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된 백패스…‘황우여가 수상해’
최근 만난 한 새누리당 초선 의원은 ‘국가정보원 등 국가기관의 정치적 중립성 강화를 위한 제도개선특별위원회(국정원 개혁특위)’ 설치를 황우여 당 대표, 최경환 원내대표가 받아들인 것을 두고 핏대를 세웠다. 새해 예산안을 두고 벌인 여야의 치킨게임에서 “졌다”는 것이다. 치킨게임은 마주 보고 차를 달리다 겁을 먹은 이가 방향을 트는 게임을 말한다.
지난 3일 열린 여야 4자회담에 참석한 민주당 전병헌 원내대표, 김한길 대표,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 최경환 원내대표(왼쪽부터).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국정원 개혁특위 구성안은 의원 234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198명, 반대 7명, 기권 29명으로 가결됐다. 반대·기권표는 모두 새누리당에서 나왔다. 그만큼 지도부 생각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른 이야기, 기권표를 던진 한 의원에게 그 이유를 묻자 돌아온 답을 들어보자.
“특검은 잘잘못을 가리는 것이다. 야당이 국가기관 대선개입 특검 도입 카드를 버린 것도 아니지 않은가. 원래대로라면 특위를 받는 대신 특검 카드는 버리도록 했어야 한다. 그리고 이건 상식적으로 순서가 잘못됐다. 국정원이 얼마만큼 대선에 개입했는지 검찰 수사든 특검이든 결과가 나오고서 특위를 구성해야 한다. 진단이 있어야 수술을 할지 물리치료를 할지 처방하는 거 아닌가. 국정원의 범법행위가 있었다면 그 부분을 고치면 된다. 내년 1월 말까지 에서 뭘 내놓을 수 있겠는가. 다 쇼다, 쇼.”
정치권 일각에선 국정원 개혁특위 가동은 일종의 ‘의도된 백패스’라고 보기도 한다. 상대방이 골을 넣어도 된다는 일종의 미필적 고의라는 것인데, 이는 황우여 당 대표를 향한 의혹이다.
알려진 대로라면 황 대표는 19대 국회 하반기 국회의장석에 앉고 싶어 한다. 입법부 수장을 꿈꾸는 것. 하지만 당 대표 자격으로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치르면 결과에 따라 패군지장이 될 수도 있다. 당연히 국회의장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역대 지방선거가 정권심판론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황 대표로선 전장에 나서는 것이 부담스럽다. 그래서 나오는 이야기가 애써 실기하려 한다는 의혹이 있다는 것이다.
황 대표가 일부러 실축한 것인지는 내년 1월 말이면 결정이 난다. 특위의 국정원 개혁안이 얼마나 혁신적이냐에 달렸다. 하지만 앞서의 의원들이 밝힌 것처럼 진단 없는 처방이 성공할 확률은 낮아 보인다. 황 대표가 책임을 지고 물러나면 조기 전당대회가 치러지거나 비상대책위 내지는 조기 선거대책위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국회의장을 노리는 황 대표에겐 최적의 시나리오가 된다.
이런 분위기가 감지됐는지 홍문종 당 사무총장이 최근 차기 전당대회 날짜를 슬며시 이야기했다. 홍 사무총장은 최근 YTN 라디오 인터뷰에서 전당대회 개최 시기와 관련, “지방선거 이후에 하는 게 대세가 아닌가 생각한다. 현 지도부는 모든 선거에서 압승을 한 복 받은 지도부여서 지방선거도 잘 치를 수 있다고 본다”고 했다. 황 대표나 그 주변부의 계산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황 대표의 임기가 내년 5월 15일까지인데 선거를 앞둔 ‘전시’이므로 기간 연장을 해주겠다는 것이다. 이 시나리오는 서청원 김무성 의원 등 차기 당 대표 모두가 원하는 방향이다. 그래서 힘이 실린다.
이 과정에서 원내 지도부가 청와대의 의중을 파악하고자 안테나를 높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문제는 “줘도 너무 많이 줬다”며 비판적 목소리가 나온다는 것이다. 우선 국가기관 대선 개입의혹에 대한 특검 도입은 계속 논의키로 했다. 국정원 개혁특위 위원장을 야당에 줘 진행과 지휘를 맡겼다. 게다가 특위안에 법률심사권을 부여해 법적 지위를 보장했다. 특위 구성도 여야 동수로 해 비례성을 보장하지 않았다. 이 네 가지에 대해 강경파는 “무조건 지는 싸움”이라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를 두고 한 정치권 인사는 이런 말을 했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운다는 말이 있다. 여기서 빈대는 대선개입 의혹이다. 이 의혹을 없애고 재발 방지 대책만 내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특위를 구성해 초가삼간(국정원의 정보수집)을 다 태워야 할 판이다. 독점한 대공수사권을 모두 내려놓아야 할 위기다. 국정원의 존재 이유가 사라지게 된다. 대통령에게 독대해서 무슨 보고를 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요즘 국정원 관계자들은 국회 인근에서 특위와 특검이 어떻게 진행 중인지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새누리당이 특위 카드를 받아들이자 크게 요동치는 분위기다. 특히 여야 동수일 때 위원장의 재량이 어디까지인지를 파악하느라 분주하다. 새누리당의 국정원 개혁 가이드라인이 어디까지인지 수소문하느라 노심초사다.
특위의 결과물이 “특검을 해야 할 것”으로 결론나면 새누리당은 ‘불난 집’이 될 가능성이 커진다. 지방선거에까지 국가기관 대선개입 의혹이 이어지면 대여권 실망감이 팽배해질 것이란 우려다. 국정원 직원이 소환돼 조사를 받게 되면 원치 않는 사건으로 더 커질 공산도 있다. 벌써 국정원 트윗, 리트윗이 수천만 건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최경환 원내대표에게 압력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어떻게든 노련한 공격수를 특위 위원으로 선발해야지, 야권의 공세에 밀려 득점력이 낮은 이를 간택해선 안된다”는 요구다. 여당 지도부로선 특위안을 최대한 별것 아닌 것처럼 만들어야 한다는 절대 과제를 안은 것이다.
선우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