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효성 ‘이제 발 좀 뻗고 자나’
‘재계 저승사자’ 채동욱 검찰총장이 사퇴함에 따라 몇몇 기업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채동욱 검찰총장은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으로 정권과 갈등을 빚은 후 한동안 대기업 수사를 자제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수사할 대기업 리스트가 없었다기보다는 현 정권과 눈높이를 맞춘다는 의도가 강했다. 사실 채 총장의 존재는 대기업 입장에서는 공포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실제로 그는 검사 시절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발행 사건, 현대차 비자금 등 굵직한 사건을 수사하며 재계의 저승사자로 불렸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을 구속시킨 것도 채 총장이었다.
그가 지난 4월 검찰총장 취임 후 가장 먼저 빼든 사건도 4대강 비자금 조성과 CJ그룹 비자금 사건이었다. 채 총장은 이를 위해 최측근인 여환섭 중앙수사부 1과장과 윤대진 중수부 2과장을 중수부 폐지와 동시에 서울중앙지검 특수1·2부장으로 배치했다. 두 사람은 지난해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 등을 수사하며 이명박 정부 실세였던 이상득 전 의원,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구속시켰던 대표적인 특수통들이었다.
이들은 특수부로 자리를 옮긴 후 잠시 숨고르기를 하는 듯하더니 각각 4대강 비리와 CJ그룹 비자금 수사에 드라이브를 걸며 기업들을 압박했다. 특히 여환섭 부장검사는 4대강 수사 과정에서 200명의 검사와 수사관을 동원해 16개 대형 건설사를 압수수색했다. 대부분의 대기업이 수사 리스트에 오르며 재계 전체가 긴장했다. 윤대진 부장검사 역시 CJ그룹 비자금 수사를 맡아 이재현 회장을 구속시켰다.
검찰이 재계를 거세게 몰아치면서 반발도 나오기 시작했다. 기업들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청와대와 국회 등에 불만을 표출했고, 이는 곧 ‘경제활성화’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효과가 나타났다. 박 대통령과 여당은 ‘경제민주화보다는 경제활성화가 더 중요하다’며 기업들에 대한 사정기관의 압박을 최소화할 것을 약속했다.
그러자 채 총장이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이후로 소원해진 정권과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서 기업사정 최소화와 공안사건 수사라는 두 가지 카드를 꼽아들었다. 그러는 와중에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혐의가 불거졌고, 검찰은 국정원 수사에 최대한 협조하는 것으로 후방지원을 했다.
왼쪽부터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이재현 CJ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공안수사가 활발해지면서 특수수사는 상대적으로 위축됐다. 실제로 이석기 의원에 대한 구속이 결정될 즈음 중앙지검 특수부의 한 관계자는 “당분간 기업 수사는 없을 것 같다”며 “지금 한다 하더라도 별로 주목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굳이 지금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내부 분위기”라고 말했다.
사실 이 의원 수사가 시작되기 전만 해도 특수부에서는 몇몇 기업들이 다음 수사 대상자로 거론됐었다. 대표적인 기업이 롯데, 효성 등이었다. 특히 롯데의 경우 특수 2부에서 이미 많은 자료까지 축적했다는 것이 검찰 내부의 정설이었다.
대검의 한 관계자는 “경제민주화와 관련해 유통기업들이 입에 오르내렸고 그 중 롯데가 최우선 순위로 꼽혔다”며 “롯데의 경우 하청기업과의 관계가 좋지 않았다는 말이 많았고, 내부 직원들도 그룹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고 말했다. 롯데는 이 때문에 올해 초 기업 내부에 정보팀을 신설해 사정기관과 국회 쪽 동향파악에 열을 올리기도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돈기업인 효성도 유력 후보였었다. 효성의 경우 검찰이 직접 인지수사에 나서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미 국세청 특별세무조사를 받고 있기 때문에 조사 후 검찰 고발이 유력한 상황이었다. 특별세무조사를 받는다는 차원에서 포스코 역시 검찰 수사 후보로 이름이 오르내리기도 했다. 국세청의 한 관계자는 “추징액에 따라 다르지만 효성과 포스코의 경우 아무래도 정치적인 이유가 없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검찰 고발이 유력한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채 총장은 지난 1995년 전두환 노태우 내란사건 수사 때 참여했고, 이때의 인연이 계기가 되어 총장이 된 후에 곧바로 환수 작업에 들어갔다. 전두환 씨에 대한 검찰의 움직임을 본 기업들은 채 총장이 재임 기간에 또 다시 기업수사를 몰아치리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의외의 변수가 불거져 나오며 채 총장이 중도하차하게 된 것이다.
이번 사태를 지켜보는 대기업들은 대체적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분위기다. 한 대기업 임원은 “지난 1년간 경제민주화라는 이름으로 여러 명의 총수들이 구속되면서 전반적으로 대기업들의 분위기가 날카로워졌던 데다 채동욱 총장이 임명되면서 피로감이 더해졌다”면서 “후임 총장이 누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특수통이 다시 총장이 되기는 어렵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가 오히려 기업들에게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도 있다. 공안수사에 대한 피로감이 높아진 데다 검찰의 독립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정권에서 오히려 권력형 비리 수사나 기업비리 수사로 반전의 카드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지환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