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근들은 이미 건배…확실히 군불 때는 중
안철수 무소속 의원이 8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손학규 민주당 상임고문의 싱크탱크 동아시아미래재단 창립 7주년 기념식에 참석했다. 연합뉴스
지난 8일 오후 여의도 국회 헌정기념관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취재진이 몰렸다. 전날 10월 재·보선 불출마를 선언한 손학규 고문의 싱크탱크 동아시아미래연구소 7주년 창립 기념행사에 안철수 의원이 참석하기로 예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야권 잠룡으로 분류될 뿐 아니라 향후 정치적 스탠스가 베일에 싸여있다는 공통점을 가진 손 고문과 안 의원 만남에 스포트라이트가 쏠렸던 것이다.
반면 손 고문을 재·보선에 출마시키기 위해 삼고초려를 마다하지 않았던 김한길 민주당 대표는 개인 일정을 이유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8일 손 고문과 안 의원의 만남을 지켜본 많은 정치권 관계자들은 “둘이 함께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이날 안 의원은 축사에서 “국가가 나아가야 할 방향, 정치 지도자들의 리더십과 같은 부분을 손 고문이 독일에서 직접 보고 왔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런 지혜들 많이 나눠 주시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손 고문이 신당에 합류해주기를 바라는 안 의원 심정을 엿볼 수 있는 발언이다.
이에 화답하듯 손 고문 역시 “자기의 지지기반에 집착해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는 폐쇄정치를 과감히 던져버려야 한다”며 통합을 통한 외연 확장을 예고했다. 정치권에서는 손 고문이 내비친 통합의 정치가 그동안 안 의원이 내세워 왔던 ‘새정치’와 그 궤를 같이한다는 분석을 하고 있다.
일각에선 손 고문이 민주당의 줄기찬 요청에도 불구하고 재·보선에 출마하지 않기로 결심한 배경을 안 의원에서 찾기도 한다. 이재광 정치컨설턴트는 “손 고문은 새누리당 강세 지역인 화성갑에서 이기기가 어렵다는 점을 우선적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사전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서청원 전 대표에 큰 차이로 뒤처진 것으로 나왔다고 한다. 손 고문 주변에서 출마를 다 말렸던 것으로 안다”며 “오랜만에 복귀한 손 고문이 패한다면 재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관측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손 고문 스타일상 단지 그것 때문에 출마를 접었을 것으로 보진 않는다”며 “안 의원을 포함해 뭔가 다른 정치적 구상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보탰다. 손 고문의 정치 스케줄이 민주당보다는 안 의원에 맞춰져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둘의 연대설은 이번에 처음 불거진 이슈는 아니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도 손 고문이 안 의원을 공개 지지할 것이란 전망이 끊이질 않았지만 이뤄지진 않았다. 그러나 당시 손 고문을 따르던 상당수 측근이 안철수 캠프에 몸담으면서 사실상 한 배를 탄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안 의원은 단일화 협상에서 문재인 민주당 의원에게 후보직을 양보한 직후 손 고문 요청으로 비공개 회동을 가지기도 했다.
지난 8월 안 의원은 손 고문이 형수상을 당해 잠시 귀국했을 때에도 문상을 갔다. 또 손 고문이 독일 체류를 마치고 귀국하고서도 둘은 여러 차례 직접 통화하며 안부를 물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가운데 손 고문이 재·보선 불출마 뜻을 밝힌 직후 가진 첫 공식 일정에 안 의원이 참석하자 연대설이 재점화한 것이다.
