
김 감독은 석 코치에게 “감독 눈치 보지 말고 자기 주장을 확실히 내세우는 코치이길 바란다”고 당부했고, 석 코치는 김 감독에게 “요즘 허리가 안 좋으신 것 같은데 시즌 중에 벤치를 비우는 일은 절대 없게끔 해달라”며 웃음을 터트린다.
‘처음’이란 단어는 설렘과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혼자가 아닌 둘이, 그것도 서로에 대한 신뢰가 무궁무진한 선후배가 한 배에 올라탔기 때문에 두려움보다는 설렘이 더 큰 게 아닐까. 초짜 감독, 코치가 말하는 대화 속에는 상대를 향한 무한 애정이 듬뿍 담겨 있었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