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중 죽은 남자 성기 잘라… ‘엽기 변태녀’
아베 사다(阿部定)는 1905년 5월 28일에 다다미를 만들던 중상류층 집안의 8남매 중 7번째로 태어났다. 당시는 영유아 사망률이 매우 높았던 시절. 8남매 중 네 명만이 살아남았다. 아베 사다의 어머니는 딸을 게이샤로 만들고 싶었다. 당시 게이샤는 요즘으로 치면 연예인이며 일급 게이샤는 슈퍼스타와 맞먹는 존재였다. 아베 사다는 어릴 적부터 노래를 연습하고 샤미센 연주를 배웠다. 학교는 뒷전이었고, 항상 화장을 하고 다녔던 사다는 거리의 아이들과 거칠게 어울렸고, 그녀의 회고록에 의하면 15세 때 강간을 당했다고 한다.
결국 그녀의 부모는 요코하마의 게이샤 지역에 딸을 팔아버린다. 그녀는 그곳에서 잘 적응하지 못했다. 그다지 탄탄한 수련을 받지 못했기에 3류 게이샤가 돼, 예능인이기보다는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을 주로 하게 된다. 5년 동안 게이샤(라기보다는 창녀) 생활을 했던 그녀는 매독에 걸렸고, 이후 오사카 지역 매춘굴에서 일했지만 항상 탈출을 시도하며 문제를 일으켰다. 그런데 결국 탈출에 성공한 그녀는 과거를 청산하고 웨이트리스 생활을 시작하지만 너무 적은 수입에 다시 자진해서 매춘부 생활로 돌아간다. 매춘굴에서 탈출했던 그녀는 국가에서 인정하는 ‘공창’(公娼)이 아니라 ‘사창’(私娼)에서 일하다가 경찰에게 걸려 체포된다.
아베 사다의 엽기적인 사랑 행각은 출판계와 영화계에 큰 영감을 주었다. 영화 <감각의 제국>의 장면들.
아베 사다는 가사하라에게 이혼을 강요했지만 남자는 거절했다. 그렇게 그들의 관계는 끝났고, 아베 사다는 나고야로 가서 어느 식당의 주방에서 일했다. 그곳에서 일하며 식당을 낼 계획을 세운 그녀는 도쿄의 요시다야에 있는 어느 음식점에서 견습 생활을 하는데, 이때 그곳 주인인 이시다 기치조를 만난다. 31세의 사다와 42세의 기치조. 치명적 관계의 시작이었다.
그 지역에서 바람둥이로 소문난 기치조가 사다와 통정을 하게 된 건 시간 문제였다. 1936년 4월 23일엔 시부야 근처의 여관에 묵으며 4일 동안 이불 속에서 나오지 않고 관계를 나누었고, 이후 다른 여관으로 옮겨 며칠 동안 방에 처박혀 ‘그 짓’을 했다. 그런 식으로 5월 8일까지 이어졌으니 장장 보름에 걸친 엄청난 ‘섹스 투어’였고, 사다는 태어나 처음으로 ‘진정한 사랑’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나중에 이렇게 말했다. “그 남자가 뭐가 그렇게 대단한지는 얘기하기 힘들다. 하지만 그의 나쁜 점을 지적하기도 힘들다. 외모, 매너, 테크닉, 감성… 난 그렇게 섹시한 남자는 만나 본 적이 없었다.”
아베 사다가 일하던 매춘가의 모습.
사다는 기치조의 주검을 몇 시간 동안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칼로 기치조의 성기와 고환을 잘랐고, 그것을 잡지 커버에 싼 후 가방에 넣었다. 그녀는 남자의 왼쪽 허벅지에 “사다와 기치조, 둘이 영원히”라고 피로 글씨를 썼다. 왼쪽 팔엔 칼로 자신의 이름인 ‘定’(사다)을 새겼다. 그리고 아침 8시에 여인숙을 떠났다. 그곳 직원들에겐 남자가 자고 있으니 깨우지 말라고 했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