연대설에 대해 양측 기류엔 미묘한 차이가 감지되고 있다. 우선 손 고문 측은 강하게 고개를 젓고 있다. ‘손학규계’로 분류되는 이낙연 민주당 의원은 한 인터뷰에서 “현재로선 연대 가능성이 있다고 말할 근거가 아무것도 없다”고 일축했다. 최원식 민주당 전략기획위원장도 손 고문의 재·보선 불출마에 안 의원이 영향을 미쳤다는 소문에 대해 “손 고문의 대선 캠프 비서실장을 해서 깊게 알고 있는데 전혀 그런 것은 없었다”고 부인했다. 이는 손 고문이 민주당의 SOS를 거절한 마당에 안 의원과 사전에 교감이 있었거나 또는 연대를 모색하고 있다는 것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그 ‘역풍’을 우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안 의원 측 역시 비슷한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그 여지는 남겨두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 대선에서 안철수 캠프에 합류한 송호창 무소속 의원은 연대와 관련된 질문에 “민주당은 민주당대로, 민주당 바깥에서 야권에서의 새로운 대안 정치세력화를 하고 있는 데는 그 나름대로 각자 국민들의 기대를 받고 있는 것이 있기 때문에 각자의 몫이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며 거리를 뒀다.
연대설에 대해 일단 양측은 부정적인 견해를 내놓고 있지만 정치권에선 그 실현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정치 세력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안 의원으로서는 야권 내 일정 지분을 확보하고 있는 손 고문 역할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다. 지난 대선 당시 친노계가 밀었던 문재인 의원에게 당내 경선에서 패한 손 고문 입장에서도 차기를 위해서는 입지가 여의치 않은 민주당보다는 새로운 둥지가 필요한 상황이다.
윤호석 정치컨설턴트는 “한 번 탈당을 했던 손 고문이 민주당을 떠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이 제1야당으로서의 구실을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안철수 신당 또는 제3의 세력이라면 손 고문 거취의 폭은 넓어질 수 있다”면서 “낮은 지지율 극복이 관건인 손 고문에게 안 의원의 대중성은 상당한 매력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치권이 ‘손학규-안철수 연대’의 성사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것 역시 이처럼 양 진영의 이해득실이 맞아떨어지고 있는 까닭에서다. 취재 과정에서 접한 손 고문과 안 의원 측 관계자들도 연대설에 긍정적인 제스처를 취했다. 실제로 연대를 위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정황도 포착됐다. 이달 초 인사동의 한 음식점에서는 손 고문과 안 의원 측근들이 참석한 술자리가 벌어졌다. 야권의 한 중진급 정치인이 마련한 자리였다. 여기에 참석했던 한 인사는 “대부분 손 고문과 인연이 있던 사람들이다. 손 고문 귀국을 기념해 만났고, 가벼운 대화를 나눴다”면서 “자연스레 손 고문과 안 의원의 연대가 화제에 올랐는데 그 필요성에 대해선 모두 공감했다. (연대를 위한) 다양한 방안들을 주고받았다”고 전했다.
물론 둘의 연대가 성사되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각자 안고 있는 문제점도 그렇거니와 연대의 전제조건인 역할 설정에서 충돌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사상 가장 대표적인 연대로 꼽히는 ‘DJP(김대중-김종필)연합’의 사례에서 보듯이 대선 승리를 위해선 분명한 역할의 구분이 있어야 한다.
설령 연대가 이뤄지더라도 지난 2002년 ‘노무현-정몽준’처럼 마지막에 파기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다. 2017년 대선에서 70세가 되는 손 고문은 이번이 사실상 마지막 도전이나 다름없다. 지난 대선에서 양보했던 안 의원 역시 ‘삼수’를 택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이는 손 고문과 안 의원의 연대가 비현실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근거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손 고문의 한 오랜 측근은 “현 시점에서 연대를 꺼내는 것은 시기상조임엔 분명하다. 손 고문은 당분간 정책 개발에 힘쓸 것이다. 우리는 모든 세력과 함께할 수 있다. 안 의원도 그 중 한 명”이라면서 “안 의원과 함께 가면 엄청난 시너지 효과가 날 것으로 보고 있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느냐. 그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최선의 방법을 찾도록 안 의원 측과 머리를 맞댈 것”이라고 털어놨다.
안 의원 측근 역시 “손 고문과 안 의원이 새로운 정치 세력 결집이라는 대의에는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누가 대선후보가 되느냐는) 나중 문제”라며 “정치 기반이 부족한 안 의원에게 손 고문은 영입대상 영순위”라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