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검 형사9부(이인규 부장검사) 산하에 신설된 금융증권범죄분석실은 금융, 증권 범죄 척결을 위한 ‘기동타격대’. 금융증권범죄분석실은 출범과 함께 현재 접수된 첩보 1건을 포함해 10여건의 범죄 의혹에 대해 집중 수사를 전개할 예정이어서 조만간 금융, 증권 관련 대형 사건이 터질 것으로 보인다.
▲ 금융증권범죄분석실의 분석요원들이 컴퓨터를 통해 증시 종목들의 주가추이를 실시간으로 점검하고 있다.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당시 불법대출과 관련한 수사가 겉잡을 수 없이 확대되면서 이경자 부회장과 정현준 한국디지털라인 사장의 손발 역할을 한 유조웅 전 동방금고 대표(59)가 정•관계 로비의 핵심인물로 부각됐지만, 그는 금감원의 고발을 하루 앞둔 시점에 기밀 서류를 모두 빼돌리고 홀연히 미국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결국 유 전 대표가 사라짐에 따라 이 사건은 수많은 의혹만 남긴 채 마무리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주가조작 등 금융증권 관련범죄의 대부분은 증권거래소 등이 1차적으로 감리를 맡고 금감원에서 2차 조사를 벌인 뒤 최종적으로 검찰에 고발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 과정이 대개 4∼5개월씩 걸리다보니 주요 혐의자가 상황에 따라 도주하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증권거래소나 금감원 등 금융감독 기관의 경우 혐의자를 강제로 부르거나 출국금지 조치할 수 있는 권한이 없기 때문이었다. ‘동방금고 불법대출 사건’ 역시 유 전 대표를 금감원 검사 단계에서부터 출국금지를 통해 묶어놓았더라면 이 사건은 또다른 국면으로 접어들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지난 14일 서울지검 7층 719호에 새롭게 자리를 마련한 범죄분석실은 이런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출범했다. 물론 그동안 검찰에서도 금감원 고발 사건과 별도로 금융증권 범죄관련 첩보를 수집하거나 증권매매분석을 통해 자체적으로 사건을 해결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문인력 부족으로 대처가 미흡했던 것이 사실. 이번에 범죄분석실 신설과 함께 금감원 직원 모두 4명(기존에 파견된 2명 포함)을 지원받은 것도 그런 이유다. 그렇다면 앞으로 경제범죄를 다루며 검찰과 금감원이 구축해 온 ‘연합전선’은 폐기되는 것일까.
▲ 범죄분석실의 초대실장을 맡은 이인규 형사9부 장검사. | ||
금감원과 기존에 유지하고 있던 협조 체계는 그대로 가져가되 주요 혐의자들이 도피할 우려가 있거나 사회에 커다란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는 큰 사건은 검찰이 초동수사부터 직접 뛰어들겠다는 이야기다. 적어도 검찰이 전문 인력이 없어 접수되는 첩보를 금감원에 넘긴 뒤 다시 검찰로 고발해달라고 하는 과정에서의 문제는 줄일 수 있다는 것.
지난 14일 현판식을 가진 범죄분석실은 출범과 함께 이미 각 검사실에서 수사하고 있던 금융, 증권 관련 사건을 돕고 있다. 이 중에는 수사가 마무리되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만한 굵직한 사건도 포함돼 있다는 것이 검찰 관계자의 귀띔이다.
엠바고(보도제한)를 걸어놓고 막바지 수사에 한창인 ‘20개 기업 가상매출 사건’도 그 가운데 하나다. 국내에 투자한 재일교포 S씨가 연루된 이 사건은 조사 결과가 나올 경우 엄청난 파장을 불러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또 범죄분석실에서는 이와는 별도로 최근 접수된 첩보 한 건을 분석중이다. 부도처리된 기업을 한 업체가 인수하며 주식을 재상장시키는 과정에서 유명 외국계 업체를 끼고 주가를 띄운 사건이었다. 아직까지는 본격적인 수사에 앞서 첩보의 진위 여부를 분석하고 있는 단계다.
사건의 핵심 인물인 주식매매 브로커가 미국으로 도피해 있어 첩보가 사실로 드러난다 해도 사건 해결은 쉽지 않은 상태지만 범죄분석실에서 독자적으로 맡게 된 첫 번째 사건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범죄분석실의 초대 실장을 맡은 이인규 형사9부장검사는 “기존의 시스템은 신속함과 보안이 요구되는 수사에는 미흡함이 적지 않았다”며 “증권 거래에 대한 매매분석 능력을 갖춘 범죄분석실이 신설됨에 따라 검찰이 ‘시체’(묵은 범죄)가 아닌 살아 있는 범죄를 다룰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 부장검사는 또 “빠른 시간 안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한다는 부담감이 있지만, 금감원과 긴밀히 협조해 주가조작 등 증시 불공정행위를 철저히 적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