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꾸라지 회장님들 국감 시즌엔 ‘출장중’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이번 국정감사 증인이나 참고인으로 채택된 기업인은 모두 193명이다. 이는 2011년 80명, 2012년 164명에 비해 크게 늘어난 수치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 등 오너 기업인들도 줄줄이 증인으로 채택됐다. 이처럼 기업인에 대한 국정감사 증인 채택이 늘어나자 재계는 “국정감사가 아닌 기업감사”라고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증인으로 채택된 재계 인사들이 해외 출장 등을 핑계로 국정감사에 불출석한 일이 많았다는 점에서 매를 자초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지난 2010년 국정감사에서 정무위 등 3개 상임위가 진행한 국정감사에 출석하지 않은 증인과 참고인은 모두 8명. 이 가운데 재계 인사는 2명으로 25.0%였다. 그런데 이러한 재계 불출석 비율은 경제민주화에 대한 요구가 제기되기 시작한 2011년과 2012년에 급격히 올라갔다.
2011년에는 3개 상임위의 국정감사에 불출석한 증인 32명 가운데 무려 21명(65.6%)이 재계 인사였다. 미얀마 해외 자원개발 특혜 의혹을 불러일으켰던 KMDC의 이영수 회장, 불공정 하도급 문제로 증인 요청을 받은 신상호 STX조선해양 사장, 대중소기업 상생과 관련한 증인이었던 김대훈 LG CNS 대표이사, 정읍 폐비닐처리시설 부실시공 등으로 참고인으로 지명된 윤석경 SK건설 대표 이사 등이 무더기로 국정감사에 나오지 않았다.
국내 기업인들이 이처럼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데 영향을 받았는지 제임스 패트릭 딕슨 비자코리아 사장 역시 국정감사에 나오지 않았다. 딕슨 사장은 국제브랜드카드의 불공정 수수료 수취문제 등과 관련해 국회 정무위의 금융감독원 국정감사의 증인으로 채택됐었다.
이러한 사정은 2012년에도 반복됐다. 이 해 3개 상임위 국정감사에 출석하지 않은 증인 34명 가운데 52.9%에 해당하는 18명이 재계 인사였다. 특히 대중소기업 상생, 대기업 골목상권 침해, 4대강 공사 담합 등 각종 재계 이슈가 집중됐던 정무위의 경우 불출석 증인 14명 중 12명이 재계 인사들이었다.
대형 유통업체의 골목상권 침해와 관련해 증인 요청을 받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정지선 현대백화점 회장,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 등 오너 기업인들은 모조리 해외 출장을 이유로 국정감사에 나타나지 않았다. 부당내부거래로 증인 요청을 받은 주진우 사조그룹 회장과 웅진홀딩스 고의부도 등과 관련해 증인으로 채택된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 등도 국감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처럼 재계는 국감에 그다지 협조적이지 않으면서 증인 채택에 대해서는 불만을 표시하고 있는 것이다. 국회는 국정감사 때 행정부가 진행하는 정책과 입법부가 만드는 법률과 관련해 누구든 증인으로 채택할 수 있고, 증인으로 채택된 이들은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출석해야 하는 의무(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 10조 4항)가 있기 때문에 재계의 불만은 말이 안 된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지난해 국정감사 당시 재계, 특히 오너가 지배하는 대기업들이 행한 일감 몰아주기나 골목상권 침해 등은 사회적으로 논란이 컸던 사안이고, 이에 대한 법률 및 행정적 규제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이러한 불법성과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해서는 오너 기업인들의 증인 참석이 필요했는데 대부분 해외출장을 이유로 국정감사에 나오지 않았다”며 “다른 어떤 분야보다 많이 불출석하면서 국정감사 증인 채택에 대한 불만만 높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인사는 “리먼브러더스 사태 때 골드만삭스나 JP모건 등 금융회사 최고경영자들이 대거 의회 청문회 증인으로 나왔고, GM 등 미국 3대 자동차 회사 최고경영자들도 구제안과 관련한 의회 청문회에 출석했다. 심지어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전 회장은 1998년 의회 나와서 시장 독점과 관련한 추궁을 당했다”고 말했다. JTBC 여론조사에서도 기업인의 국정감사 증인 채택에 대해 65.2%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이러한 여론을 반영하듯 기업인들의 국정감사 증인 불출석에 대해 법원도 엄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법원은 지난해 국정감사에 불출석한 신동빈 회장과 정용진 부회장, 정지선 회장, 정유경 부사장에 대해 각각 1000만∼1500만 원의 벌금을 선고하면서 “같은 범행을 반복하면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국정감사 증인 채택에 대한 재계의 불만은 어불성설이라고 판결을 내린 것이다.
이준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