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시한’ 있으나 마나
올해 초 2013년도 예산안이 새해를 맞고서야 국회를 통과하는 사상초유의 사태를 겪은 한 경제부처 공무원이 넋두리처럼 늘어놓은 말이다. 지난 1987년에 만들어진 현행 헌법(54조 2항)에는 예산안 처리와 관련한 내용이 들어있다. 이에 따르면 정부는 매년 10월 2일까지 다음해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국회는 이를 12월 2일까지 의결해야한다.
하지만 이 규정이 처음 적용된 13대 국회(1988년∼1992년)부터 현재 19대 국회까지 25년 동안 예산안 처리 법정 시한이 지켜진 경우는 다섯 차례에 불과하다. 13대 국회가 꾸려진 뒤 처음으로 예산안을 처리한 1988년(12월 2일)에는 법정시한이 준수됐다. 그 외에는 대선이 있었던 1992년(11월 20일)과 1997년(11월 18일), 2002년(11월 8일) 세 차례가 거의 전부다. 여당과 야당 모두 대선에 ‘올인’하기 위해 예산안 처리를 서두른 때문이다.
위의 경우를 제외하면 국회가 예산안 처리를 제대로 한 해는 1995년(12월 2일) 단 한 차례뿐이다. 헌법에 규정된 예산안 처리 법정 시한이 사실상 사문화된 셈이다. 게다가 예산안 통과일은 2000년대 들어 더욱 늦어지고 있다. 2000년에는 12월 27일에 예산안이 통과되더니 2003년에는 12월 30일, 2004년에는 해가 바뀌기 직전인 12월 31일에 처리됐다. 2009년과 2011년에도 예산안이 12월 31일에 국회를 통과했다. 2013년도 예산안은 아예 해를 넘겨 올해 1월 1일 국회를 통과했다.
예산안 통과가 늦어지면 각 부처 공무원들은 예산안이 처리될 때까지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갈 수밖에 없다. 국회를 통과하면서 예산이 변동되지 않을지 눈을 떼지 못하는 데다 국회 통과 뒤에는 확정된 예산을 파악해 국민들에게 알려야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올해 야당이 권력기관 대선개입 사건 등을 이유로 장내·외 투쟁을 이어가고 있어 2014년 예산안 통과가 법정시한을 넘길 것이 빤하다는 점이다. 한 경제부처 공무원은 “예산안 처리를 제때 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언감생심”이라며 “올해 안에만 처리해줬으면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준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