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랜드 ‘전방위 M&A’ 불안하다

유별난 먹성에 금고는 빨간불

[일요신문] 이랜드그룹은 지난 13일 대구의 프린스호텔 인수를 마무리했다고 밝혔다. 인수 금액은 공개하지 않았다. 이 호텔은 지상12층, 지하4층 규모로 객실 117개를 보유하고 있는 특2급 호텔이다. 이에 앞서 지난 6월에도 전주 코아호텔(특2급) 등을 인수한 이랜드는 이번 인수로 전국에 6개의 특급호텔을 보유하게 됐다. 중견 패션업체에 불과하던 이랜드는 2000년대 이후 공격적인 인수합병(M&A)을 통해 어느덧 재계 서열 49위(공기업 제외)의 대기업집단으로 성장했다. 지난 3년 간 국내외 22개 회사를 인수하는 데 들어간 자금만 약 1조 1100억 원으로 알려졌다. M&A의 절대 강자로 통하는 롯데그룹 못잖은 식욕을 과시한 셈이다. 하지만 박성수 이랜드그룹 회장의 적극적인 외형 확장에 대해 재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빠른 몸집 불리기로 인해 부채가 급격히 증가하며 재무건전성에 적신호가 켜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랜드그룹이 M&A 시장에서 거침없는 식욕을 과시하고 있다. 지난 6월 LA 기자간담회에서 케이스위스와 손잡고 미국 시장 진출 계획을 발표하는 모습. 연합뉴스

이랜드가 주력인 유통·패션 사업 위주의 단순한 사업 포트폴리오에서 벗어나 레저 사업을 통해 덩치를 키우는 데 열중하고 있다. 지난 2011년 이후 품에 안은 이 분야의 사업체만 10여 개에 달한다. 지난해 중국 광시성 구이린호텔, 사이판의 레저시설 퍼시픽아일랜즈클럽(PIC)·팜스 리조트·코럴 오션 포인트(COP)를 차례로 인수한 데 이어 지난 4월엔 충북 충주의 수안보 와이키키호텔을 인수, 중부권 최대 복합 리조트 조성에 나섰다. 또 제주도 테마파크 사업자로도 선정되며 제주시 애월읍 일대에 한류와 관광을 결합한 신개념 복합리조트 건설을 추진 중이다.

유통·패션 부문 M&A 역시 지칠 줄 모르고 있다. 지난달 말엔 갤러리아 동백점을 인수하며 대전 지역에도 진출했으며, 이보다 앞서 지난 1월에는 미국의 스포츠 브랜드 케이스위스(K-SWISS) 인수에 성공하며 스포츠 패션 브랜드 사업 확장에도 열의를 보이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랜드의 M&A 시도는 전방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불발되긴 했지만 지난해 미국 프로야구단 LA 다저스 인수전에 참여하면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더니, 쌍용건설 인수전에도 뛰어들며 건설업 진출도 꾀한 바 있다. 특히 LA 다저스 인수전 참여를 두고는 홍보 효과를 노린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하지만 이랜드 관계자는 “LA에는 70만 명의 한인 교포가 살고 있는 등 여러 후광효과와 파급력을 고려했을 때 비싼 매입가를 뽑고도 남는다는 생각에 피터 오말리 전 구단주와 컨소시엄을 형성해 지분 일부 인수를 실제로 추진했던 사안”이라며 “우선 다저스 구장의 큰 주차장을 비롯해 엄청난 공간을 활용, 유통 사업을 할 생각이었고, 방송 사업권 등 여러 부수적 사업까지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랜드가 실제 인수 의지가 있었든 없었든지 간에 이랜드는 이로 인해 엄청난 홍보효과를 누리며 이름값을 높일 수 있었다. 올해 초 케이스위스 인수에 성공하며 미국 진출을 본격화할 수 있었던 데는 지난해 LA다저스 인수전 참여로 인한 홍보효과도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쌍용건설 인수 최종 무산 후에도 건설업 진출 의지를 공공연히 내비친 이랜드는 최근 동양건설산업 인수전에서도 주요 인수 후보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처럼 이랜드가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업종을 넘나들며 전방위적으로 M&A를 시도하는 상황이다 보니, 최근에는 시중에 M&A 매물이 나오면 인수 후보 명단에 늘 이랜드가 들어갈 정도다.

