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촬영 전면 지원” 관광청 달콤한 유혹도…
해외 촬영 원조격인 예능 <정글의 법칙>.
<정글의 법칙>이 해외로 가는 예능의 초석을 닦았다면 케이블채널 tvN <꽃보다 할배>는 정점을 찍었다. 이순재 신구 박근형 백일섭 등 평균 나이 70세가 넘는 황혼 배우들의 여행기를 담은 <꽃보다 할배>는 프랑스 스위스 대만 등을 두루 거쳤다.
나영석 PD가 목적지를 정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출연자가 기쁘게 즐길 수 있는 곳”을 행선지를 정하는 제1 원칙으로 삼는다는 나 PD는 “할아버지들은 프랑스와 스위스의 거대한 성당과 역사적 건축물을 보며 감동을 받을 거라 판단했다. 여성들이 출연하는 <여배우 특집>을 준비하면서는 낭만적인 분위기를 우선순위로 삼았다. 서유럽 일대와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는 동유럽의 정취를 소개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처럼 뚜렷한 목적의식 없이 해외촬영을 고집했다가는 소득 없이 엄청난 제작비만 쓰는 꼴이 되고 만다. 방송인 강호동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복귀작이었던 SBS <맨발의 친구들>은 지난 4월 첫 방송되며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해외 로케이션 촬영을 다녀왔다. 하지만 저조한 시청률로 전전긍긍하다 한 달여 만에 국내 촬영으로 전환됐다. 제작진은 “국·내외 촬영을 병행하는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현재 <맨발의 친구들>은 동료 연예인들을 찾아다니며 ‘집밥’을 먹는 콘셉트로 바뀌었다. 분명 해외 프로젝트는 실패했다.
MBC가 지난 6월 선보인 10부작 <파이널 어드벤처> 역시 태국 올 로케이션 촬영으로 진행됐지만 2%대라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았다. 한 방송 관계자는 “해외 촬영에 나선다는 것만으로도 화제를 모으던 시대는 지났다. 해외여행이 자유로운 요즘, 해외의 모습을 보기 위해 프로그램을 선택하는 시청자는 드물다. 차별화된 콘셉트 없이는 애먼 제작비만 펑펑 쓰다가 돌아올 뿐”이라고 꼬집었다.
해외 로케이션 촬영을 했지만 저조한 성적을 거둔 <맨발의 친구들>(위)과 <파이널 어드벤처>(아래).
실제로 우디 앨런 감독은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성공으로 파리 관광객이 증가하자 로마 관광청의 요청과 지원을 받아 영화 <로마 위드 러브>를 촬영하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꽃보다 할배>가 큰 인기를 얻은 후 실제로 “촬영을 전면 지원하겠다”며 달콤한 제안을 해온 각국 관광청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나영석 PD는 프로그램의 중립성을 지키기 위해 이런 제안을 고사했다.
나 PD는 “대만에 갈 때도 행선지를 먼저 정한 후 관광청을 통해 촬영 허가를 받는 정도였다. 관광청에서 먼저 제안이 들어와 부대비용 등을 협찬받을 거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나영석 PD는 KBS 재직 시절 ‘1박2일’을 국민 예능 반열에 올려놓은 주인공이다. 대한민국의 숨은 명소를 소개하며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잡는 데 성공했다. 그런 그가 해외로 눈을 돌린 이유는 무엇일까.
나 PD는 “‘1박2일’뿐만 아니라 여러 프로그램에서 국내 곳곳을 소개하고 있다. 때문에 여행이라는 소재를 사용하되 변화를 주고 싶었다. 그래서 해외 배낭여행을 떠올렸다”고 설명했다.
역으로 인기 예능프로그램 제작진을 사칭한 이들의 사기 주의보도 발령됐다. ‘1박2일’이 인기를 끌자 특정 지방자치단체 측에 ‘1박2일’ 촬영을 약속하는 대가로 수수료 1억 원을 요구하는 사기꾼이 등장하기도 했다. ‘1박2일’ 촬영지로 방송을 타면 관광객이 늘어 매출이 상승한다는 것을 노린 수법이다.
예능프로그램 역시 한류 바람을 타고 향후 해외 진출은 더욱 활발해질 전망이다. SBS ‘런닝맨’은 마카오, 베트남 등에서 촬영해 화제를 모았다. 때문에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항공사와 여행사의 섭외 제안이 쇄도하고 있다. 실제로 외부 협찬을 받아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외주 제작사도 있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은 남아 있다. 게다가 해외에서 촬영되는 예능프로그램의 경우 항공료 숙박비 현지체류비 등이 늘어 제작비가 상승하는 만큼 사기꾼들이 요구하는 수수료의 단위도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tvN 관계자는 “아직 배낭여행 프로젝트와 관련해 제작진을 사칭한 피해 사례는 접수되지 않았다. 하지만 여러 관광청이 직접 섭외를 요청하고 있다는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이와 관련한 제안이 온다면 해당 방송사와 제작진을 통해 재차 확인 작업을 거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안진용 스포츠한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