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애면 우리만 불편” 의원들 여심야심
지난 8월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에 ‘기초지방선거 정당공천 폐지 공약’ 이행을 촉구하는 시위를 하는 모습. 연합뉴스
민주당 정책에 관여하는 한 정치 컨설턴트는 “정당공천제 폐지는 물 건너갔다고 본다”며 “지도부에서 이번 국회에서 매듭짓겠다고 말해도 당 내에서는 내년 지방선거는 그대로 운영된다고 다들 생각한다. 민주정책연구원 같은 곳에서도 정당공천 폐지에 따른 대응 전략을 따로 짜고 있지 않다”고 전했다.
이미 여야 물밑 협상도 오가고 있다. 경기지사와 충청권 출마설이 제기되는 여야 중진 의원들이 지난 10월 말 여의도 모처에서 회동을 가졌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이들의 주요 화두 역시 정당공천제 폐지에 관한 것으로, 다들 유지하는 쪽으로 입을 모았다고 한다.
야권은 왜 이처럼 ‘이중플레이’의 모양새를 취하고 있을까. 민주당 한 초선 의원은 “민주당은 호남지역, 새누리당은 영남지역에서 정당공천 폐지에 불만인 사람들이 많다”며 “수도권도 지방선거에서 박빙의 승부가 예상되는 만큼 최대한 공천으로 맺어지는 바닥 인맥을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그의 말을 더 들어보자.
“실제 오랫동안 정당생활을 하지 않고 전략공천된 후보들의 선거운동을 보면 거의 해당 지역 시·구의원 손에 이끌려 다닌다고 보면 된다. 기초의원들은 그 동네 반장이 누구인지, 약국에서 뭘 사고 언제 등산을 가는지도 다 알 정도다. 의원 입장에서야 손쉽게 선거를 치를 수 있는 것”이라며 “이게 지방자치 발전에 문제가 있는 것은 맞다. 그런데도 ‘폐지된 다음에는 어쩌지?’ 하는 생각인 것”이라고 전했다.
지난 4월부터 6개월간 한시적으로 운영했던 정치쇄신특별위원회(쇄신특위·위원장 김진표 민주당 의원) 활동을 보면 정당공천제 폐지에 관한 의원들의 속마음을 잘 엿볼 수 있다. 사실 쇄신특위에서 가장 중요하게 논의했던 것이 바로 정당공천제 폐지 문제였다. 지난 6월 쇄신특위에서 마련한 정당공천제 폐지를 위한 공청회 당시 여야 의원들의 우려는 이렇다.
“난립된 후보들이 우후죽순처럼 출마를 했을 경우에 안 그래도 투표율이 낮은 지방선거에서 후보자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유권자들이 과연 그 지역에 대한 일꾼을 제대로 선택할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를 걱정하고 있습니다(김상훈 새누리당 의원).”
“비례대표 제도를 그대로 존치하면서 지역구에 대한 정당공천만 폐지하게 될 경우에 그것이 합리적인 평등에도 위배될 뿐만 아니고 위헌이 될 소지가 상당히 크다는 그 말씀 상당히 공감하고 있습니다(김관영 민주당 의원).”
“예를 들면 고속도로나 교통사고가 자주 난다고 해서 자동차의 운행을 금지시킨다든지, 또는 도로를 폐쇄할 것인지, 이것은 또 문제가 있지 않느냐 이런 생각도 해 봅니다(이노근 새누리당 의원).”
“그러니까 공천도 안 하고 당적도 없애 버리면 그야말로 정당이 기능할 수 있는 부분이 없어져 버리거든요. 저는 그런 생각이고요(문병호 민주당 의원).”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애초에 정당공천제 폐지에 따른 후속 대책이 논의되길 바랐던 일부 참가자들은 진땀을 빼야 했다. 해당 공청회에 참여한 한 학자는 익명을 전제로 “(정당공천제 폐지에 따른) 위헌 여부나 정당공천제와 공천비리 문제가 진짜 상관관계가 있는지를 집중적으로 물었다. 국회의원들은 폐지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하지만 폐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우세하고 대통령 공약이기도 하니 겉으로 내놓기는 싫은 모양이더라”라고 전했다.
쇄신특위 활동이 끝난 직후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법안 심의권이 있는 정치개혁특위를 조속히 구성할 것을 촉구했다. 하지만 그런 정의당조차 정당공천제 폐지에 관해서는 여성과 소수자 권리를 보호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 부정적인 기류가 강하다.
안철수 의원 쪽은 어떨까. ‘기초의원은 폐지, 기초단체장은 단계적 폐지’라는 일종의 절충안을 제안하기도 했던 안 의원은 최근 민주당 지도부와 연대할 뜻을 밝혔다. 하지만 안철수 신당의 기초가 될 정책네트워크 내일의 상당수 실행위원들은 신당 이름으로 내년 기초선거에 출마하기를 강력하게 원하는 상황이다. 신당 파괴력에 대한 내부 검증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힘겹게 조직한 실행위원단마저 등을 돌린다면 다음 행보를 약속할 수 없다. ‘내년 지방선거는 이대로 가자’는 이야기가 나오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