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만 쓰는 헤딩머신? 이젠 발을 주목하라
지난 15일 스위스와의 평가전에서 공격 선봉장으로 나선 김신욱은 머리가 아닌 발로 다양한 연계 플레이를 보여주며 존재감을 뽐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K리그 최고 공격수로
최근 가장 각광받는 토종 공격수를 거론할 때 빠짐없이 등장하는 이가 바로 김신욱이다. 김신욱은 엄청난 페이스를 보여줬다. 종착역으로 치닫는 K리그 클래식(1부 리그)에서 김신욱의 폭격 속에 소속 팀 울산도 굳건히 선두 질주를 하고 있다. 그야말로 파죽지세의 득점 퍼레이드다. 울산은 마지막 우승 경쟁의 1차 관문으로 10월 27일 수원 삼성(홈), 10월 30일 FC서울(홈), 11월 4일 인천 유나이티드(원정) 3연전을 꼽았는데, 모두 1-0 승리를 거뒀고 김신욱은 수원-서울 2연전에서 2골을, 인천 원정에서는 상대 수비의 시야를 가리는 플레이로 동료의 결승골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11월 9일 전북과 홈경기(2-0 울산 승)까지 19골. 올 시즌 정규리그 득점 단독 선두다. 한동안 K리그에는 브라질과 동유럽 출신의 외국인 공격수들이 각광을 받아왔기에, 김신욱의 활약은 훨씬 인상적이었다. 더욱이 김신욱이 득점에만 집중한 것도 아니다. 동료들의 골을 배달하는 이타적인 플레이로 강한 임팩트를 남겼다. 어시스트도 6회. 공격 포인트(골+도움)를 합산하면 김신욱을 따를 만한 선수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홍명보 대표팀 감독(왼쪽 두 번째)과 코치진. 박은숙 기자
그러나 이상하리만치 대표팀에 들어오면 존재감이 희미해졌다. 결론적으로 말해 기대 이하였다. 소속 팀에서는 그토록 잘하는데 왜 대표팀에서는 별 소득이 없었을까. 정말 김신욱이 대표팀에 어울리지 않는 카드였던 것일까.
일단 김신욱이 투입됐을 때의 대표팀 플레이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김신욱이 출전하면 주변 동료들은 상대 문전에 박힌 채 포스트 플레이를 하고 있는 그를 향해 길게 볼을 내지르기 바빴다. 제공권에서 확실한 우위를 가진 김신욱이 머리로 볼을 떨궈주면 제2선에서의 득점을 노린다는 포석이었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김신욱이 헤딩에 아주 강한 편이 아니라는 점이다. 볼은 잘 받아내도 정확도에서는 다소 떨어진다. 김신욱 본인이 “헤딩골을 넣을 때 가장 기분이 좋다”는 것도 그래서다. 자신의 단점을 잘 알기에, 또 자신의 부족한 면을 알고 있기에 머리로 득점할 때 강한 쾌감이 있다는 의미다. K리그에서 기록한 18골 가운데 김신욱이 헤딩으로 득점한 건 7골에 그친다. 오히려 발(특히 오른쪽)로 골맛을 볼 때가 잦았다. 울산은 김신욱을 단순히 타깃형 공격수로만 활용하지 않는다.
특정 지역에 머무는 대신 많이 뛰고, 스스로 찬스를 포착하는 공격수로 주로 배치한다. 울산 김호곤 감독은 “상대 수비를 등지고 움직이는 스크린플레이와 찬스 메이킹에 눈을 떴다. 그냥 헤딩만 잘하는 공격수라는 편견을 버릴 필요가 있다”고 했다. 다용도 전방 카드로 사용해도 좋을 것이라는 조언이다.
지난 15일 김신욱이 스위스와의 평가전에서 혼신을 다해 헤딩하는 모습. 임준선 기자
그러나 8월~10월, 석 달간의 공백을 거치며 김신욱을 보는 홍 감독의 시선도 많이 바뀌었을 수도 있다. 더욱이 ‘뻥 축구’는 김신욱이 의도한 게 아니다. 오히려 기준을 바꿀 필요가 있는 건 다른 동료들이다. 스위스-러시아로 이어지는 11월 A매치 2연전을 위해 김신욱을 대표팀에 포함시킨 것도 새로운 활용법을 모색하겠다는 포석으로 해석할 수 있다.
# 전술적인 변화 가능성은?
홍명보호의 전술은 큰 틀에서 변함이 없다. 줄곧 4-2-3-1 포메이션이 축을 이루고 순간순간 약간의 변화를 줄 뿐이다. 홍 감독은 내내 전방을 휘젓다가도 약간이라도 틈이 나면 빠르게 침투하고 제2선 동료들과의 유기적인 호흡을 바탕으로 하는 공격수를 선호한다. 박주영(아스널)을 중용한 이유이기도 하다.
김신욱은 K리그 클래식에서 연속골을 터뜨리며 득점 선두(19골)를 달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김신욱의 한 측근은 “예전에는 조언을 했을 때 크게 받아들이지 않는 모습이었지만 대표팀 탈락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주위의 따끔한 일침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고 털어놨다. 마음과 귀가 열린 셈이다.
여기에 김신욱은 체격조건이 우수한 장신 공격수들이 많은 독일 분데스리가를 집중적으로 살피며 매일 한 장면씩 따라해 본다. 이미지 트레이닝에 그치지 않고 직접 몸으로 익히는 것이다. 그 결과 더 이상 K리그에서는 적수가 없는 공격수가 됐다.
브라질월드컵 호성적이라는 과제를 안고 출범한 홍명보호는 박주영 이후 계보가 끊겨버린 원톱 자원을 놓고 끊임없는 고민을 하고 있다. 축구는 결과로 말하는 스포츠. 골을 넣지 못하면 절대 이길 수 없는데, 득점을 안길 마땅한 카드가 없어 딜레마에 빠졌다. 올해를 그냥 흘려보낸 박주영은 내년 1월 예정된 3주간의 브라질-미국 전지훈련 때나 합류할 전망이다. 11월 A매치 2연전에서 김신욱이 어떤 활약을 펼치든 홍 감독의 전술 패턴에 익숙해지고 완전히 안착할 때까지 약간의 시간은 필요하다. 그리고 김신욱이 제공권에만 능한 선수가 아니라는 걸 대표팀 동료들도 알아야 한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