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찬값 벌고자…’ 누가 돌을 던지랴
종묘공원에서 일명 ‘박카스 아줌마’가 노인과 대화를 시도하는 모습으로 김 할머니와는 무관하다. 구윤성 인턴기자
원래 이들이 주로 활동하는 곳은 종로 3가에 위치한 탑골공원이었다. 하지만 서울시의 ‘탑골공원 성역화 사업’ 이후 탑골공원은 ‘박카스 아줌마’가 잘 찾지 않는 장소가 됐다. 서울시의 ‘탑골공원 성역화 사업’은 공원 내 음식물 반입과 돗자리를 금지했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노인들과 ‘박카스 아줌마’들은 종묘공원으로 밀려나게 됐다.
종묘공원으로 몰려든 노인들과 ‘박카스 아줌마’의 접촉은 의외로 대범하게 이루어졌다. 단골이 있는 할머니들은 익숙한 얼굴이 나타나면 자신이 깔고 앉아있던 돗자리를 선뜻 내어주며 “사장님, 여기 앉아”라고 말을 건넸다. 걸음을 옮기는 사이에도 아는 얼굴이 보이면 박카스를 주며 어깨나 팔을 한 번씩 만지고 지나갔다. 일종의 ‘신호’였다.
기자가 종묘공원 일대의 ‘박카스 아줌마’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 한 할아버지가 다가왔다. 할아버지는 일행 중 한 할머니의 손을 잡으며 일상적인 대화를 나눴다. 그러자 곧 옆에서 “여기서 이러지 말고 둘이 저기 가서 연애해”라는 앙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핀잔을 들은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손을 잡고 자리를 벗어났다. 할머니는 “나 맛나는 것 사준다고 하네”라는 새침한 한마디를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이들 할머니가 말하는 ‘연애’란 성매매를 뜻한다. ‘박카스 아줌마’가 1회 성매매 대가로 받는 돈은 2000원에서 5만 원. 멀리 온천으로 여행을 떠나는 날이면 10만 원도 가능하다. 하지만 대부분 이들 할머니가 하루 버는 돈은 2만 원 남짓. 일행 중 한 명이었던 강 아무개 할머니는 “지하철역에 있는 젊은 아줌마들이 잘 벌지 우리는 공칠 때도 많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종묘공원 일대 할머니 대부분은 생활고 때문에 박카스 장사를 시작했다고 했다. 얼마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난 김 할머니도 마찬가지였다. 김 할머니를 기억하는 최 아무개 할아버지는 “이곳에 오는 사람들 대부분이 오늘내일 하는 사람들이다. 어느 날 안 보이면 그냥 죽었으려니 한다”며 “(김 할머니가) 한참 안보였는데 얼마 후 암으로 죽었다고 하는 소식을 들었다”고 말했다.
김 할머니는 4~5년 전쯤 공원에 모습을 드러냈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70줄에 들어선 김 할머니는 다른 50~60대 할머니들에 비해 벌이가 좋지 못했다. 남편이 있었지만 어려운 생활 탓에 별거 중이라는 사실을 털어놓으며 신세한탄을 하기도 했단다. 앞서의 최 할아버지는 “그 사람(김 할머니)한테는 1000원도 큰돈이었다. 반찬값이라도 벌어야지 하더니 1000원으로 콩나물 한 봉지씩 사갔었다”고 기억했다.
대부분의 ‘박카스 아줌마’들이 생활고로 성매매에 내몰리지만 김 할머니처럼 자식이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보장수급자 자격을 얻지 못하는 노인도 상당히 많다. 또 노인 여성의 경우 복지서비스 기관에 대한 정보에 어둡고, 노인 남성에 비해 학력과 체력이 낮은 경우가 대부분이라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기도 어렵다. 생의 사각지대로 몰린 할머니들은 필사적으로 성매매에 매달린다.
‘박카스 아줌마’ 실태를 연구한 이호선 서울 벤처대 사회복지상담학과 교수는 “이미 집창촌 형태의 성매매가 이루어졌던 우리나라에서 노인 성매매가 나타난 것은 특이한 현상이다”라며 “젊은 시절 성매매와 관계없는 사람이 생활고로 인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생계형 성매매’라는 것이 기존 성매매와 다른 점이다”고 말했다.
한국노인상담센터 자료에 따르면 2013년 초반 200~300명 정도로 추산되던 노인 성매매 인구는 현재 400명 가까이 급격히 늘어났다.
이호선 교수는 “노인 여성은 일반 성매매 종사자와 달리 성병검사를 거의 하지 않아 성병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노년에 들어 성매매를 시작한다는 것에 대한 수치심과 삶의 지표가 무너지는 것에 대한 심리적 취약함도 높다”며 “이것은 노인복지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문제다. 노인들의 복지를 위한 제도적 뒷받침과 노인들을 위한 문화 콘텐츠 개발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종묘광장관리소 김진수 단속반장은 “단속 위주로 대응하다 보면 성매매가 음지로 더욱 숨어들 뿐”이라며 “노인 성문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건전한 성문화가 만들어지도록 하는 프로그램 도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박카스 할머니 김 씨의 죽음은 우리 사회의 새로운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고령화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말해주는 씁쓸한 상징이다.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