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속팀서 죽 쑤니 대표팀서도 ‘찬밥’
# 갈 곳도 없고, 미래도 없고
박주영이 아스널에서 벤치워머로 전락하며 홍명보호 승선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일요신문 DB
그 중에서도 가장 관심을 끈 보도는 박주영이 아스널을 탈출하려면 FA(자유계약선수) 자격 취득을 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선수-구단 간 양자 합의에 따라 계약을 해지, FA 자격을 얻으면 이적료 없이도 언제든 자유롭게 새로운 클럽을 찾을 수 있다는 데서 기인했다.
결론부터 말해 이는 완전히 사실무근이다. 오히려 지금 시점에서 FA로 풀리면 박주영은 훈련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그야말로 ‘국제 미아’ 신세로 전락할 수 있다. 새 유니폼을 입고 뛰려면 무조건 내년 1월까지는 기다려야 한다. 국제 축구계 규정에 따르면 마음대로 팀을 찾을 수 있는 FA가 제대로 효능을 발휘하기 위해선 이적시장 마감일 이전의 날짜에 계약해지 합의가 이뤄졌다는 내용의 합의서가 필요하다. 프랑스와 독일 등은 이 합의서가 있다면 날짜, 시간, 이적시장 등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든 계약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박주영은 아스널과 계약을 해지하지 못했다. 프리미어리그 경기에 출전할 수 있는 25인 로스터에 박주영을 올려놓은 것도 결국 “박주영은 여전히 우리 선수”라는 걸 입증한 대목이다.
더욱이 아스널은 박주영을 쉽게 풀어줄 계획이 없다. 무엇보다 그동안 들인 자금이 너무 많다. 첫 번째 유럽 기착지였던 AS모나코(프랑스)로부터 영입할 때 아스널은 350만 유로(약 50억 5000만 원)를 이적료로 지급했고, 작년 런던올림픽 이후 300만 유로(약 43억 원)를 추가 지급했다. 여기에 박주영의 연봉(세후)은 150만 유로(약 21억 원)에 달한다. 작년 8월 셀타비고(스페인)로 임대했을 때 아스널은 50만 유로(약 7억 2000만 원)를 받아냈는데, 임대료도 철저히 받아내는 게 아스널의 오랜 관례였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괘씸죄’를 거론하기도 한다. 박주영이 셀타비고 복귀 후 여름 내내 찾은 클럽들마다 무상 임대를 요구했다는 것. 런던에서도 부동산 부자로 알려진 아스널이 톱(Top) 클래스도 아닌 선수의 연봉 몇 푼 아끼겠다고 무상으로 소속 선수를 임대시키는 사례가 없다는 게 유럽 축구에 정통한 여러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아스널과 깊은 교감이 있는 한 에이전트는 “당초 아스널은 박주영 측에 완전 이적을 추진하라고 통보했다고 한다. 그런데 대부분이 임대, 그것도 최소한의 성의 표시도 없었던 무상 임대 건이었다고 한다. 프랑스도 독일(함부르크)도 모두 그랬다. 이를 두고 아스널이 굉장히 불쾌해했다. 중동과 러시아 등은 본인이 거부했다고 (아스널 측으로부터) 들었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유력 축구인도 “볼턴이나 레스터시티 등 잉글랜드 챔피언십(2부 리그) 몇몇 클럽들도 관심을 가졌는데, 아스널이 높은 임대료를 불렀다고 한다”고 했다. 그와 함께 지나치게 높은 연봉도 박주영의 발목을 번번이 잡는다. 그런데 또 다른 의문이 있다. 바로 아스널과 계약기간이다. 그간 박주영 측은 내년 6월이 되면 소속 팀과의 계약이 만료된다고 주장해왔다. 박주영 측근은 “선수에 직접 확인해보니 2014년 여름까지 계약돼 있다고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묘하게도 유럽 축구계에서 박주영의 계약 만료 시점은 내년이 아닌, 2015년 6월로 확인됐다. 뚜렷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올림픽 동메달 획득으로 인한 계약 연장, 혹은 셀타비고 임대 기간에 대한 보상 등에 힘이 실리고 있다. 만약 2014년이 아닌, 2015년이 진짜라면 FA는 꿈에 불과하고, 내년 1월 이적도 상당히 어려울 수 있다. 아스널은 적어도 손해 보는 장사를 하지 않는 대표적인 팀이다. 한 에이전트도 “왜인지 모르겠는데 박주영이 자신의 계약기간을 뚜렷하게 밝히지 않고 있다”고 했다. 박주영을 둘러싼 모든 상황은 그야말로 미스터리다.
# 대표팀도 딜레마
올림픽 대표팀에서 활약한 박주영.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내년 브라질월드컵을 준비하는 축구 국가대표팀 홍명보호의 고민도 여기서 기인한다. 각급 국제 대회에서 박주영은 좋은 활약을 펼쳐왔다. 월드컵과 올림픽 등 메이저 대회를 통해 최고 선수로 떠올랐다. 최근 홍명보호가 처한 가장 큰 고민 중 하나가 바로 스트라이커, 특히 원톱의 부재였다.
홍명보 감독은 아이티-크로아티아로 이어진 9월 A매치 2연전을 마치자마자 추석 연휴도 포기한 채 곧장 영국 출장길에 올랐다. 여기서 잉글랜드 무대에서 뛰는 태극전사들을 두루 만나 면담했다고 한다. 하지만 박주영만큼은 뚜렷한 해법을 찾지 못했다. 마음 같아선 브라질-말리로 이어지는 10월 A매치를 통해 대표팀 엔트리에 발탁한 뒤 시험가동하고 싶지만 이는 처음 홍 감독이 공표한 발언과 위배되는 모습이다.
대표팀 사령탑 부임 직후 홍 감독은 “소속 팀에서의 활약이 대표팀 선발 제1원칙”이라고 강조했다. 공인으로서, 그것도 대표팀 수장으로서 자신이 내뱉은 말을 쉽게 뒤집기는 굉장히 어렵다.
만약 박주영이 아스널에서 계속 출전 기회를 받지 못하고도 대표팀에 선발될 경우, 결국 홍 감독도 이름값에 따라 대표 선수를 뽑는다는 부정적인 이야기까지 흘러나올 수 있어 부담이 크다. 이는 추후 선수 선발 때마다 계속 거론될 게 뻔하다. 지금까지 뽑힌 제자들, 또 앞으로 발탁될 태극전사들에게 나쁜 선례로 작용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홍 감독으로서는 ‘박주영을 뽑을 수밖에 없는’ 확실한 명분이 필요하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