이랜드가 인수한 갤러리아 동백점, 대구 프린스호텔, 사이판 퍼시픽아일랜즈클럽(위에서 부터).

문제는 이 같은 몸집 불리기로 인해 재무구조가 악화하고 있다는 데 있다. 사실상 그룹의 지주사 역할을 하는 이랜드월드의 지난해 기준 부채비율은 369.9%이며, 이랜드파크와 이랜드리테일 등 그룹 핵심 계열사들의 부채비율도 모두 200%를 넘고 있다. 지난 2010년 3조 원 수준이었던 이랜드그룹의 부채는 공격적 M&A 탓에 지난해 말 5조 원을 넘어섰다. 이에 따라 신용평가회사들은 잇따라 이랜드그룹 주요 계열사들의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하고 있다. 활발한 M&A를 시도 중인 이랜드그룹을 바라보는 재계의 시선이 달갑지 않은 이유다. 재계 한 관계자는 “과거 경험을 미뤄볼 때 몸집 부풀리기를 위해 빚잔치를 벌여가며 무리하게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확장하다 오히려 큰 화를 당하는 회사들을 여럿 봤다”며 “어려워진 회사를 싼 가격에 주로 인수하던 이랜드가 최근에는 이런 원칙에서마저 벗어나 무분별하게 M&A에 나서고 있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랜드그룹 관계자는 “기존의 패션과 유통, 그리고 레저 사업에서 영역 확장을 꾀하고 있을 뿐 새로운 이종 사업에 뛰어들지는 않았기 때문에 ‘문어발식 확장’이라는 표현은 어폐가 있다”고 말했다. 재무구조에 대한 우려도 섣부르다며 경계했다. 이랜드 측은 “재무건전성을 따질 때는 부채비율보다 현금창출력을 봐야 하는데, 이랜드월드의 경우 올해 약 7000억 원의 현금 이익이 창출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또 우리는 M&A에 단독으로 들어가지 않고 연기금이나 PEF(사모펀드) 등 중장기 재무적 투자자들과 함께 들어가는데 이들은 까다로운 내부 프로세스를 거쳐 투자 결정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지난 7월 30일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2013년 4월 1일 지정 62개 대기업집단의 채무보증 현황’에 따르면, 이랜드그룹은 62개 대기업집단 중 제한대상 채무보증액이 1697억 원으로 가장 많았다. 제한대상 채무보증이란 금융·보험사를 제외한 대기업집단 소속회사가 국내 금융기관의 여신과 관련해 국내 계열회사에 대해 행하는 채무보증으로 1998년부터 법으로 금지되고 있다. 다만 신규 지정된 집단의 소속회사나 기존 집단의 신규 계열사로 편입된 회사는 지정일(계열 편입일)로부터 2년간 채무보증 해소가 유예된다. 이랜드는 지난해 자산총액 5조 원을 넘어 공정위로부터 ‘상호출자·채무보증제한 기업집단’으로 신규 지정됐다. 이랜드 관계자는 “공정위가 발표한 채무보증 건은 내년까지 다 해소해야 하고 이를 위해 현재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랜드그룹은 유별난 먹성 탓에 최근 미국 커피체인점 커피빈 인수를 추진하는 미래에셋으로부터 공동 인수를 제의 받은 바 있다. 하지만 이랜드 관계자는 “미래에셋으로부터 그 같은 제의를 받은 것은 사실이나 최근 미래에셋 측에 불참 의사를 공식 통보했다”고 밝혔다.

이연호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