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들이 차린 밥상 때론 실무진이 걷어찬다
올시즌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류현진은 지난 4월 자신의 이름과 등번호를 딴 ‘HJ99파운데이션’이라는 자선재단 설립을 추진했다. 류현진은 미국 한인타운을 기반으로 성장한 한미은행과 계약을 맺고, 경기에서 탈삼진을 1개씩 잡을 때마다 한미은행이 100달러를 기부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류현진은 재단의 기금을 100만 달러까지 키울 계획을 세우고, 재단을 통해 야구 유망주들의 훈련과 치료를 지원하고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는 난치병 어린이 환자 돕기에 주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장미란 재단’의 스포츠 멘토링 캠프에서 선수들과 어울리는 장미란(위). 아래는 ‘KJChoi파운데이션’의 버디캠페인 후원자의 날 행사에 함께한 최경주.
지난 2011년에 설립된 추신수의 재단 ‘추 파운데이션’은 추신수가 홈런을 치거나 도루를 할 때마다 1000달러씩을 한미은행이 기부하는 방식으로 2년 동안 5만 7000달러를 모았다.
류현진과 추신수뿐만 아니라 스포츠스타들의 재단 설립이 이어지고 있다. 홍명보 대한민국국가대표팀 감독을 비롯해 박지성, 골프의 최경주, 역도 장미란 등이 이미 재단을 설립해 운영 중이다.
스포츠스타들의 재단은 주로 불우한 환경의 어린이들을 돕거나, 스포츠 종목의 발전을 위해 활동한다. 최경주의 ‘KJChoi 파운데이션’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 골프를 하는 학생들에게 학비를 비롯해 레슨비와 훈련비를 지원하고 있다. 앞서 류현진과 추신수의 재단도 기부금을 모아 야구 유망주들의 훈련을 도왔다. ‘장미란 재단’의 경우 역도뿐만 아니라 육상, 유도, 탁구 등 비인기 스포츠종목의 선수들에 대해서도 멘토링 프로그램과 더불어 포괄적인 지원 사업을 벌이고 있었다.
또한 재단은 스포츠 인프라 시설 구축에도 앞장섰다. 조금 더 나은 시설을 통해 스포츠의 대중화와 경기력 향상에 기여하려는 것이다. 지난 11월 26일 류현진은 ‘HJ99파운데이션’을 통해 인천시와 야구 꿈나무 육성을 위한 협약을 체결하고 8만 3828㎡ 규모의 야구장을 건립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박지성이 설립한 ‘JS파운데이션’과 장미란 재단, 최경주 재단도 후배들을 위해 체육센터와 연습장을 짓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재단이 이러한 사업들을 진행하기 위해선 많은 돈을 필요로 한다. 아무리 자신의 이름으로 재단을 설립하고, 이사장에 이름을 올리고 있지만 스포츠스타들은 후원금을 내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재단에서는 “스포츠스타들의 후원금과 관련한 내용은 개인정보에 해당하므로 정확한 내용은 확인해 주기 힘들다”고 말을 아끼면서도 “선수들이 해마다 일정 금액 이상의 기부금을 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반면 또 다른 스포츠스타의 재단의 경우 이사장인 A 선수가 재단 출범 당시 후원금을 낸 이후에는 별다른 기부를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어 재단에서는 자선경기 등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익을 통해 사업비를 확보한다. ‘홍명보 장학 재단’에서는 2003년 소아암 환자 돕기 자선축구경기를 시작으로 해마다 소외된 이웃을 돕는 행사를 열고 있다. JS파운데이션도 2011년부터 베트남, 태국, 중국 등지에서 아시안드림컵 자선축구경기를 열어 아시아 전역에 축구 문화를 교류하고 있다. 류현진도 메이저리그 시즌을 마치고 지난 11월 귀국한 뒤 자선 골프대회, 야구경기를 열며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또한 스포츠스타 재단에서는 기업이나 개인후원자들에게 기부금을 받기도 한다. 그렇지만 대기업의 경우 대부분 기업 내부에 재단이 있기 때문에 따로 스포츠스타의 재단에 후원을 할 필요는 없다. 절세 효과에 대해서도 문광부의 한 관계자는 “기업의 규모에 비교해 봤을 때 세금 감면 효과는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럼 기업들이 스포츠스타의 재단에 후원을 하면 얻게 되는 이득이 무엇일까. 기업에서 스포츠스타의 재단에 후원을 할 때는 선수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 활용과 홍보효과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일종의 스포츠 마케팅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기업이 자체적인 재단을 설립하고 대중들의 관심을 끌어 모으려면 많은 시간과 돈이 든다. 하지만 기존의 스포츠스타들의 대중적인 호감 이미지를 이용하면 효과적으로 기업 사회 공헌 활동에 대한 홍보가 가능하다. 자선 경기를 열 때 후원사 이름을 올리고 경기장에 광고판만 비춰도 홍보가 확실하다”고 설명했다. 스포츠스타로서는 후원금을 확보해 좋은 일에 쓰고, 기업에서는 성공적인 이미지 마케팅을 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라는 것이다.
하지만 스포츠스타들의 재단 설립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이들도 있다. 스포츠스타는 재단 이사장이기에 앞서 선수라는 것이다. 야구구단의 한 관계자는 “재단 사업에 열중하다 보면 운동에 집중력이 떨어져 스포츠 선수라는 본연의 임무에 소홀할 수도 있다. 심한 경우 비시즌에 자선경기 등 재단 활동으로 무리한 스케줄을 소화하다 부상을 당할 수도 있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이에 대해 재단의 한 관계자는 “선수들은 이사장으로의 최소한의 역할만을 수행하고, 세부적인 사항은 밑에 실무진들이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재계의 한 관계자는 “스포츠 선수들은 운동만 해 사업에는 문외한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다른 일반 재단들과 마찬가지로 밑에서 일하는 실무진에서 재단 기금을 가지고 횡령 등 비리를 저지를 위험도 있다. 이럴 경우 좋지 않은 이미지와 여론의 비난은 고스란히 선수에게 쏟아질 수도 있다”고 또 다른 문제점을 제시하기도 했다.
일례로 2011년 최경주의 부인 김 아무개 씨는 남편이 설립한 복지재단의 직원을 22억 원대의 횡령혐의로 고소한 바 있다. 당시 검찰에 따르면 김 씨는 “지난 2월 노후연금 보험과 은행예금 22억 원가량을 횡령했다”며 사단법인 ‘최경주복지회’ 소속 직원 박 아무개 씨와 보험설계사 조 아무개 씨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로 고소했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