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그룹, 저주 3종 세트 다 걸렸네…’
동양사태 피해자들이 피해보상 대책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박은숙 기자
최근 ‘극동건설의 저주’가 증권가에 등장했다. 지난 2007년 극동건설 인수전에 참여했던 기업들이 모조리 수난을 겪었다는 것이 골자다. 당시 극동건설에 인수 제안서를 제출한 기업은 웅진, STX, 대한전선, 효성, 동양메이저, 한화건설, 유진기업, 모두 7개사였다. 최종 입찰에 참여한 3개사는 웅진, STX, 대한전선이었고 최종 승자는 웅진그룹이었다.
하지만 이후 웅진그룹은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부은 태양광 시장의 퇴조로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위기에 봉착했다. STX그룹도 조선 업종 불황으로 인해 지난 6월 STX팬오션이 법정관리를 신청하고 채권단이 다른 계열사 경영권을 가져가면서 사실상 그룹이 공중분해 됐다. 강덕수 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대한전선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계속된 인수·합병으로 늘어난 부채를 갚기 위해 무주리조트 등 계열사와 시흥공장 토지 등 자산을 내다 팔았다. 지난 10월 초 창업자의 손자인 설윤석 사장은 경영권을 내놓았다.
극동건설 인수전 초기에 참여했던 효성, 동양메이저, 한화건설도 순탄치 않았다.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은 현재 분식회계와 탈세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고, 동양그룹은 ‘동양 사태’로 사실상 와해되며 현재현 회장은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지난해 배임 혐의로 구속기소돼 옥고를 치렀고, 현재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돼 재심이 진행되고 있다. 유진그룹 역시 지난해 말 유경선 회장이 검사에게 수억 원의 금품을 제공한 혐의로 기소됐다가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되는 수난을 당했다.
웅진, STX, 동양그룹은 무리한 계열사 확장이 유동성 위기를 촉발했다는 점에서 고전적인 ‘승자의 저주’로 묶이기도 한다. 인수경쟁에서 이겼지만 과도한 비용 탓에 후유증을 톡톡히 겪는 것이다.
왼쪽부터 이혜경 동양 부회장, 최은영 한진해운 회장.
지난 10월 31일 대한항공은 한진해운에 1500억 원을 지원하기로 결정하면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던 한진해운은 한숨을 돌렸다. 한진해운은 4000억 원 규모의 영구채 발행을 추진해왔지만 금융권에서 자구책 마련을 우선 요구해 번번이 실패했다. 계열사인 대한항공의 지원으로 금융권의 지원을 이끌어낼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졌다.
당초 한진해운은 공정거래법상 조양호 회장이 이끄는 한진그룹에 속해있지만 2006년 조 회장의 동생 조수호 한진해운 회장이 작고한 뒤 그의 부인인 최은영 회장이 경영의 전면에 나섰다. 최 회장은 2008년 1월 회장직을 승계한 이후 사실상 독립경영체제를 운영하고 있다. 시아주버니와 제수씨 사이는 지분관계로 썩 좋지 않았다. 최 회장 쪽은 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꾀하며 조 회장의 그늘에서 벗어나려 분리를 추진했다. 2009년 한진해운을 인적분할해 한진해운홀딩스를 정점으로 한진해운과 다른 계열사를 수직으로 연결시켰다. 대신 기존에 보유한 대한항공 등의 지분은 모두 정리했다.
하지만 경영실적은 그야말로 위기를 맞았다. 해운업계의 불황이 직격탄이었다. 최 회장을 도와주는 ‘백기사’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책임론의 표적이 됐다. 지근거리에서 보좌해온 조용민 전 한진해운홀딩스 대표와 실질적으로 경영을 맡은 김영민 한진해운 사장이 장본인이다. 단기적인 재무구조에만 몰두하다보니 기업 성장을 도외시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이들에 대한 책임론이 나오는 이유다.
동양그룹 사태에도 ‘마눌님의 저주’가 한몫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고 이양구 동양그룹 창업주는 1955년 동양시멘트와 1956년 동양제과(현 오리온)를 설립해 대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아들은 없고 두 딸만 뒀다. 장녀 이혜경 동양그룹 부회장은 검사 출신 남편 현재현 회장과 함께 모계인 동양그룹을 승계했고, 차녀 이화경 오리온그룹 부회장은 화교 출신 남편 담철곤 회장과 함께 오리온 그룹을 맡았다. 자매 부부가 그룹을 분리한 첫 사례였다.
현 회장의 ‘사위경영’은 순탄치 않았다. 부동산 경기 장기침체 이후 유동성 위기가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그 과정에서 그룹 내 이 부회장의 입김이 커지기 시작했다. 일각에선 “현 회장의 지분이 자꾸 늘어나자 이에 불안감을 느낀 이 부회장이 지난 2008년부터 경영에 적극 개입하면서 기업개선작업이 차질을 빚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부부간 공동경영이 아닌 경영갈등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기업경영에 능숙하지 않았던 이 부회장에게도 ‘백기사’가 있었다. 바로 김철 동양네트웍스 대표다. 이 부회장은 지난 1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장에 출석해 “동양그룹이 컨설팅을 맡겼던 김 대표가 젊고 능력이 있다고 판단, 현 회장에 추천했다”고 자신의 사람임을 시인했을 정도다. 하지만 그 결말은 스스로 저주를 풀지 못한 탓인지 비도덕적인 경영인으로 낙인찍히며 퇴출 위기에 몰려있다.
박웅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