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왜 절 금수로 만드셨나요?’
이웃사람들에게도 조 씨는 그저 동네 아저씨였을 뿐 크게 눈에 띄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조 씨에게는 한 가지 비밀이 있었다. 밖에서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었지만 현관문만 열고 들어오면 가족들을 벌벌 떨게 하는 폭력가장이었던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조 씨는 밖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마땅히 풀 곳이 없자 눈앞에 보이는 아내를 상대로 분풀이를 했다. 폭언으로 시작된 분풀이는 시간이 갈수록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고, 결국엔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르게 됐다. 하루는 조 씨에게 맞아 아내의 치아가 부러지기도 했다. 그때마다 어렸던 아이들은 방구석에서 울음을 터뜨릴 뿐 작은 몸집으로 아버지를 말릴 엄두도 내지 못했다.
이런 조 씨의 폭력은 아이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그치지 않았다. 집안에서 통곡소리가 퍼질 때마다 아버지로부터 한 걸음씩 멀어진 아이들. 성인이 되자 자연스레 아버지로부터의 탈출을 꿈꿨다. 어머니가 마음에 걸리기도 했지만 우선 자신들부터 살아야겠다는 생각과 혹 부모만 남으면 서로 의지하고 살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감도 있었다.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자녀들의 독립 이후에도 조 씨의 태도는 전혀 변하지 않았던 것. 급기야 지난 9월엔 부부싸움 끝에 아내가 집을 나가는 일까지 벌어졌다. 조 씨를 피해 집을 나온 아내는 딸을 찾아갔고 둘의 동거는 한 달이나 지속됐다.
상황을 지켜보던 조 씨의 아들(32)은 어머니가 불쌍한 마음에 직접 중재에 나서기로 결심했다. 지난 19일 광주 서구 광천동의 한 아파트에서 홀로 지내고 있던 아버지 조 씨를 찾아간 아들은 부모의 화해를 위해 조심스럽게 대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조 씨는 아들의 말을 전혀 들으려 하지 않았다. 끝내 고성이 오갔고 아들의 뺨까지 후려친 조 씨. 더 이상 분을 참을 수 없었던 아들은 조 씨를 밀쳐 넘어뜨려버렸다. 성인이 된 아들의 힘은 생각보다 강했다. 힘없이 쓰러진 조 씨는 실신까지 했고 순간 이성을 잃은 아들은 아버지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아들은 뒤늦게 정신을 차렸지만 이미 조 씨의 목숨은 끊어진 뒤였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당황한 아들은 일단 시신을 여행용 가방에 담았다. 무게 때문에 쉽게 이동할 수 없어 친구에게 전활 걸어 “버려야 할 헌책이 있다”며 차를 태워 달라 부탁했다. 조 씨의 시신은 인근 야산에 버려져 낙엽으로 뒤덮였다.
광주의 한 법률사무소에서 직원으로 일하던 아들도 정상적으로 출근하며 아무렇지 않은 듯 시간을 보냈다. 며칠 뒤 친척들로부터 조 씨와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전화를 받고야 실종신고를 했을 뿐이었다.
이처럼 겉으로는 멀쩡하게 지내는 듯 보였던 아들은 사실 밤만 되면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매일 밤 조 씨가 꿈에 나타나 잠을 이룰 수 없었던 것. 자식 손에 죽은 게 억울했던 것인지 아니면 하루 빨리 자수해 아들의 죄책감을 덜어주고 싶었던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결국 아들은 범행 일주일이 되던 날 광주 서부경찰서를 찾아가 “아버지를 죽여 시신을 유기했다”며 자수를 선택했다. 아들은 “아버지가 꿈에 나왔다. 아버지 생각이 나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며 “무섭고 죄책감에 시달렸다.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경찰은 아들의 증언을 토대로 여행 가방 속에서 부패된 조 씨의 시신을 찾아냈고 이 소식은 가족들에게도 전해졌다. 조 씨의 사망소식도 충격이었지만 아들이자 오빠가 살인범이란 사실에 더 큰 절망감을 느낀 가족들. 이렇게 끝까지 조 씨는 가족들에게 비극적인 존재가 돼버렸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