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루면 손해, 당장 하면 더 손해
동부생명이 기존 입장과 달리 상장을 서두르지 않고 유연하게 대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강남구 대치동에 위치한 동부그룹 본사 사옥 전경. 일요신문 DB
동부생명보험의 상장 추진이 금융권에서 화제다. IPO 등 시장이 얼어붙어 있는 증권업계에서는 기대를 나타내고 있기도 하지만 보험업계에서는 우려의 시선을 보내는 곳도 적지 않다. 제 값을 받아내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급하게 상장을 추진하는 것에 대한 우려다. 지난 2009년부터 상장을 추진해오던 미래에셋생명이 “올해 안에 꼭 상장할 것”이라고 약속했음에도 상장을 미루고 있는 것, 우리은행 인수 의사를 나타낸 교보생명이 상장에 대해서는 여전히 고개를 젓고 있는 것도 시장 상황이 여의치 않은 탓이 크다.
그러나 동부생명의 상장 문제를 이들과 같은 눈으로 보기는 힘들다. 주주들과 한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동부생명은 2010년 12월 1199억 7500만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실시했다. 비상장사들이 주로 하는 주주 배정이나 제3자 배정 방식이 아닌 일반공모 방식이었다. 비상장사가 일반공모를 통해 투자자를 모으는 일은 쉽지 않다. 투자 메리트가 커야 성공할 수 있다. 동부생명은 투자자들에게 3년 안에 상장할 것을 약속하며 투자 메리트를 부각시켰다.
약속대로라면 동부생명은 올해 안에 상장해야 하지만 시장 상황이 악화한 탓에 올해까지 준비 작업을 마친 후 내년에 2013년 회계연도를 기준으로 상장할 것으로 보인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생보업계에서 동부생명은 중하위권에 속한다”면서 “투자자들과 한 약속을 지켜야 하지만 동부생명이 바라는 공모가가 나올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시장이 어렵다고 해서 동부생명이 상장을 미룰 수도 없는 처지다. 동부생명이 유상증자 과정에서 투자자들에게 또 하나 약속했던 것은 상장이 미뤄질 경우 2011년 회계연도 이후, 그러니까 이를 기준으로 2012년부터 상장할 때까지 액면가의 10%를 배당키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업계 상황이 좋아질 때까지 늦추면 좋겠지만 늦추면 늦출수록 그만큼 비용이 추가되는 셈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저금리 시대가 계속 되고 있어 보험업계가 상당히 어려운 환경”이라며 “상황이 언제 좋아질지도 예측할 수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동부생명 입장에서는 언제 좋아질지 모르는 상황을 마냥 기다리면서 투자자들의 배당금을 챙겨주기 힘들다는 얘기다.
동부생명 측은 지금까지 알려진 바와 달리 상장 문제에 유연하게 대처할 뜻을 밝혔다. 동부화재 고위 관계자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올해 말까지 상장 심사 신청을 마치는 것은 확실하지만 내년에 상황 봐서 상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때에 따라서는 상장을 미룰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 관계자는 “시장 상황이 생각보다 너무 좋지 않다”며 “미래에셋생명이 상장을 지연하는 이유와 같다고 보면 된다”고 털어놨다. 상장이 확실시된다던 전망을 완전히 뒤집는 말이다.
동부생명이 시장 예상을 뒤집는 결정을 하게 된 까닭은 상장을 위한 실사 결과, 목표했던 공모가를 받아내기 힘들다는 판단을 한 때문으로 보인다. 당초 동부생명 측은 공모가를 2010년 유상증자 당시 발행가액인 1만 2500원 수준으로 잡았다. 공모가가 유증 발행가액에 미치지 못할 경우 동부생명은 이를 보전해주기로 투자자들에게 약속했던 까닭에서다.
보험·증권업계 일각에서는 “공모가 1만 원도 힘들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으며 동부생명 측도 이를 인정하고 있다. 만일 공모가 1만 원도 받지 못한다면 상장 때까지 주주들에게 지급하기로 한 배당금 지급 규모가 오히려 더 적다는 판단이다. 게다가 동부화재가 동부생명 지분 81%를 보유하고 있어 대부분 배당금이 동부화재로 들어간다.
시장에서는 동부생명 상장을 계기로 동부그룹이 금융지주사를 설립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동부생명의 상장을 미룬다면 금융지주사 설립도 무산되는 것. 동부그룹 관계자는 “이미 제조와 금융부문으로 나뉘어 사실상 지주사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며 새삼스러울 것 없다는 반응이다. 동부화재 측 역시 “동부생명이 보유하고 있던 동부건설 지분 3%를 이미 동부CNI에 매각해 순환출자고리를 해소했다”며 “구조상으로는 이미 제조 쪽은 CNI, 금융 쪽은 화재 중심으로 돼 있다”고 밝혔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
상장된 생보사들은 지금
3곳 다 공모가 밑돌아
현재 증시에 상장돼 있는 생명보험사는 3곳이다. 지난 2009년 동양생명을 시작으로 2010년 대한생명(현 한화생명), 삼성생명이 잇달아 상장하면서 증시를 뜨겁게 달구었다. 국내 생보사로는 처음으로 증시에 입성한 동양생명도 그렇거니와 국내 1, 2위인 삼성생명과 대한생명이 상장할 당시 관심과 흥행은 최고조에 달했다.
그러나 상장한 지 3~4년이 지난 현재, 이들 세 곳의 생보사 주가는 모두 공모가를 밑돌고 있다. 물론 CJ제일제당의 삼성생명 보유지분 대량 매각, 한화생명의 ‘CEO 리스크’ 등의 악재가 주가에 영향을 준 면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보험업계와 증권업계 상황이 좋지 않은 탓이다.
이들 생보사에 대한 전망도 부정적이다. 업계 1위 삼성생명에 대한 평가가 대표적이다. 서보익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생명이 공모가를 회복하고 돌파할 강한 모멘템은 부족하다”며 “사업비차익, 위험률차익으로 분기 당기순이익 1조 원의 창출력을 유지하고 있지만 매출 증가율이 낮아 이익창출력도 크게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며 주가 하락의 이유가 영업 외적인 문제 때문만은 아님을 시사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부생명이 상장한다 한들 원하는 값을 받을지 의문인 것이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
3곳 다 공모가 밑돌아
그러나 상장한 지 3~4년이 지난 현재, 이들 세 곳의 생보사 주가는 모두 공모가를 밑돌고 있다. 물론 CJ제일제당의 삼성생명 보유지분 대량 매각, 한화생명의 ‘CEO 리스크’ 등의 악재가 주가에 영향을 준 면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보험업계와 증권업계 상황이 좋지 않은 탓이다.
이들 생보사에 대한 전망도 부정적이다. 업계 1위 삼성생명에 대한 평가가 대표적이다. 서보익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생명이 공모가를 회복하고 돌파할 강한 모멘템은 부족하다”며 “사업비차익, 위험률차익으로 분기 당기순이익 1조 원의 창출력을 유지하고 있지만 매출 증가율이 낮아 이익창출력도 크게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며 주가 하락의 이유가 영업 외적인 문제 때문만은 아님을 시사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부생명이 상장한다 한들 원하는 값을 받을지 의문인 것이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