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에 따르면 손씨는 지난달 14일부터 서울 방배동의 40대 카페 여주인에게 “경기도 파주 ○○사단 연대장인데 내년이면 장성으로 진급한다”며 접근해 20만원을 뜯어내는 등 모두 8명의 여성들을 상대로 사기행각을 벌인 혐의를 받고 있다.
손씨가 자칭 대령으로 ‘진급’한 것은 지난달 중순. 물론 스스로 진급시킨 특이한 케이스였다. 그에게는 이미 지난 96년 중령을 사칭하며 부녀자들을 상대로 사기행각을 벌이다 검거된 전력이 있었다. 이 사건 때문에 징역 1년에 보호감호 7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손씨.
지난 5월 가석방으로 출감한 뒤 그가 한 계급을 올려 육군대령을 사칭하게 된 이유는 그동안 교도소 안에서 보낸 시간을 감안한 일종의 보상심리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중령이라고 밝히기에는 이미 적지않았던 나이도 걸림돌이 됐다.서울의 한 시장에서 장교 복장과 계급장을 구입한 그는 인쇄소에서 장교출입증과 신분증을 위조했다. 이미 중령으로 몇 년간 행세한 경험이 있던 터라 신분위장 절차에 대해서는 손씨 자신이 밝힌 대로 ‘전문가’ 수준이었다.
장교 복장과 계급장, 신분증 등으로 완벽하게 대령으로 변신한 손씨는 지난달 14일부터 본격적인 범행을 시작했다. 서울 일대의 카페나 다방을 전전하며 여주인들을 농락한 것. 해당업소를 몇 차례 출입하며 얼굴을 익힌 뒤 “○○사단 연대장인데 내년에 장군으로 진급한다”며 청혼하는 수법이었다. 이 과정에서 성관계를 맺고 금품을 뜯어내기도 했다.
손씨의 대령 행세는 지난 1일 대구로 내려오면서 제동이 걸렸다. 경찰에 따르면 그는 이날 대구로 내려오는 기차에서 한 남자 회사원과 옆자리에 앉게 됐다고 한다. 대령복장을 하고 있던 손씨에게 이 회사원은 “옛날 군대 생각이 난다”며 식사대접을 제의했다. 이렇게 대구시의 한 식당을 찾아간 두 사람. 마침 식당의 주인이 여자였던 것이 손씨에게는 불행의 시작이었다.
여주인 황지영씨(가명·42)를 보고 예의 흑심이 발동한 손씨는 회사원이 먼저 자리를 뜬 뒤 또다시 “내년이면 장성이 되는데 아내가 없어 외롭다”며 황씨에게 접근했다. 끈질기게 추파를 던진 그는 식당영업을 마친 뒤 황씨와 함께 노래방까지 가는 데 성공했다.
손씨의 작업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다음날 또다시 황씨에게 연락해 만나자고 성화를 부렸던 것. 이쯤되자 손씨의 정체가 의심스러워진 황씨는 자신의 오빠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일단 황씨의 오빠는 해당 부대에 손씨가 복무하고 있는지부터 문의했다. 결과는 당연히 ‘해당자 없음’.게다가 손씨가 근무한다는 경기도 파주 ○○사단에는 이미 그런 문의가 접수된 적이 있었다.
지난달 말께 손씨가 서울 방배동에 있는 카페의 40대 여주인에게 그 부대 대령을 사칭하고 20만원을 빌린 것이 화근이었다. 호기심 많은 이 여주인은 꼭 돈을 받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갑자기 연락이 끊긴 손씨의 소식이 궁금해 부대를 찾았는데 이것이 공교롭게도 ‘가짜 대령’ 손씨의 존재를 부대에 알린 셈이 됐다.
이 일로 손씨에 대해 ‘경계령’을 내리고 있던 부대에서는 황씨 오빠의 문의를 계기로 손씨 검거 작전에 돌입했다. 이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던 손씨는 기대에 부풀어 황씨와의 약속장소로 나갔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건장한 육군 헌병들이었다.육군 헌병대에서 손씨를 넘겨받은 대구 수성경찰서 관계자는 “현재 드러난 피해여성은 8명이지만 수첩에 30여 명의 다른 여자들 전화번호가 나와 있는 것으로 볼 때 피해자는 더욱 늘어날 것”이라며 “사실 손씨는 어렸을 때부터 소년원을 드나든 탓에 군대는 근처에도 가본 적 없는 면제자”라며 혀를 내둘렀다. [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