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아이템이 뭐기에… 사람 목숨도 하찮았다
인터넷 게임을 위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사기결혼과 살인을 저지른 20대가 최근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문제는 게임에 빠져들수록 돈이 필요했다는 점이다. 그가 즐겨하던 게임은 엔씨소프트의 대표 온라인 게임 ‘리니지’였는데 플레이 자체는 무료이지만 캐릭터를 꾸미는 데 사용되는 아이템은 유료로 판매되기에 현금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고수’들도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 겨우 얻을 수 있는 희귀 아이템을 얻기 위해서는 일명 ‘현질(현금으로 게임 아이템을 사는 행위)’도 필수였다.
특히 리니지는 현질이 아니면 고수 취급을 받을 수 없는 대표적인 게임이라 유 씨의 마음은 조급해져만 갔다. 게임 중독이 심해지면서 아이템에 대한 갈망은 더욱 커졌는데 처음엔 10만 원 단위로 결제하던 것이 어느새 수백만 원 단위로 커졌다. 집을 팔아야 구입할 수 있다는 뜻에서 ‘집판검’이라 불리는 캐릭터가 사용하는 검 하나를 구입하는데도 수천만 원이 필요했으니 언제나 돈은 부족했다.
간간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자신도 게임 아이템을 팔아봤지만 돈은 턱없이 부족했다. 캐릭터가 화려한 모습으로 온라인 세계를 휘젓고 다닐수록 유 씨의 삶은 더욱 궁핍해져만 갔다. 결국 한계에 다다른 유 씨는 급기야 사기극을 계획하기에 이른다. 인터넷 카페에서 의도적으로 여성에 접근해 돈을 뜯어낼 궁리를 한 것이다.
게임으로 다져진 채팅의 기술 때문일까. 유 씨는 마치 자신이 게임 속 캐릭터가 된 것처럼 재력가 행세를 하면서 화려한 언변으로 여성들을 사로잡았다. 마침내 지난해 11월 유 씨는 세 살 연상의 A 씨를 ‘사냥감’으로 결정하고 본격적인 작업에 돌입했다. 삼성전자에 근무하는 능력 있는 청년으로 변신한 유 씨는 비교적 쉽게 A 씨와 친해질 수 있었다. 하루 종일 게임에 빠져 사느라 제대로 연락을 하지 못해도 “원래 삼성에 다니면 바쁘다”라는 말 한마디면 충분했다.
불행하게도 달콤한 결혼생활을 꿈꾸던 A 씨의 환상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결혼을 약속하자마자 유 씨의 태도가 돌변한 것. 유 씨는 “아파트에 채워 넣을 가전제품이 필요하다” “예단비를 가져와라” 등의 명목으로 계속 돈을 요구했는데 A 씨는 으레 있는 결혼 진행 과정으로 생각하고 순순히 6000만 원을 건넸다.
그러나 거액을 손에 쥔 유 씨는 다시 게임에 빠져들어 순식간에 돈을 탕진했다. 돈을 받아간 이후에도 좀처럼 결혼이 진행되지 않는데 의심을 품은 A 씨는 그제야 자신이 사기결혼을 당할 뻔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유 씨에게 돈을 돌려달라며 이별을 통보했다. 인생 공부치고는 꽤 비싼 수업료를 지불한 셈이었지만 그래도 사기결혼이라는 최악의 상황은 면했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있을 무렵 더 큰 불행이 찾아왔다.
돈을 돌려달라는 말에 격분한 유 씨가 급기야 A 씨를 살해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유 씨는 지난 7월 10일 오후 11시경 경기도 수원시에 거주하던 A 씨의 집 앞으로 찾아가 미리 준비한 흉기로 가슴 등을 수차례 찌르는 잔인한 살인극을 벌였다.
유 씨의 엽기행각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피를 흘리며 쓰러진 A 씨의 소지품까지 뒤져 현금카드를 훔쳐간 것. 곧장 현금지급기로 달려간 유 씨는 48만 원을 인출해 또 다시 컴퓨터 앞에 앉기까지 했다. 사람을 죽이고도 게임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유 씨는 결국 살인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됐으며 최근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