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률 98%…‘확실한 끝’ 원하는 이들 몰린다
2005년 순찰대원들이 목숨을 끊으려 금문교 난간에 서있던 케빈 버시아를 끌어올리는 모습.
이렇게 최근 들어 부쩍 자살자가 증가한 데에는 사실 나름의 이유가 있다. 가장 큰 이유는 금문교 통행료 징수가 전면 자동화됐기 때문이다. 과거 자살을 기도하는 사람들이 그나마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것은 지나가던 자동차 운전자들의 신고 덕분이었다. 자살자들을 목격한 운전자들이 요금 징수원에게 이 사실을 알리면 징수원들이 곧바로 경찰에 신고를 하는 식으로 그나마 자살을 방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올해 들어 통행료 징수가 전자동화되면서 이제는 그런 식의 행운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됐다.
사실 금문교에서 자살을 시도할 경우 이렇게 사전에 저지를 당하지 않는 한 목숨을 건질 확률은 지극히 낮다. 일단 뛰어내리면 사망할 확률은 98%다. 실제 지금까지 금문교에서 몸을 던졌다가 기적적으로 목숨을 구한 사람들은 34명에 불과했다.
금문교 상판에서 수면까지의 높이는 75m며, 바다로 떨어지는 데 걸리는 시간은 4초에 불과하다. 그리고 시속 120㎞의 속도로 추락하기 때문에 뛰어내리는 사람들 대부분은 수면과 충돌할 때 발생하는 외상으로 즉사하게 된다. 이 가운데 5% 정도는 처음 수면과 충돌한 후에도 목숨이 끊어지지 않지만 그렇다 해도 대개는 익사하거나 저체온증으로 결국 사망하게 된다.
기적처럼 목숨을 건진 2%의 경우는 발이 먼저 물에 닿았거나, 혹은 비스듬한 각도로 추락한 경우가 해당한다. 이런 경우 골절상을 입거나 내상을 입는 경우가 많다. 가령 2011년 자살을 시도했던 한 17세 청년은 기적처럼 살아났지만 꼬리뼈가 부러지고 폐에 구멍이 발생하는 중상을 입었는가 하면, 1979년 목숨을 끊으려 했던 한 청년은 투신 후 척추뼈만 부러졌을 뿐 목숨이 끊어지지 않자 해변까지 헤엄친 후 직접 차를 몰고 병원으로 달려가 목숨을 건지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처럼 금문교가 자살을 기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명소(?)가 된 이유는 뭘까. 먼저 ‘금문교에서 뛰어내리면 빨리, 그리고 확실하게 목숨을 끊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 실제 금문교에서 뛰어내릴 경우 사망할 확률이 98%란 점이 자살을 기도하는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뛰어난 접근성 때문이다. 금문교 다리 양쪽 끝에는 주차장이 있기 때문에 누구나 차를 몰고 와 세운 다음 쉽게 다리로 올라갈 수 있다. 심심치 않게 주차장에서 버려진 렌터카가 발견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난간의 높이 역시 자살을 부추기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금문교의 난간 높이는 1.2m밖에 안 되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쉽게 난간 위로 올라갈 수 있다. 지금까지 최연소 자살자로 기록된 5세 소녀가 금문교에서 뛰어내릴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에 난간을 높이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지만 현재 안전상의 이유로 이런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난간이 더 높아질 경우 시속 160㎞로 부는 강풍을 견딜 수 없게 된다는 것이 이유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샌프란시스코 당국은 ‘자살 다리’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갖은 노력을 벌이고 있는 상태. 이를테면 다리 위에 자살 방지용 긴급 직통전화를 설치해 누구든 자살 기도자들을 목격하면 신고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 놓았는가 하면, 밤에는 보행자들의 출입을 전면 금지해 혹시 발생할지 모르는 사고에 대비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 불리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가 올해로 개통 76주년이 됐다. 1987년 5월 24일 개통 50주년을 사흘 앞두고 열린 기념행사에 참석한 수십만 명의 인파. AP/연합뉴스
그나마 현재로서 가장 효과적으로 자살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하면 다리 위를 순찰하는 순찰대 병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캘리포니아 고속도로 순찰대, 연방공원경찰, 금문교 경비원 등으로 이뤄진 순찰대의 눈부신 활약상은 덜 알려져서 그렇지 그야말로 놀랍기 그지없다. 지난해 이들을 통해 목숨을 건진 사람 수만 86명이었을 정도.
자전거, 스쿠터, 오토바이를 타고 주기적으로 다리 위를 순찰하는 이들의 주된 임무는 보행자들을 유심히 살펴보는 것이다. 이들 중에 슬퍼 보이거나, 이유 없이 서성이고 있거나, 혹은 카메라 없이 난간에 기대어 바다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사람들이 요주의 대상이다.
실제 자살을 기도하는 사람을 발견했을 때에는 조심히 다가가 저마다 터득한 ‘설득의 기술’을 발휘한다. 리사 로카티 경관은 “자살하지 않도록 사람을 설득하는 데에는 정해진 대본이란 게 없다. 경관들 저마다 나름의 노하우가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한 경관의 설득이 먹히지 않을 경우에는 곧바로 다른 경관이 투입된다.
이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활약을 하고 있는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케빈 브릭스 경사를 들 수 있다. ‘금문교의 수호자’라고 불리는 브릭스 경사가 1994년부터 지금까지 목숨을 구해준 사람만 무려 200명가량. 그리고 지금까지 그가 설득을 시도했다가 잃은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브릭스 경사는 “자살하러 다리로 올라오는 사람들 가운데 정말 죽고 싶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한다.
상대를 설득하는 방법에 대해서 그는 “먼저 몇 발짝 떨어진 곳까지 다가가서는 내가 누구인지 침착하게 소개한다. 그리고 상대의 이름을 알아낸 다음 이름을 불러준다. 그리고 자녀가 있는지를 알아내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또한 가능한 상대의 시선이 위를 향하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다. 브릭스 경사는 “나는 그들이 어떤 사연으로 여기까지 올라오게 됐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노력한다. 만일 누군가 ‘전 내일을 살 아무런 이유가 없어요’라고 말하면 나는 이렇게 말한다. ‘좋아요. 그럼 하나 만들어봅시다’” 라고 말했다.
2005년 브릭스 경사가 금문교 난간에 위태롭게 서있던 케빈 버시아를 설득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은 그야말로 감동 그 자체였다. 당시 실직을 당한 후 사는 게 막막했던 버시아는 우울증을 견디다 못해 금문교로 올라갔고, 신고를 받고 출동한 브릭스 경사는 한 시간가량 버시아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를 설득했다. 당시 브릭스 경사는 “당신이 지금 엄청난 고통 속에 있다는 거 압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지금 내가 다 들어드릴테니 하세요”라고 말했는가 하면, “당신이 왜 여기에 있는지 이해합니다. 하지만 다른 방법도 있어요”라고 재차 그를 설득했다.
그리고 결국 그 60분은 앞으로 버시아의 평생을 바꾼 위대한 순간이 됐다. 결국 브릭스를 믿기로 결심한 버시아는 다리 위로 올라왔고, 그 후 결혼을 해서 두 자녀의 아빠가 됐으며, 일정한 직업도 가지게 됐다. 당시의 아찔했던 순간을 회상하면서 버시아는 이렇게 말했다. “브릭스 경사님은 우리 모두가 어떤 목적을 갖고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셨다. 그리고 인생이란 그 목적을 찾아가는 여정이라는 것 또한 알게 해주셨다. 나는 내 두 번째 인생 모두를 경사님에게 빚지고 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