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찰 통과해야 한 자리’ 여권도 초긴장
윤창중 사태 이후 박 대통령 해외순방길에는 청와대 공직기강팀이 반드시 동행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6일 박 대통령이 제21차 APEC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인도네시아 공항에 도착한 모습. 사진제공=청와대
최근 공직기강팀에 힘이 실리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대외적으로 ‘윤창중 파문’ 이후 박근혜 대통령 해외순방 업무에까지 관여하게 되면서다. 내부적으로는 최근 공공기관 대규모 인사를 앞두고 공직기강팀 인원을 77명까지 확대한 것이 주목을 받았다. 주로 검찰 경찰 국정원 국세청 등 주요 사정기관 출신 인사들이 파견 나온 형태다. 공직기강팀 인력 증원에 대해 청와대는 지난 8월부터 중단했던 공공기관 인사를 재개하면서 후보 추천수를 3배수에서 6배수로 늘려 검증을 대폭 강화하면서 공직기강팀 업무량이 늘어난 데 따른 것이라고 설명한다.
내부적으로 더 확실한 입지가 굳어진 계기는 지난 8월 초 곽상도 전 민정수석이 경질될 당시 조응천 공직기강비서관의 반응이었다고 한다. 곽 전 수석이 전격 경질된 이유에 관해서는 지금도 의견이 분분한 상태지만 검찰을 효과적으로 제어하지 못했다는 설과 함께 민정팀과 공직기강팀 사이 갈등을 극복하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돌았다. 요는 공직기강팀이 위상 확대를 꾀하는 과정에서 조응천 공직기강비서관과 이중희 민정비서관이 인사검증시스템 구축 및 사정 업무 영역 등을 놓고 불협화음을 냈다는 것이다.
때문에 곽상도 전 민정수석이 청와대를 떠날 당시 두 비서관 역시 함께 옷을 벗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조 비서관은 측근들과 몇몇 청와대 출입기자들에게 “민정수석 바뀌었다고 나도 바뀐다는 기사가 나오는데 나는 안 바뀔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고 한다. 이와 함께 곽 전 수석 후임으로 홍경식 수석이 오면서 “(공직기강팀에) 조사권은 없지만 감찰권과 집행권이 있으니 이를 근거로 처벌을 강화하면 위상도 올라가고 좋지 않겠느냐”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한다.
청와대 안팎에서는 조 비서관은 박근혜 정부 5년 내내 함께할 인물이라는 기류가 강하다. 조응천 공직기강비서관과 박근혜 대통령 일가의 남다른 인연 때문이다. 조 비서관은 서울남부지검 특수부 검사로 있을 당시 박 대통령의 남동생 박지만 EG 회장과 각별한 인연을 맺었다. 지난 1993년 마약 상습투약혐의로 구속 수감된 박지만 회장에 대해 법원에 치료감호를 요청한 사람이 바로 조응천 검사인 까닭에서다. 박지만 회장의 치료감호가 받아들여지는 과정에서 두 사람이 친분을 유지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뿐만 아니라 조 비서관은 박근혜 대통령의 싱크탱크 역할을 한 국가미래연구원 출신이기도 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여권 관계자는 “공직기강팀 주요 업무 가운데 하나가 대통령 친인척 관리인데, 이를 담당하는 비서관에 자신들의 최측근을 앉힌 것이 적절한지 의문이 있다”며 “민정팀 지휘를 받아야 하는 사람이 너무 힘이 세니 거꾸로 가는 분위기가 나오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조응천 비서관
부쩍 감찰 횟수가 잦아진 것은 물론 그 범위가 과거에는 요식 행위에 그쳤던 고위공직자들의 고등·대학 동창 자녀들에게까지 확대됐다. 실제 지난 8월 공직기강팀은 기상청 산하 한 공공기관의 임원이 2년간 계약 행정직 공개채용 과정에서 자신의 친척과 고교·대학 동창 자녀 8명에게 특혜를 줬다는 의혹을 접수 받아 감찰에 들어간 결과, 사실로 밝혀졌고 결국 관련자들 사표를 받아냈다.
이러한 공직기강팀 위력은 ‘아군’마저도 긴장케 만들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내심 부도덕하거나 배신할 만한 친박계 인사들을 솎아내는 데 공직기강팀이 적극 활용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것이다. 실제 공직 진출에 기대를 걸고 있는 일부 친박계 인사들은 “공직기강팀 감찰만 통과하면 무난히 한 자리 차지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공직기강팀이 후보자를 검증하는 과정에서 친박계 인사를 효과적으로 검증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최근 사례만 봐도 공공기관에 친박계 인사들이 임명되는 사례가 늘고 있는데, 지난 9월 한국교직원공제회 이사장에는 친박연대 공동대표를 지낸 이규택 전 의원이, 한국철도공사 사장에는 박근혜 대선캠프 선대위에서 활동한 최연혜 전 새누리당 당협위원장이,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에는 영남대 출신 박보환 전 의원이 임명됐다. 박근혜 캠프 행복한농어촌추진단장을 맡았던 이상무 한국농어촌공사 사장은 사내에 ‘취임에 따른 타임 스케줄’ 문건이 나돌기도 했다.
조만간 인선을 앞둔 기관 가운데도 한국마사회는 친박 중진인 K 전 의원이, 한국지역난방공사에는 TK지역 또 다른 K 전 의원이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는 상황이다. 한 정치권 인사는 “실제 공직기강팀에서 누구를 선택하라거나 하지 말라거나 실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다만 보고 과정에서 해당 후보에 관해 적합·부적합 같은 소견을 첨부하는 수준은 가능할 것”이라고 전했다.
앞서의 여권 관계자는 “인사는 인사권자 고유의 권한이다. 청와대 인사추천위원회가 절차에 따라 공공기관 인선 등을 총괄하고 있다”라며 “(공직기강팀도) 절차대로 잘하고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